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속속 뛰어드는데..삼성이 전기차 안 만드는 이유

입력 2020. 12. 30. 16:25 수정 2020. 12. 3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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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LG전자 등 라이벌들의 미래차 시장 선점 경쟁 본격화
-삼성 전기차 ‘갤럭시카(?)’ 나올까…완성차 재진출설 ‘솔솔’
-삼성 “파트너사와 경쟁하지 않는다” 일축


애플카의 콘셉트 이미지. /렛츠고디지털 제공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삼성전자의 라이벌 기업인 애플과 LG전자가 잇따라 미래 자동차 시장 선점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IT, 전자업계 글로벌 기업들이 배터리, 자동차 전장(전자 장비) 등 전기차 관련 사업에 속도를 내면서 삼성전자의 미래차 행보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미래 먹거리 격전지로 떠오른 전기차 시장

초고속 성장 산업인 전기차 산업에는 아직 선두 플레이어가 없다는 점에서 시장 선점을 위한 기업들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IT 강자인 애플도 그 중 하나다. 애플은 2024년까지 최첨단 수준의 배터리 기술을 탑재한 자율주행 전기차 ‘애플카(가칭)’를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LG전자도 차세대 성장 사업으로 낙점한 전장사업에 더 힘을 싣고 있다. 12월 23일 LG전자는 전기차 부품 사업 부문 중 그린사업 일부를 물적분할해 글로벌 3위 자동차 부품업체인 캐나다의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 분야 합작법인(JV)을 설립한다고 밝혔다. LG전자와 마그나의 합작법인은 ‘LG 마그나 이파워트레인(가칭)’이다.

마그나는 보쉬, 덴소에 이은 글로벌 3위의 자동차 부품회사로 전기차에 들어가는 파워트레인 등 부품의 엔지니어링 역량이 강점이다. 제너럴모터스(GM), BMW, 포드, 크라이슬러그룹, 다임러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자동차 새시와 내·외장재 생산을 비롯해 완성차 위탁 생산도 가능하다. LG전자는 애플의 전기차 생산 소식과 관련해 향후 애플카에 부품이나 모듈을 공급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주가도 급등했다.

애플은 이미 모바일 제품 전량을 위탁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전기차 제조 역시 외부에 위탁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그나는 애플의 전기차 사업 파트너로 꾸준히 거론돼왔고 애플카 제조가 현실화할 경우 제조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은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애플과 LG전자도 이미 거래 관계가 있어 LG 마그나 합작법인이 향후 애플카에 납품하는 구도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애플이 아니어도 LG전자는 마그나와 합작법인을 통해 이미 확보한 북미지역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고객사 외에도 유럽과 중국 등으로 수주 채널을 확대해나가며 애플의 최대 위탁 생산업체인 대만의 폭스콘처럼 ‘전기차 시장의 폭스콘’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있다.

LG전자는 세계 3위의 자동차 부품 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전기차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 분야 합작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LG전자 제공


LG전자는 전장사업을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키우기 위해 2013년 고 구본무 회장 때 처음 자동차 부품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3년 자동차 부품 설계 엔지니어링 회사 V-ENS를 인수하고 VC사업본부를 신설했다. 2018년에는 글로벌 5위의 오스트리아 헤드램프 제조사인 ZKW를 1조4400억원에 인수했다. LG전자의 전장사업은 과감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사업을 담당하는 MC사업본부와 함께 적자를 내는 사업부였다.

마그나 합작법인 설립을 기점으로 VS사업본부(인포테인먼트 중심), ZKW(램프), LG 마그나 이파워트레인(파워트레인) 등 자동차 부품 사업에서 3개의 중심축을 세우면서 시너지를 통한 실적 성장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는 마그나 합작법인의 2022년 흑자 전환, 2023년 매출 1조원 달성을 목표하고 있다.

◆ 삼성, 전장사업 강화해 미래차 선점 가속

전기차·자율 주행차로 대표되는 미래차 시장은 삼성전자에게도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주도로 2016년 미국의 전장 기업 하만을 80억 달러(약 9조3700억원)에 인수하며 전장사업 수직 계열화를 갖추고 미래 먹거리로 키우고 있다. 삼성이 완성차 사업 경험을 가지고 있고 소프트웨어뿐 아니라 하드웨어까지 만들 수 있는 기술 역량을 충분히 갖춘 만큼 삼성의 완성차 재진출설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자동차는 삼성이 진출해서 유일하게 제패하지 못한 분야다. 삼성은 이병철 창업자 때부터 자동차 사업 진출을 타진했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현실화하지는 못했다. 자동차 마니아였던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때에 이르러 삼성은 자동차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회장은 “자동차는 전자제품”이라며 앞으로 차와 전자제품의 구분이 모호해질 것을 예견하고 자동차사업에 속도를 냈다. 1987년 회장 취임 직후 자동차사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1995년 삼성자동차(현 르노삼성자동차)를 설립하고 자동차 사업에 진출해 현대차그룹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부도 상황에 몰렸던 기아자동차 인수도 추진했었다. 당시 기아차 인수전에는 삼성자동차, 현대자동차, 대우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 3사가 모두 뛰어들었고 3차 입찰까지 간 끝에 현대차가 1조2000억원에 기아차를 인수하게 됐다. 기아차 인수 실패와 IMF를 거치며 4조원이 넘는 막대한 부채를 안게 된 삼성의 자동차사업은 2000년 프랑스 르노그룹으로 넘어가면서 종지부를 찍게 됐다. 자동차사업은 삼성의 아픈 손가락이 됐다.

2020년 7월 삼성전기 부산사업장을 방문해 전장용 MLCC 제품을 살펴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전자 제공


르노삼성의 존재는 삼성전자의 완성차 재진출설이 꾸준히 제기되는 배경 중 하나다. 르노삼성과 삼성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지만 삼성카드가 르노삼성의 지분 19.90%를 아직 보유하고 있다. 2018년 삼성전자가 18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인공지능(AI), 5G, 바이오, 전장부품 등 4대 신성장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밝힌 직후에도 삼성의 완성차 재진출설이 불거졌고 삼성전자는 사내 미디어를 통해 완성차 사업 계획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렇게 완성차 진출설이 제기될 때마다 삼성 측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완성차에 진출하지 않는 이유를 ‘파트너와 경쟁하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에서 찾고 있다. 삼성이 완성차에 뛰어든다면 수많은 고객사가 삼성을 경쟁자이자 위협 요인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파트너였던 삼성이 경쟁자가 되면 고객사들이 삼성과 거래를 끊거나 핵심 부품을 무기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타격을 줄 수 있어서다.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1위인 대만의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철칙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철칙으로 애플, AMD 등 기업 수주를 싹쓸이해 2020년 4분기 기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55.6%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마그나 역시 직접 완성차를 만들어 팔지 않는다는 철칙을 지키고 있다. 완성차 고객사와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도 완성차에 진출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전장사업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유는 삼성이 이미 전장사업에서 세계적인 역량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은 미래차에 필요한 핵심 부품들을 만들어 공급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으며 세계적으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삼성전자는 전기차·자율 주행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시스템 반도체를 만들고 삼성SDI는 전기차의 심장인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차량용 디스플레이를 만들고 삼성전기는 차량용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등을 만들고 있다.

특히 미래차 시대에는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의 핵심 역량이었던 제조 기술보다 삼성전자처럼 배터리, 소프트웨어, 반도체 등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진 기업이 우위에 설 수밖에 없다. 자동차가 ‘바퀴 달린 컴퓨터’로 바뀌면서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 자동차의 상품 가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기존 완성차 강자들이 아닌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가진 테슬라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9호(2020.12.28 ~ 2021.01.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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