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째 자선냄비 할머니 "세상이 어려울때 더 내더라"

석남준 기자 2021. 1. 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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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후 1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 홍익문고 앞. 빨간 구세군 냄비 곁에서 정강이까지 내려오는 빨간 패딩을 입은 노부부(老夫婦)가 종을 흔들었다. 이날 기온은 영하 7도, 체감온도는 영하 10도를 밑돌았다. 하얀 마스크를 쓴 노부부의 안경은 날숨에 맞춰 뿌옇게 김이 서렸다가 이내 맑아지길 반복했다. 김안자(79)씨와 그의 남편 송명산(82)씨였다. 노부부의 고투(苦鬪)에 외투에 고개를 파묻고 지나가던 시민들이 지갑에서 천원짜리,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 냄비에 넣고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마다 노부부는 허리를 90도로 숙여 “고맙습니다”라고 외쳤다.

사회/ 3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입구에서 김안자(왼쪽), 송명산 부부가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지난 1971년부터 신촌 일대에서 함께 모금 활동을 벌여왔다. / 장련성 기자

연말 구세군 냄비가 도심 거리에 등장하면 반드시 함께 등장하는 사람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인 1958년부터 63년째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 활동을 해온 김씨다. 1928년 구세군 자선냄비가 처음 시작됐으니, 김씨는 한국 거리 모금 활동의 산증인인 셈이다. 구세군대한본영 관계자는 “김안자씨는 우리가 파악하고 있는 최장(最長) 봉사자”라고 말했다.

김씨는 구세군 봉사 가족에서 나고 자랐다. 김씨의 증조부가 1930년대부터 구세군 자선냄비 봉사 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는 “증조할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가, 할아버지를 따라 아버지가 자선냄비 앞을 지켰다”며 “이제는 우리 부부를 포함해 초등학생인 손주까지 6대째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 송씨는 “초등학생인 막내 손주가 ‘할아버지 우리 종 치러 언제 가요’라고 물을 때 참 뿌듯하더라”라고 거들었다. 김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13년간 명동에서, 이후 50년간은 신촌에서 매년 12월마다 1주일에 3~4차례씩 구세군 냄비 자원봉사를 했다.

구세군대한본영에 따르면, 지난달 27일까지 구세군에 들어온 작년도 기부금은 총 18억2000만원. 자선냄비 설치 기간이 나흘 남은 시점에서 전년(29억4500만원)에 비해 기부금이 약 60%밖에 모이지 않았다. 2020년 구세군 모금 장소도 전년도 353곳에서 250곳으로 줄었다. 봉사자 수는 4만8625명에서 2만4999명으로 급감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거리 두기가 온정마저 거리를 두게 만든 듯한 결과다.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역 인근 구세군 자선냄비 옆에서 김안자(79)씨가 종을 흔들며 모금 활동을 벌이고 있다. 고교 1학년 때 시작한 자선냄비 봉사 활동을 63년째 이어가는 김씨는 “우리나라에 가슴 따뜻한 분이 참 많다”고 했다. /장련성 기자

하지만 김씨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저는 우리나라에 가슴 따뜻한 분들이 참 많다고 생각해요. 코로나 사태로 거리 모금에 참여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주 많을 거예요. 코로나 때문에 온기를 나누는 데 갈증을 느꼈던 분들이 새해에는 훨씬 더 많이 기부에 동참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김씨는 우리 국민이 힘들고 어려울 때 온정을 더 베푸는 사람들이란 걸 경험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IMF 외환 위기 때 오히려 기부금이 늘었던 거 아시나요? 불황일 때도, 호황일 때도 기부를 하던 사람들은 계속한다는 걸 63년 자원봉사 하면서 여러 번 확인했어요. 어린 자녀 손을 잡고 자선냄비에 기부를 하고, 몇 해가 흘러 훌쩍 큰 자녀와 다시 찾아와 ‘아직도 계시네요?’라고 말하는 분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63년째 자선냄비 곁을 지킨 김씨가 기억하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장삼이사(張三李四)였다. “냄비 앞에 있다 보면 기부를 하면서도 ‘죄송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중년 남성이 봉투를 넣으며 ‘적게 넣어서 죄송하다’고 하거나, 어떤 학생은 돈을 넣고는 ‘감사하다’는 말을 듣기도 전에 ‘죄송해요’라고 말하고 후다닥 뛰어가요. 가던 길을 멈추고 내려서 쌀포대를 놓고 홀연히 떠난 트럭 기사님도 기억에 남아요.”

매년 한파 속에서 자선냄비를 지키는 이유는 뭘까. 김씨는 “어려서는 가족이 다 하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좀 더 커서는 기부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기도를 해줄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좋아서 한 것이지 거창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생전에 어머니가 봉사 활동 중에 한 분으로부터 보온병에 계란을 넣은 쌍화차를 받은 경험을 숱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때마다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저도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봉사를 하고 있으니 건강이 닿는 한 계속 자선냄비 곁을 찾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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