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백신 확보한 日 연말 풍경

이태동 도쿄 특파원 2020. 12. 3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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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저녁 도쿄 우에노역 인근 아메요코 시장에 몰려든 인파. /EPA 연합뉴스

‘시부야 +11.7%, 긴자 +11.9%, 이케부쿠로 +21.8%.’

지난 27일 오후 10시 일본 수도 도쿄도(都) 내 주요 번화가의 ‘통행량’을 일주일 전 시점과 비교한 수치다. 28일엔 전국 주요 95곳 중 64곳의 통행량이 전주보다 늘었다는 데이터도 발표됐다. 요즘 일본에선 이렇게 휴대폰 위치 정보로 조사한 통행량 증감 정보가 매일같이 공개되는데, 연말이 되면서 수도권이고 지방이고 ‘인파 감소’보다 ‘증가’ 소식이 더 많이 들린다.

거리에 나가면 피부로 느낀다. 도요스 등 도쿄 곳곳의 야외 스케이트링크는 얼음 반 사람 반이다. 번화가의 일루미네이션 앞은 셀카족들로 늘 붐빈다. ‘드라마 한류’ 덕에 인기가 올라간 한인타운 신오쿠보에선 예약 문의가 너무 많아 현장 손님만 받겠다는 식당이 늘고 있다.

크리스마스날 히비야 공원 앞에 갔다가 사람으로 바글바글한 식당가를 보면서 이곳이 하루 3000명씩 감염자가 나오는 나라가 맞나 싶었다. 스가 총리가 이날 저녁 ‘조용한 연말연시’를 호소했지만 이후에도 인파는 거의 줄지 않았다. 오히려 연휴를 맞아 공항까지 붐비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마스크, 소독약이 보인다는 점만 빼면 여느 해와 다를 게 없다. 감염 상황이 좋아지는 건 아닌데 통행량이 느는 이유는 뭘까. 장기간 ‘외출 자숙(自肅)’을 압박받다가 “이젠 한계”라며 뛰쳐나오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최근 코로나 대응 조사(일본생협)를 봤더니 ‘친구·지인과 만남’ ‘외식’ ‘당일 여행’ 등을 삼간다는 비율이 각각 40% 초반(11월)까지 떨어졌다. 7월에 비해 20%포인트 이상 감소한 것이다.

백신의 출현이 이런 분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터널 끝이 보인다’는 기대감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서 ‘나도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를 걱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보단 ‘반드시 맞아야 하는가’ 같은 주제가 이야깃거리다. 백신이 넉넉하기에 할 수 있는 ‘배부른’ 걱정이다. 일본은 1인당 2.3회분 백신을 확보했다.

일본 정부도 이제 백신에 모든 걸 걸기로 한 듯하다. 총리는 “백신이 코로나 대책의 결정적 수단”이라며 백신을 통해 코로나를 극복하고, 경제도 이전으로 돌려놓겠다고 했다. 총리는 2차 긴급 사태 선언에도 부정적인데 이런 판단 뒤엔 백신이 있다. 전 인구 접종을 내년 상반기 안에 끝낸다고 한다.

바다 건너 우리의 연말 소식은 여러모로 ‘정반대’다. 우리 국민은 강압적 조치를 지금껏 준수해왔고 연말에도 각종 자제령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하지만 ‘재앙이 곧 물러간다’는 희망보단 ‘늑장 백신’의 허탈감을 안고 새해를 맞는다. 누군가에겐 코로나 백신이 추석 선물이 될 판이다. 내년 이맘때엔 보통의 연말연시를 누릴 수 있을까. 문득 불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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