[단독] 수사권 조정안 시행 나흘 앞두고 검·경 전운 고조.. 경찰 "검사가 경찰 지휘하는 독소조항 삭제해야"

이희경 2020. 12. 2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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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검사가 경찰 지휘·검찰 업무 경찰에 전가하는 독소조항 많아"
법무부 발표 '검찰사건사무규칙 전부개정안' 26개 조문 삭제 요구
법무부 "상위법령인 형사소송법 따라 규칙 만들었을 뿐"
"경찰이 수사종결시, 검사가 60일 내 사건 잘못 밝히기 어려워"
이용구 법무차관 택시기사 폭행사건 등 경찰 '봐주기 수사' 논란 여전
수사 실무상 혼선, 국민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
내년 1월1일 수사권 조정안 시행을 앞두고 검찰과 경찰 간 전운이 고조되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하위 법령 중 하나로 법무부가 지난달 발표한 검찰사건사무규칙 전부개정안(이하 개정안)과 관련해 경찰청이 20여개의 조문이 불합리하게 설계됐다며 ‘삭제’를 요구하고 나서면서다.

경찰청은 특히 개정안에 예전처럼 검사가 경찰을 지휘하는 조문이 과도하게 반영돼 있고 검찰 내부에서 처리해야 할 업무를 경찰에게 전가하는 등 독소 조항이 많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무부는 상위법령인 형사소송법에 맞춰 마련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 시행이 나흘 정도 남은 가운데 검경 간 갈등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면서 당장 내년부터 수사 실무에서 혼선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28일 세계일보의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지난달 17일 법무부가 예고한 개정안을 검토한 결과 52개 조문에 문제가 있고, 이 중 26개는 아예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을 최근 법무부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담은 형사소송법과 이를 반영한 ‘검사와 사법경찰관의 상호협력과 일반적인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수사준칙, 대통령령)이 내년 1월1일 시행됨에 따라 법무부가 지난달 마련했다. 이 개정안에는 경찰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요구 및 재수사요청 등 검경 수사권 조정안 적용에 맞춰 새롭게 마련된 사건 처리절차에 관한 세부 조항 등이 담겼다.

◆경찰청, “검찰, 여전히 경찰을 상하 관계로 규정”

경찰청은 우선 검경 간 관계가 협력적 관계로 재편됐지만 개정안에서는 여전히 상하 관계로 규정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개정안 제34조의 경우 경찰의 불법 체포와 구속이 있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검사가 수사지도와 시정명령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는데, 경찰청은 법률상 근거가 없으므로 ‘수사지도, 시정명령’ 부분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사건을 송치하지 않겠다는 경찰의 결정과 관련해 검사가 위법, 부당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를 내릴 수 있다고 규정한 개정안 제83조와 관련해서도 경찰청은 ‘필요한 조치’ 범위가 너무 넓게 해석될 수 있어 검찰 권한이 커진다며 문구 삭제를 요청했다. 형사소송법 등에 따라 경찰이 보낸 기록과 증거물로만 판단하면 되지, 검찰이 경찰에게 다른 지시를 내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필요한 조치’ 부분은 수사준칙 제정 과정에서도 배척된 부분”이라며 “상위법령에 근거가 없는 이런 문구는 새로운 검찰 권한을 창설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아울러 피해자 등 소재가 불분명해 ‘수사중지’된 사건에 대해 검사가 기록을 검토할 때에도 경찰관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다는 조항도 문제 삼았다. 수사중지된 사건에 검사가 시정조치 결정을 내릴 때 송부 받은 기록만 가지고 판단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경찰청은 이와 함께 내사와 조사사건(현 수사사건)과 관련, 개정안에 ‘검사가 사건을 타 기관에 이송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는 검사가 모든 사건에 대해 입건 및 수사를 할 수 있어 이송규정이 없어도 됐지만 수사권 조정에 따라 검사의 수사범위가 제한된 이상, 이송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검사의 이송 의무를 규정한 조항이 없으면 검사가 수사 범위와 무관한 사건에 대해서도 내사 등을 할 수 있어 검사의 업무범위가 무한히 확장될 우려가 있다고 경찰청은 설명했다.

출국금지 등 출입국 규제와 관련해 검사의 검토를 받아야 하는 조항(제9조), 변사사건에 대한 검사의 수사지휘를 명시한 부분(제10조)도 경찰청은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구속피의자 석방 때 검사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조항(제49조)에서도 경찰청은 “승인은 법리상 상하 및 지휘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승인’을 ‘동의’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지휘’, ‘보고’와 같은 용어에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개정안에 명시된 통신제한조치 허가서 ‘반환 보고서’도 ‘반환서’가 맞고, ‘영장반환보고서’도 ‘영장반환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법무부 “상위법령에 따라 마련됐는데 뭐가 문제냐”

이에 대해 법무부는 개정 형사소송법과 수사준칙의 취지에 맞춰 개정안이 마련됐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현재 개정안이 입법예고 기간이기 때문에 (경찰청이 절차적으로) 단순히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상위법령인 형사소송법에 따라 규칙을 만든 것인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개정안이 상위법령에 위반된다고 경찰청이 정말로 주장하는 것이라면 단순히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위헌법률심판을 청구하든지 하면 될 일”이라고 반박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따른 수사 환경 변화와 관련해 검사들의 반발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지난 2019년 개정 형사소송법이 국회에 발의돼 통과를 앞둔 시기부터 검찰 내에서는 ‘경찰의 부당한 수사를 걸러내기 어려워졌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경찰의 잘못된 수사를 검찰이 바로잡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사건 당사자가 경찰 수사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검찰이 서류를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60일간 사건을 검토할 수 있는데, 경찰의 생각이 담긴 서류만 보고 수사의 문제점을 알아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한 검사는 “경찰에 수사종결권이 부여돼 있어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사건은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그대로 종결된다”며 “(사건당사자가 이의를 제기해도) 60일 내에 사건을 검토해 잘못을 밝힐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고 지적했다.

또 검찰의 재수사 요구를 경찰이 따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검찰이 우려하는 부분 중 하나다. 수사권 조정안에 따르면 경찰은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한 검사의 보완수사요구나 시정조치를 따라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경찰이 이 조항의 전제 조건인 ‘정당한 이유’를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 시행 나흘 남았는데…

형사사법체계의 일대 전환을 예고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시행을 코앞에 두고 검경의 이런 견해 차이는 수사실무에서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장 경찰청이 문제 삼고 있는 개정안의 입법예고 완료기한(28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 왔지만 검경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령인 개정안은 국무회의 심사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법제처 심사 후 공포된다. 경찰청은 법제처가 적극적으로 심사하지 않을 경우, 문제가 많은 개정안이 그대로 공포될 것을 우려하는 반면 법무부는 경찰청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한 관계자는 “설마 검찰이 예전처럼 지휘관계를 규정한 부분을 반영하겠나 하는 우려가 있었는데, 좀 난감한 상황”이라면서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두 기관이 대립이 아니라 협력으로 가는 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수사 실무상의 이런 혼란은 형사사법 시스템을 이용하는 국민들의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예컨대 경찰은 향후 자체적으로 구속 피의자를 석방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개정안에 검사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어 결과적으로 석방 지연에 따른 인권침해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이용구 법무부 차관의 택시기사 폭행 사건처럼 견제 받지 않는 경찰의 ‘봐주기 수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차관은 변호사로 재직하던 지난달 6일 밤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자택) 앞에서 술에 취한 자신을 깨우던 택시 기사의 멱살을 잡아 폭행했지만, 경찰이 입건조차 안 하고 내사종결 처리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일각에서는 이 차관 수사처럼 경찰 수사가 비판받고 있는 만큼 수사종결권만 부각하며 권한을 확대하고 있는 경찰청의 움직임도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철저한 직무교육을 통해 수사인력을 전문화하고, 경찰권력의 외부통제 방안으로 경찰위원회의 권한을 확대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형사사법 체계의 변화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문제점을 노출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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