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류 백신 안 맞겠다" 개도국 불신에 흔들리는 中 '백신 외교'

이현승 기자 2020. 12. 3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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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100여개 국가와 백신 공급·구입대금 지원 협약
中 외교부 대변인 "백신으로 사익추구·사재기 안한다"
개도국 영향력 강화 목적으로 자국산 백신 공급 확대
중국산 백신 접종 불가피한 국가들도 "안맞는다" 응답
임상시험 데이터 불투명… "이류 백신 인식 확산 자초"

중국이 시진핑 국가주석 주도로 추진중인 백신 외교가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불신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맞닥뜨렸다.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브라질, 케냐 등 중국산 백신 접종이 불가피한 나라들조차 '이류(二流) 백신은 맞지 않겠다'며 고개를 내젓는 국민들을 설득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2020년 12월 6일(현지시가) 인도네시아 대통령궁이 중국 시노백의 임상시험용 백신이 가루다 인도네시아 항공 비행기에 실려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을 찍어 올렸다. /AP 연합뉴스

28일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트위터에 "부유한 국가들이 내년 생산 예정인 백신 120억개 중 4분의3을 예약한 상황에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에게 중국산 백신은 유일한 선택지일 수 있다"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면서 사익을 추구하거나 사재기 하거나, 물품을 독점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 백신 국가주의(vaccine nationalism)를 거부해야 한다"고 썼다.

현재까지 중국은 전세계 100개 가까운 국가들과 백신과 관련한 협정을 체결한 상태다. 협정 내용은 ▲백신 우선 공급 ▲백신 구입대금 지원 ▲백신 임상시험 및 제조 협력 등이다. 대부분 개발도상국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만든 국제 백신 공동구매·개발 프로젝트인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에도 백신을 공급하기로 했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브라질,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등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와 현지 인터뷰를 인용해 중국이 그들의 백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수백만명의 국민들에게 확신을 주는 데 실패했다고 전했다. 현재까지 중국산 백신의 긴급 사용을 승인한 국가는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 뿐이다.

미국 화이자와 모더나가 개발한 백신이 3상 임상시험에서 90%가 넘는 효능이 입증됐다고 밝힌 것과 달리 중국산 백신의 경우 아직 임상시험이 끝나지 않은 가운데 중간 데이터도 충분히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7월 이후 100만명 이상에게 백신을 긴급 투여 했으나 심각한 부작용은 없었다고만 밝히고 있다.

중국 제약사 시노백의 브라질 임상시험을 돕고 있는 브라질 부탄탄 연구소는 23일(현지시각) 시노백 백신의 효능이 50% 이상이라고 밝혔다. 미국 규제당국의 긴급 승인 최저기준을 충족했다는 의미이지만 연구소 측은 세부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터키 임상시험에선 백신 효능이 91%에 이른다는 결과가 나왔으나 시험 대상자 가운데 코로나 감염 사례가 29건에 그쳤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협회의 황옌총 연구원은 "중국산 백신 밖에 구할 수 없는 나라에서 선택지는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둘 중 하나"라며 "하지만 여러가지 백신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면 사람들은 데이터가 충분하고 세계 1위인 서구권 백신을 선택할 것이다. 중국은 지금까지 그 어떤 체계적인 자료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브라질은 이달 초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국민 절반이 시노백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답했다. 백신 무용론자로 알려진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이 10월 "중국 백신을 사지 않을 것이다. 신뢰할 수 있는 다른 백신이 있다"고 말하면서 국민들의 불신을 부추겼다. 그러나 21일 상파울루는 시노백 백신 550만회분을 수일 내에 들여올 것이라고 밝혔다.

아프리카의 여론조사기관 TIFA 리서치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아프리카 국민들이 미국, 영국에서 만든 백신을 중국이나 러시아산 백신보다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미 중국과 백신 공급 계약을 체결한 일부 개도국은 지도자가 먼저 접종 함으로써 국민들의 불안을 잠재우려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시노백에 1억2550만회분의 백신을 주문한 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내가 가장 먼저 접종 받겠다"고 이달 중순 밝혔다. 아랍에미리트 총리인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은 지난달 3일 시노팜 백신을 접종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산 백신이 다른 것보다 열등하다(inferior)는 느낌을 해소시키지 못한다면 중국이 서구권 국가들보다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을 더 잘했다는 시진핑 주석의 주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홍콩씨티대학의 니콜라스 토머스 건강보장학 부교수는 "코로나 백신을 일반 대중이 받아들이려면 투명성이 필요하다"며 "투명한 데이터가 없다면 백신에 1류, 2류가 있다는 인식이 나타나기가 너무 쉽다"고 말했다.

6년 간 주중 멕시코 대사를 지낸 호르헤 과하르도 맥라티 어소시에이츠 이사는 "중국은 백신 외교를 하고 생명을 구하는 제품을 전세계에 공급할 중요한 기회를 가졌다"며 "하지만 내 경험상, 외교에 관여할 때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망쳤다. 원조를 받고 있는 국가들을 화나게 만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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