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환자 왜 못받냐면" 코로나 의사가 전한 참담 현실

김현예 2020. 12. 3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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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환자들을 안 받는 것이 아니라 못 받는 겁니다.”
지난 28일 자신을 ‘한 공공병원에서 코로나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의사”라고 밝힌 e메일 한 통이 중앙일보 기자에게 도착했다. 서울 구로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자, 요양보호사 4명이 감염이 두려워 떠났다는 내용의 기사를 보고 전해온 편지였다. 이날 중앙일보에서는 ‘참다참다 요양보호사 4명 떠났다…170명 확진 요양병원 비극’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코로나19 상황에서 요양병원 환자와 직원들이 처한 현실을 보도했다.

30일 서울 구로구 한 요양병원에서 레벨D 방호복을 입은 병원 관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병원 관계자는 "이 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이후 환자와 병원 근무자들이 이틀에 한 번씩 코로나19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고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병원 내 집단감염 후 요양보호사 4명이 집으로 자가격리를 떠난 구로구의 요양병원에선 지난 29일에도 14명의 확진자가 추가됐다. 이 병원에서만 나온 코로나19 환자는 총 190명에 달한다. 이 병원은 확진자 발생 이후 지난 15일부터 코호트(동일집단) 격리에 들어간 상태다. 30일 기준 확진된 환자 38명이 병원 이송을 기다리고 있고, 감염되지 않은 환자 115명이 아직 이 병원에 있다. 이 요양병원 환자 7명은 코로나19로 사망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박유미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요양병원에 있는 확진 환자가 가까운 곳은 경기도, 멀리는 전라도까지 내려가 병상이 비면 전원시키기 위해 전국적으로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코로나 의사가 말하는 '전원'의 어려움

이 의사는 이 기사를 본 후 “현실적인 문제를 알리고 싶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요양병원에 코호트 격리된 환자들은 (전원) 순서가 제일 뒤로 밀리고, 어느 공공병원이든 최대한 안 받으려고 하는 상황인 것은 맞다”고 했다. 다만 그는 “요양병원에 있다가 확진된 환자의 병원 이송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인력’”이라고 짚은 뒤 “코로나 입원 치료에는 기존 입원 치료 대비 최소 2~4배의 인원이 필요한 데다, 보호구 착용 등에 시간이 걸리고 한 명당 근무할 수 있는 시간마저 제한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력이 부족한 병원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증상이 경미하고, 나이가 많지 않고, 또 혼자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환자를 입원시키는 것”이라며 “서울에서 와병 중인 환자를 조금이나마 받아주는 곳은 시립보라매병원과 서울의료원 두 곳이지만, 거기도 마찬가지로 인력이 부족해 병상 여력이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서 적극적으로 이 환자들을 받아달라고 하고 있지만, 어느 병원에서도 선뜻 받아주지 못한다”며 “안 받는 것이 아니고 못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050명 늘어 초비상이 걸린 30일 오후 대전의 한 중학교에 마련된 코로나19 임시 선별진료소에서 의료진들이 학생들을 검사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요양병원 환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두 번째 문제로 지적한 것은 요양병원 환자들 대부분이 와상 환자로 ‘누군가가 24시간 돌봐줘야 하는’ 특성이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돌봄 인력이 필요한 요양병원 환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중증병상’ 밖에 없어 더욱 어려운 처지라는 얘기다. 그는 “중증병상은 매우 제한돼 있어서 일반 중환자들도 전담병원에서 길게는 1주일까지 버티다 겨우 전원되는 실정”이라며 “지금도 중증병상이 없어 각 전담병원에는 전원을 목매어 기다리는 환자들이 수두룩하다”고 밝혔다.

그는 애당초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상황도 짚었다. “코로나 치료를 마치고 퇴원을 하게 되면 2주 정도 집에서 자가격리에 준해 안정을 취하라고 안내하고 있는데, 코로나에 걸렸다가 격리해제 된 와병 환자를 받아줄 요양병원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최대한 치료 후 자택으로 모시고 격리하도록 동의서를 받지만, 퇴원 가능한 시점에서 거부하는 보호자들이 너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결국 해결책은 코로나가 빨리 잠잠해져서 중증병상이 많이 비거나, 정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요양 전담병원을 만드는 방법인데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취약층에 대한 코로나 대비가 그동안 너무 안되어 왔고, 아무 계획도 없었던 현실이 안타깝다”고 적었다.

아울러 그는 “현재 현장에서는 공공병원 종사자를 비롯해 중수본, 소방청 등 모든 사람들이 밤을 새워가며 사태 수습에 노력하고 있다”며 “비난만 할 때가 아니라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는 말로 편지를 마쳤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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