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헹씨의 죽음을 둘러싼 미심쩍은 의문점 세 가지

최정규 2020. 12. 29. 11: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만든 이상한 사고발생 경위 보고서.. 불법 방치, 책임 없나

[최정규 기자]

 속헹씨 등 이주노동자 5명의 기숙사
ⓒ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 제공
경기도 포천 한 농장 기숙사로 쓰는 비닐하우스에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 속헹(30)씨가 가 숨진 채 발견된 건 지난 20일이다. 4년 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비전문취업비자(E-9)를 받고 입국해 고용노동부가 지정 알선한 농장에서 일해오던 중 농장주가 제공한 기숙사에서 사망한 것이다.  

체류기간이 끝나는 다음 달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귀국 비행기 표까지 끊어 놓고 숨진 속헹씨 소식이 알려진 건 지난 23일이었다. 이 사건을 세상에 처음 알린 시민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포천이주민센터 등은 속헹씨가 추운 날씨에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비닐하우스에서 자다가 동사했다고 주장했다.

사망 이후 3일 동안 부검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던 포천경찰서는 언론보도가 있던 23일 부검영장을 신청했고, 2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결과 1차 구두 소견으로 '사인은 간경화로 인한 합병증으로 보이며, 동사했을 것으로 추정할만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한,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은 국회의원 강은미 의원실의 자료요청에 사고발생경위를 정리해 보내왔다.
 
 강은미 의원실 제공(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 답변자료 중 일부)
ⓒ 최정규
 
[의문1] 사망 당시 난방장치는 제대로 작동되고 있었나

시민단체가 동사했다고 주장한 이유는 22일 밤, 속헹씨 동료 A씨가 남긴 말 때문이었다. 속헹씨의 죽음에 상당한 충격을 받은 A씨는 속헹씨가 죽기 전날 밤의 상황을 설명하여 울먹였다.

"바닥난방은 우리가 스위치(누전차단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를 올리면 켜지는 구조인데, 그렇게 스위치를 올려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스위치가 다시 내려온다. 농장주도 이 사실을 잘 안다. 스위치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해도 농장주는 자기 집도 끊어진다고 말한다. 그 뿐이다

속헹이 사망하기 전날인 토요일부터 계속 스위치가 올라가지 않았다. 다른 전기 장비를 모두 끄고 난방만 켜려 해도 스위치가 올라가지 않았다."
 
ⓒ 이주노동자기숙사산재사망대책위 제공
 
죽음을 목격한 동료들이 난방장치의 작동 여부에 대해 시민단체에 허위로 이야기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동료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 공무원 조사에서는 난방, 온수에 대해 문제가 없다고 진술했다. 왜 그 진술은 번복된 것일까?

시신을 발견한 4명의 이주노동자는 농장주가 제공한 비닐하우스 집에 거주한다. 이주노동자들과 농장주는 '분리'되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분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제도적으로도 분리되지 않았다. 아직 동료 이주노동자들은 농장주에게 고용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물리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료 이주노동자들은 진술을 번복했을 가능성이 있다. 시민단체들은 동료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고용허가를 직권취소하여 사업장변경절차를 진행하고 그들에게 다른 숙소를 마련해 제공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24일 보도설명자료를 통해 "동료 외국인 근로자 대상 심리안정프로그램 참여를 안내하고 사업장 변경을 희망하는 경우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의문2] 속헹씨만 피해자일까

고용노동부가 동료 이주노동자들을 농장주와 적극적으로 분리하지 않는 것은 속헹씨만 피해자이고 동료 이주노동자들은 피해자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속헹씨만 피해자일까?

기숙사 관련 근로기준법 조항은 지난 2019년 7월 개정됐다. 기숙사 설치장소와 관련해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장소 등을 피하여야 한다'는 규정은 '소음이나 진동이 심한 장소, 산사태나 눈사태 등 자연재해의 우려가 현저한 장소, 습기가 많거나 침수의 위험이 있는 장소, 오물이나 폐기물로 인한 오염의 우려가 현저한 장소 등 근로자의 안전하고 쾌적한 거주가 어려운 환경의 장소에 기숙사를 설치해서는 안 된다'(근로기준법 시행령 제56조)고 변경됐다.

농장주가 속헹씨와 동료 이주노동자 4명에게 농어촌 비거주지역에 설치해 제공한 기숙사는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보도설명자료에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에는 고용허가를 불허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런 숙소제공이 불법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농지에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기숙사로 제공하는 것은 현행 농지법과 건축법상 불법이다. 6평을 넘지 않는 농막은 신고만 하면 되는 건축물이지만 거주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다중이용시설 등 기숙사를 건축하기 위해서는 건축법상 포천시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 포천시청 관계자도 언론 인터뷰에서 현장조사 결과 농지법상 불법행위로 판단되고, 원상회복을 요청한 후 이행되지 않을 경우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료 이주노동자들도 근로기준법 등 관계 법령에 의거한 적법한 기숙사를 농장주로부터 제공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건강을 침해받은 피해자들이다. 속헹씨처럼 사망하지 않았다고 피해가 도외시돼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불법 기숙사를 제공받아 건강권을 침해받은 동료 이주노동자들을 가해자인 농장주와 적극적으로 분리하지 않았다. 이는 과연 정당한가?

고용노동부는 동료 이주노동자들에게 사업장변경을 설명했다고 하지만, 사업장변경으로 인한 불이익이 있는지 여부, 사업장변경절차가 진행될 3개월의 기간 동안 기거할 숙소 제공 여부 등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이 이루어졌는지 확인해주지 않았다. 동료 이주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사업장변경신청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최선일까?

[의문3] 고용노동부, 실체적 진실 발견할 의지 있나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의거할 때 산간 또는 농어촌 비거주지역에 설치된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임시가옥은 기숙사로 적합하지 않기에 금지되어야 했지만,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 기숙사에 대해서는 그대로 허용했다. 

2019년 7월 16일 제정돼 시행된 '외국인근로자 기숙사 정보 제공에 관한 규정' 별지 1(외국인 기숙사 시설표)에는 설치장소에 '산간 또는 농어촌 비주거지역', 주거시설에 버젓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도 포함시켰다. 
 
 '외국인 기숙사 시설표' 중 일부
ⓒ 최정규
 
더 나아가 고용노동부는 2017년 2월 6일 '외국인근로자 숙식정보 제공 및 비용징수 관련 업무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데, 이 지침에는 이런 불법 기숙사(산간 또는 농어촌 비주거지역 임시 주거시설)에 대해 사업주가 통상임금의 최대 13%까지 급여에서 공제할 수 있도록 했다.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수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제6조의 2(근로감독관 등)에 의거할 때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범죄에 관하여 사법경찰관의 직무를 수행한다. 

근로기준법 제114조는 사용자가 부속 기숙사의 설치운영기준을 위반했을 때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범죄수사규칙에는 참고인으로서 범죄수사와 관련하여 보복을 당할 우려가 있는 경우 피해자에 준해서 보호해야 한다고 규정(제200조 제3항)하고 있다. 수사기관은 피해자를 조사할 때는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여 조사에 적합한 장소를 이용해야 하고 가해자와의 분리 원칙을 규정(제201조, 제202조)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가해자인 농장주의 집에서 동료 이주노동자들을 면담했다. 농장주와 분리가 제대로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범죄수사규칙을 제대로 준수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시민단체가 속헹씨의 동사를 주장하는 근거(동료노동자와 22일 나눈 대화)에 대해 확인하려는 노력도 아직까지는 없다.

고용노동부는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 등 수사의 기본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해장애인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에서 2018년 패소한 바 있다. 염전노예사건에서 피해장애인 조사 시 가해자와 분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재판부는 기본적인 수사원칙을 지키지 않았다고 질타하며 객관적 정당성이 결여된 법령 위반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제라도 수사의 기본원칙을 지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불법 기숙사를 제공한 농장주를 처벌해야 할 것이다.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주거시설, 그대로 둘 건가  
 
 최근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비닐하우스 숙소 사망 관련 진실 규명 및 대책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이희훈
 
문재인 정부 들어 20번 넘는 부동산 대책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두 달에 한 번꼴로 발표된 부동산 대책을 통해 문재인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서민들의 전세대책 등 주거권보장을 살뜰히 챙기고 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은 제대로 챙기지 않았다. 지난 2019년 겨울 기숙사 화재로 이주노동자가 사망했을 때도, 올해 여름 수재민 중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에도, 농어촌 비주거지역 비닐하우스는 그대로 방치되었다.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강조한 내용이다. 그러나 그 사람에 '이주노동자'도 포함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속헹씨 사망사건 이후에도 기존 기숙사 시설에 대해서는 현장방문은 하지 않고 통역사를 통해 전화상담을 하겠다고 한다. 근무시간 중 농장주 옆에서 받는 전화로 이주노동자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상황을 호소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용노동부는 '간경화 합병증'이라는 국과수발표 1차 사인 뒤에 숨어서는 안된다. 속헹씨는 4년 전 한국에 입국한 후 건강진단을 받았고, 그 검사에는 "소변검사(요PH, 요당, 요단백, 요잠혈), 빈혈(hemoglobin), 혈당(glucose), 지질(총콜레스테롤), 간기능(SGOT, SGPT, r-GTP), 혈액형(ABO, RH), 간염항원(HBs Ag), 매독(VDRL), 흉부간·직촬, 결핵" 검사가 포함돼 있었다.

속헹씨는 위 건강진단결과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4년 넘게 노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4년 후 간경화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은 이주노동자의 노동환경과 기숙사 주거환경이 이주노동자의 건강권에 치명적으로 침해하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라도 고용노동부가 나서서 철저히 속헹씨의 죽음과 관련한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 건강권을 침해하는 농어촌비거주지역 비닐하우스 등 임시주거시설을 기숙사로 제공하는 사업주에 대한 고용허가는 즉각 취소되어야 한다.  

[관련 기사]
속헹씨 시신 발견한 동료들, 여전히 비닐하우스에 산다 (http://omn.kr/1r65h)
비닐하우스서 죽은 서른 살 이주노동자, 막을 수 있었다 (http://omn.kr/1r4y4)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