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하는 자가격리자는 맨밥만 먹어야 하나요
[경향신문]
채식하는 자가격리자는 맨밥을 먹어야 할까. 지자체들이 자가격리 상태인 이에게 전달하는 보급품에 채식주의자가 먹을 만한 음식이 극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자가격리자 보급품의 대부분을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위주의 식품들이 차지해 채식주의자는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서울, 인천, 고양 등 지자체의 자가격리 보급품을 조사한 결과 대부분이 영양적으로 육식에 치우쳐 있었다고 29일 밝혔다. 카라는 자가격리 상황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고, 절제와 환경보호 같은 코로나19 극복의 정신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카라가 공개한 보급품 사진을 보면 대부분의 식재료가 닭고기나 돼지고기, 쇠고기로 만든 식품들이었다. 레토르트 식품이나 통조림 식재료도 대부분 육류인 것으로 나타났다. 채식주의자라면 보급품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쌀밥과 김치, 김 정도뿐이었다. 채식 여부를 떠나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물품 위주인 점도 문제다.
카라는 “이 같은 보급품은 채식주의자는 물론 일반인의 영양 공급에도 크게 도움이 안 된다”며 “2주간이나 외부와 차단돼 운동 부족과 체중 증가로 인한 대사성 질환 악화, 이로 인한 우울감까지 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급품에 포함된 육류가 그대로 폐기되는 낭비로 연결될 수도 있다.
서울의 경우 현금 10만원으로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지역은 선택지가 없이 보급품을 받아야 한다. 육류를 빼고 받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채식주의자인 자가격리자 중에는 즉석밥 외에 먹을수 있는게 없는 데다 자가격리자 입장에서 남는 식품을 타인에게 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보급품을 포기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카라에 따르면 현재 기존의 육식 식습관을 되돌아보고 채식을 시작하는 국민들의 수는 약 150만명가량으로 추산된다. 군대에서도 내년부터 채식주의자를 위한 식단이 도입되고, 서울시교육청 등에서 학생들의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생태전환교육 중장기 발전계획(2020~2024)’에서 채식 선택권 도입의 배경을 “건강문제와 기후위기를 인식하고 채식을 선택하는 청소년들이 증가함에도 학교 급식은 육식 위주라 불평등과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고 설명했다.
카라 최민경 활동가는 “방역 공무원들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것은 알지만 격리 기간을 건강하게 보낼 수 있는 세심한 배려도 필요하다”며 “신선한 과일이나 보관이 용이한 채소,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반찬, 현미 즉석밥, 채식주의자용 만두나 라면 등은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격리 상태인 모든 이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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