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봉쇄하고도 무너졌다..코로나19의 '반면교사'들 [정리뉴스]

박용필 기자 2020. 12. 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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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차 대유행까지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은 나름 성공적이었습니다. 세계를 휩쓰는 코로나 대유행도 ‘남의 나라 일’처럼 느꼈습니다. 하지만 요즘엔 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연일 신규 확진자가 1000명대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여러 노력에도 규모가 좀체 줄지 않습니다.

더 이상 ‘강건너 불구경’ 할 때가 아닌 듯 합니다. 우리보다 먼저 위기를 맞았던 이웃들을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생겼습니다. 롤모델을 찾기는 어려울지 몰라도 반면교사 사례는 있을 것입니다.

미국과 브라질의 지도자들처럼 코로나19를 우습게 보거나, 미국인과 유럽인들처럼 마스크와 거리두기의 필요성을 과소평가하거나 스웨덴처럼 집단면역이라는 무모한 실험을 감행했다가 실패한 경우를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력을 다했음에도 방역에 실패한 나라도 상당수입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의 봉쇄조치를 취하고도 한 지역 주민의 절반 이상이 감염되고, 영안실이 꽉 차 아이스링크에 시신을 보관하고, 요양원에서 집단사망한 채 버려진 노인들이 발견되는 참상이 벌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우리에게도 교훈이 될 만한 몇 장면을 모았습니다.

인도 이주 노동자들이 지난 3월28일 뉴델리에서 고향으로 가기 위해 정부가 제공하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인도, 제방은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무너졌다.

인도는 대유행 초반 가장 강력한 봉쇄조치와 거리두기를 시행했던 나라입니다. 지난 3월부터 68일 동안 전 세계 인구 20%의 발을 묶었습니다. 그럼에도 지난 24일 기준 인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012만3544명으로 미국에 이어 두번째 규모입니다. 인구가 13억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해도 엄청난 수입니다. 9월에는 실제 확진자 수가 공식 집계된 것보다 10배 가까이 많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습니다. 왜 봉쇄조치가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을까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3월 초 확진자가 급증하자 그달 23일 저녁 전국에 강력한 봉쇄령을 내렸습니다. 24일 자정을 기해 모든 항공편과 철도가 멈췄고, 식료품점, 은행 ATM, 주유소 등 필수 서비스 시설을 제외한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습니다. 식당은 배달만 가능했습니다. 통행 금지령을 따르지 않는 시민들에겐 구타 등의 물리력이 가해졌습니다.

덕분에 초기 확산세를 어느 정도 억누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효 시점을 4시간 앞두고 갑작스럽게 내려진 봉쇄령에 국민들은 준비할 틈도 없이 집 안에 갇히게 됐습니다. 이들 중엔 빈곤선 아래의 빈민 3억명과 노숙자 180만명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또 인도 전체 고용의 85% 가량을 차지하는 인력거 운전 기사, 행상인, 가사도우미 등 일용직 노동자들도 대면 접촉 금지로 대거 일자리를 잃게 됐습니다. 하루 4달러 정도의 수입으로 6인 가족이 생활했던 터라 저축해 놓은 돈도 없었습니다. 당장 굶어죽을 판이었습니다. 1평도 안되는 방에 5~6명이 모여살았고, 공중 화장실을 이용했습니다. 거리두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습니다.

의료 서비스를 받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공공병원에서 무료 검사를 실시했지만 몇 시간 이상 줄을 서야했습니다. 공공병원 또한 의료 장비는 물론 보호 장비조차 부족해 한 병원에서만 600명의 직원이 감염되기도 했습니다. 사립병원에는 인공호흡기가 있는 중증병상이 있었지만 이용하려면 960달러를 내야 합니다. 호텔을 개조한 임시 치료 시설은 하루에 132달러고요. 하루 1.90달러 정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은 아니었습니다.

인도 이주 노동자들이 지난 3월29일 뭄바이 인근 고속도로에서 자녀를 안고 짐을 진 채 고향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결국 도시 빈민촌의 이주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고향길에 나섭니다. 3월 한 달 동안에만 50만~60만명이 도시를 떠났습니다. 역과 터미널은 귀향객으로 북새통을 이뤘고, 대부분은 교통편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냄비, 프라이팬, 담요 등을 짊어진 채 고속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어떤 소녀는 아버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열흘 동안 1000㎞를 달렸습니다. AP통신은 이를 ‘인도 현대사에서 가장 큰 이주 중 하나’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통사고나 열사병으로 숨진 사람만 100명이 넘었습니다.

대이동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내륙 지역 곳곳에 퍼뜨렸습니다. 68일간 지속됐던 봉쇄조치도 경제상황 때문에 더 지속하기 어려웠습니다. 7월 신규 확진자 수는 하루 9만명을 넘어섰습니다. 뉴델리 시민 5명 중 1명이 코로나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됐고, 뭄바이 빈민가의 항체보유율이 57%에 이르러 세계 최초로 집단면역에 성공한 것 아니냐는 웃지 못할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유례 없이 강력했던 봉쇄조치는 그렇게 가장 약한 곳에서부터 허물어져 갔습니다.

■케냐, 코로나는 막았을지 몰라도...

지난 4월10일 케냐 나이로비의 한 빈민가에서 사람들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피해 달아나고 있다. AP연합뉴스


세계 최강의 봉쇄 조치를 꼽자면 이 나라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규모는 인도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강도는 더합니다. 올 초 케냐의 경찰관이 사람들이 모인 곳에 최루탄을 던지거나 심지어 총을 쏘는 장면이 국내 인터넷 사이트에 돌기도 했는데요. 실제 케냐에서는 통금 조치나 거리두기를 위반하는 사람들에게 총격도 불사했습니다. 인권 관련단체 ‘워치독’에 따르면 지난 10월까지 케냐에서 봉쇄조치와 관련해 최소 24명을 살해한 혐의로 경찰이 기소됐고, 이에 대한 항의 시위로 경찰서 3곳이 불탔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13살 소년도 있었습니다.

이런 지독한 거리두기 덕분인지 케냐는 남미나 다른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과 비교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지난 24일 기준 케냐의 인구 10만명 당 감염자수는 177명 정도이고 인구 10만명 당 사망자 수도 3.1명 정도입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겪는 고통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심각합니다. 케냐는 3월12일 첫 확진자가 발생한 이래 야간통행금지와 국경 봉쇄 등의 초강경 거리두기 조치를 시행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무서운 봉쇄조치로 사실상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케냐의 벽화 예술가 엘레그와 위클리프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친구들은 여러 일을 하고 있었지만 통금 시간 때문에 소득이 줄거나 완전히 사라졌다”며 “최후의 수단으로 도둑질에 나서고 있다”고 말합니다.

아이린 완질라(10)가 지난 9월29일 케냐 나이로비의 한 채석장에서 망치로 바위를 부수고 있다. AP연합뉴스


특히 아이들의 상황은 훨씬 심각합니다. 케냐는 봉쇄조치의 일환으로 올 초부터 모든 학교에 전면 휴교령을 내렸습니다. 학교 급식으로 배고픔을 해결했던 아이들은 부모들의 소득까지 사라지면서 심각한 굶주림에 노출됐습니다. 학교 대신 채석장이나 쓰레기장에서 단돈 몇 실링을 받고 중노동을 합니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동 학대도 늘었습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케냐 사무소가 올 초 10~17세 사이의 케냐 아동 1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아동 중 44%가 “아동 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했다”고 답했습니다. 소녀들은 매춘에 내몰렸고, 조혼의 악습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입을 하나라도 줄이려는 절박함에 사춘기도 안된 딸을 시집보내는 경우가 다시 늘고 있습니다.

엄마의 뱃속에 있는 아이 역시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가혹한 야간 통행 금지에 출산이 임박한 산모를 병원까지 데려다 주는 택시 기사를 찾기 어렵습니다. 결국 집 또는 길 위에서 위험천만한 출산을 감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코로나19는 케냐의 강력한 봉쇄조치에 감염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치명타를 가했습니다. 위클리프는 “빈민가의 청년들은 코로나19 대유행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범죄라고 믿기 시작했다”며 “이런 사고 방식을 없애려면 몇 세대가 걸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돌로레스 레예스 페르난데스(61)가 지난 6월22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요양원에서 비닐 방역 커튼을 사이에 두고 아버지(87)와 포옹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스페인,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었다?

스페인은 세계에서 기대 수명이 가장 긴 나라 중 하나입니다. 그만큼 노인 복지 제도가 잘 돼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이번 코로나 대유행에서는 가장 끔직한 ‘노인 잔혹사’가 벌어졌습니다.

지난 2월25일 본토에서 처음 확진자가 나온 스페인에서는 3월8일 ‘세계여성의날’ 행사에 10만명이 넘는 군중이 몰리면서 나흘 동안 확진자 수가 4배 폭증했습니다. 이탈리아와 더불어 유럽 최대의 감염국이 됐고, 감염병 대응 준비가 안돼 있던 의료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사망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이 때문에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아이스링크를 임시영안실로 개조하기까지 했습니다.

특히 고령층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왔는데요. 대유행 초기 3개월 동안 발생한 사망자 2만7000여명 가운데 1만9000명 이상이 노인들이었습니다. 이는 공식 집계일 뿐 실제로는 4만3000명 이상의 노인이 첫 3개월 동안 사망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습니다.

이런 참상은 스페인 노인 복지 시스템의 상징인 요양원과 관계가 깊습니다. 인구의 약 19%가 65세 이상인 이 나라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요양원 사업이 전국적으로 성장해왔습니다. 2019년 기준 사업 규모가 49억 달러에 달하며 전국 5400여개 이상의 요양원에서 37만3000명의 고령자가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70% 정도는 개인이 운영하는 민간 요양원입니다. 또 공공 요양원 역시 45%가량(약 4만5000개 병상)이 민간이나 해외자본에 의해 위탁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자본들 중 상당수는 사모펀드로, 단기 투자 수익을 노리고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수익 확대를 위해 인력이 감축되고, 시설 투자가 중단됐습니다. 야간 당직 의사를 없애고, 간병인 수를 줄였습니다. 간병인 한 명이 10명이 넘는 노인을 돌봐야했습니다. 노인들은 화장실조차 제 때 갈 수 없었고 이 때문에 기저귀를 차고 생활하는 경우도 보도됐습니다.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면 몇 주간 그대로 방치됐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요양원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노인의 시신이 지난 11월13일 침대 위에 놓인 채 시트에 덮여져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대유행이 닥쳤고, 치료는커녕 최소한의 방역조치조차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노약자들이 모여있는 탓에 단 한 명만 감염돼도 순식간에 온 시설이 중증환자로 가득 찼습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간병인들이 노인들을 방치한 채 달아나면서 요양원에서 노인들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AP통신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의 군사독재를 이겨내고 지금의 복지 국가를 일궈낸 주역들이 그렇게 떠나갔다’고 애도했습니다.

결국 스페인 정부는 특단의 조치를 내립니다. 3월16일 모든 의료서비스 제공시설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한다고 발표합니다. 민간 요양원과 양로원의 통제권도 인수하고 사회 복지사 및 간병인을 보충하기 위해 3억3300만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이 재정부담은 미래세대가 지게 될 것이라고 AP통신은 전했습니다. 스페인은 기업과 일자리를 보호를 위해서도 이미 수십억 달러를 퍼붓고 있으며 이 때문에 올해 GDP는 11.3%, 내년 GDP는 7.7% 각각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세대가 부린 욕심의 대가를 후손들이 져야 할 판입니다.

한 간호사가 지난 4월10일 이탈리아 밀란의 한 병원에서 방역 마스크 대신 치과용 마스크 두장을 겹쳐 쓰고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러 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이탈리아, 생각보다 약했던 공공의료…생각보다 강했던 지역 감정

이탈리아는 ‘공무원 의사’들이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공공의료체계가 일찍부터 확립돼 응급 진료 등도 무료로 받을 수 있습니다. 노인이 많은 나라답게 ‘주치의’가 담당 가정을 방문하는 가정 방문 진료도 활성화돼 있습니다. 그러나 공공의료체계가 확고할수록 감염병에 잘 대응할 거란 예상을 깨고 이탈리아는 대유행 초반부터 ‘유럽 코로나의 진원지’, ‘유럽의 우한’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습니다. 특히 의료 체계가 대유행 몇 주 만에 붕괴되면서 노인들에 대한 치료는 사실상 포기했습니다. 세계는 의아해 했습니다.

‘주치의’들이 가정을 방문하는 진료 방식은 대유행 초반 매뉴얼 부재와 장비 부족 등으로 환자는 물론 의료진에게도 큰 피해를 안겼습니다. ‘주치의’들은 자신의 감염 여부도 알지 못한 채 방역 장비도 없이 이집 저집을 돌아다녔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퍼뜨렸습니다. 4월 초까지 2만명의 의료진이 감염됐고 150명의 의사가 사망했습니다. 12월이 되자 감염된 의료진이 8만명에 달했습니다. 공포와 피로 등으로 현장을 이탈하는 의료진도 나왔습니다. 집중치료실(ICU) 부족은 사망자를 대거 발생시켰습니다. 이탈리아의 ICU 확보율은 인구 10만명 당 8.6개로 OECD 평균(15.9개)의 절반, 독일(33.9개)의 4분 1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노인 인구가 많은 이탈리아에선 중증환자가 속출했습니다. 대유행 초기 확진자가 집중된 롬바르디아 지역의 ICU는 일찌감치 포화됐고, 환자들은 집에서 죽어갔습니다.

이탈리아 북부 베르가모의 지역지 ‘에코 디 베르가모’의 지난 3월17일자 지면들에 부고 기사가 가득 차 있다. AP연합뉴스


WHO 보고서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2006년 이후 인플루엔자 대유행 대비 계획을 개선하지 않았습니다. 전염병 등에 대한 대응 능력을 평가한 글로벌보건보안지수(Global Health Security Index)의 2019년 조사에서 이탈리아는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31위에 그쳤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응급 대응, 대비 및 의료 종사자와의 의사 소통에서 특히 낮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공공의료체계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관장하면서 의료인들이 관료화됐고, 재정부담 때문에 처우 개선이나 장비 확충이 뒷전으로 밀렸으며, 이 때문에 스위스 등 주변국에 고급 인력들을 빼앗긴 게 전반적인 질적 저하를 초래했다는 겁니다. 반면 나빠진 경제상황 때문에 공공 의료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지 못한 게 문제이며, 최근 커지는 민간 의료 시장이 공공 부문의 인력을 대거 흡수하면서 오히려 의료진 부족이 심해졌다는 반론도 나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이탈리아의 공공의료는 코로나19를 막을 만큼 단단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국민들끼리의 유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사적 배경과 빈부 격차 때문에 오랜 시간 반목했던 북부와 남부는 이번 대유행으로 인해 사이가 더욱 멀어졌습니다. 대유행 초기 롬바르디아를 비롯한 북부 지역이 의료진과 장비부족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남부는 어떤 지원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피난 온 북부인들에 ‘병을 퍼뜨리러 왔냐’며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 남부 쪽 확진자가 늘기 시작하자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한국에서처럼 대구에서 확진자가 급증하자 호남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의료진과 장비를 보내던 모습을 이탈리아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페루, 16세기 피사로의 악몽이 재현되다

영안실이 꽉 찬 페루 리마의 한 병원 직원들이 지난 5월15일 병원 옆 공터에 마련된 냉동 컨테이너로 시신 가방을 옮기고 있다. AP연합뉴스


그러나 공공의료 자체를 우습게 봐서는 안 됩니다. 공공의료체계가 열악한 곳에서 감염병이 돌면 어떤 사태가 벌어지는지, 페루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EFE통신에 따르면 페루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 의료 지출 비중은 2.2%로, WHO의 권고 수준인 6%에 한참 못 미칩니다. 그나마도 부패스캔들 떄문에 신축 중이던 병원의 공사가 중단되거나 공무원들에게 엉터리 방역 장비가 지급되곤 합니다. 의사 수는 인구 1만명 당 13명으로 중남미에서도 최저 수준입니다. 대유행이 닥친 지난 3월에도 페루 보건부는 가용 ICU가 100개 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현실은 높은 빈곤율과 고용인의 70%가량이 비공식 노동자일 정도로 비대한 지하경제 등과 맞물려 모든 노력을 무위로 돌렸습니다. 페루는 중남미 국가 중 가장 먼저 지난 3월16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전국민에 자택 격리령을 내리고 국경을 봉쇄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먹고 살기 위해 무엇이든 해야했고, 첫 두 달 동안에만 5만명 이상이 통행 금지 위반으로 체포됐습니다.

초기 확진자를 가려내야 했지만 PCR(분자 진단)검사를 수행할 실험실이 나라에 단 한 곳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옆 콜롬비아도 22곳이 있었는데 말이죠. 어쩔 수 없이 별도의 실험실이 필요 없고 더 저렴한 중국산 항체검사 키트를 도입했습니다. 그러나 이 키트는 경증이나 무증상 감염자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했고, 음성 판정을 받은 감염자들이 거리를 활보하게 만들면서 오히려 초기 코로나19 대확산의 촉매제가 돼버립니다.

각급 병원에선 중증환자를 위한 의료용 산소가 동이 났습니다. 예산 부족과 업체 간의 담합, 공급 체계 마비 등이 겹쳤습니다. 환자의 가족들은 암시장에서 직접 산소를 구해야 했고, 산소 가격은 1000% 이상 치솟아 한 통당 한화 160만원 가량을 줘야했습니다. 사람들은 돈을 빌리러 다니기 바빴습니다.

초기 확진자들은 해외여행객이 많은 부유한 지역에서 주로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저소득층들이 사는 밀집 지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아마존 열대 우림의 원주민 거주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선 의사를 아예 찾아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2020년 9월 페루 우카얄리 지역의 한 주택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거주민의 시신이 검은 비닐과 테이프로 꽁꽁 묶인 채 침대 위에 놓여있다. AP


지난 9월 페루는 전 세계에서 인구수 대비 코로나19 사망자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습니다. 하루 수백 명의 페루인들이 집에서 죽어갔습니다. 병원에 가지 못한 채 병사하거나 생활고·공포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AP통신에 따르면 페루인 10명 중 7명은 코로나19로 죽은 지인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신들을 거두고 집을 청소하는 일은 그들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맡았습니다. 경제난 때문에 고국을 떠나온 베네수엘라 이민자들이었죠.

잉카의 후예인 페루인들은 매장의 전통을 더 이상 지키기 어려웠습니다. 방역 때문이 아니라 묘지 공간이 부족해 화장을 해야했습니다. 16세기 곤살로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인들이 천연두를 퍼뜨려 조상들의 왕국을 멸망시킨지 약 500년이 지난 지금, 그 후손들은 다시 그에 비견될 만한 비극에 직면했다고 외신들은 평했습니다.

■“위기가 준 유일한 선물”
코로나19는 가장 약한 곳부터 무너뜨렸습니다. 가장 약한 사람들, 시스템의 가장 취약한 부분, 느슨한 유대와 반목으로 벌어진 틈을 먼저 파고들었습니다. 그 틈은 점점 커져 방역망 전체를 무너뜨렸습니다. 방역 준비와 의료체계, 봉쇄조치에 만전을 기해도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코로나19 같은 재앙은 언제까지나 불가항력적인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취약점을 알고도 방치한 경우도 있었고, 그간 간과했던 부분이 이번 대유행으로 드러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고쳐야할 것들을 보여줬습니다. 스페인의 사설 요양원에서 아버지를 잃고 요양원을 고소한 엘레나 발레로는 “위기(코로나19 대유행)가 우리에게 준 유일한 선물은 노인 돌봄 시스템을 전면 개편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선물(?)을 외면하면 어떤 결과가 올지 안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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