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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시대 종말" 예고에.. 세계 1위 석유공룡 위협하는 신재생 기업 부상

이재은 기자 입력 2021. 01. 02.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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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기업 세대교체 시작되나
100년 권좌 지킨 석유공룡, 코로나발(發) 충격에 휘청
태양광·풍력 투자한 발전회사 급부상

코로나 사태로 석유 수요가 급감하고 주요국이 탄소 감축 노력에 돌입하면서 에너지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100년간 세계 에너지 시장을 주름잡은 석유공룡, 이른바 ‘빅 오일(Big Oil·세계 7대 석유기업)’이 지난해 실적 부진과 기업환경 변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면, 이름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재생 에너지 기업들이 태양광·풍력 사업을 등에 업고 빠른 속도로 세를 확장하고 있다. 석유시대가 서서히 저물면서 머지않아 이들 기업의 시장가치가 석유공룡과 맞먹는 수준으로 성장해 에너지 시장 세대교체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영국 버보뱅크 해상풍력단지 준공 현장 모습 / 오스테드 제공

◇ 세계 1위 석유기업 시총 추월한 신재생 기업

최근 몇년 사이 미국 넥스트에라 에너지, 덴마크 오스테드, 이탈리아 에넬, 스페인 이베르드롤라 등은 세계 곳곳에서 신규 태양광·풍력발전 프로젝트를 주도하면서 신흥 에너지 강자로 부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넥스트에라, 에넬, 이베르드롤라 등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지역 발전회사에 불과했지만, 이들은 일찌감치 태양광·풍력 사업에 뛰어든 덕에 이제 석유 메이저와 비슷한 시장가치를 지닌 ‘에너지 거인’으로 성장했다"고 전했다.

미 넥스트에라 에너지(NextEra Energy)는 지난해 10월 시가총액이 장중 한때 1500억달러(약 163조원)에 육박, 미 최대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의 기업가치를 추월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플로리다주(州) 소재 전력회사인 FPL에서 출발한 넥스트에라는 2002년부터 친환경 사업에 뛰어들었다. 넥스트에라는 지난 10년간 미국 전역에 태양광·풍력 발전소를 세우고 이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면서 미 최대 신재생 발전사업자로 자리매김했다. 올해 출범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친환경 산업 육성을 예고하고 있어, 넥스트에라의 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몬태나주(州) 빌링스에 위치한 엑손모빌의 정유공장. /AP 연합뉴스

반면, 장기간 세계 최대 기업이었던 엑손모빌은 코로나 여파로 석유 수요가 줄면서 지난해 1~3분기에만 누적 24억달러(2조6200억원)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직격탄을 맞았다. 연초 주당 70달러였던 엑손모빌 주가는 지난해 12월 29일(현지시각) 기준 41.2달러로, 지난해에만 약 41% 하락했다. 엑손모빌은 지난해 8월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에서 92년 만에 퇴출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물론 넥스트에라의 매출은 2019년 기준 192억달러로, 여전히 엑손모빌의 매출 2650억달러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러나 시장 전문가들은 일시적으로 양사의 시총 순위가 뒤집힌 사건을 석유시대가 저물면서 시작된 에너지 시장 세대교체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투자은행 UBS는 "전통 화석연료 에너지에서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이 수십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그래픽=박길우 / 조선비즈

◇ 인천 해상풍력 시장 뛰어든 덴마크 오스테드

덴마크 국영 에너지 회사인 오스테드(Orsted)도 2008년 기존 화석연료 중심 사업에서 신재생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을 추진, 오늘날 세계 최대 해상풍력발전 사업자로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오스테드는 현재 전 세계 해상풍력발전소의 약 4분의 1을 운영하고 있으며, 세계 풍력 발전량의 약 88%를 차지하고 있다. 이 회사는 "2030년까지 5500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친환경 전기를 생산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오스테드 제공

세계 주요국이 실질 탄소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등 저(低)탄소 사회의 전환에 속도를 내면서 오스테드의 풍력 사업도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오스테드는 지난달 미 최대 유통기업 아마존과 유럽에서 10년간 풍력 발전으로 생산하는 전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영국 정부의 '수소 태스트포스(TF)'에 합류해 영국의 수소전략 이행에 필요한 해상풍력 설비와 기술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해상풍력 시장에도 출사표를 던졌다. 오스테드는 지난해 11월 인천 굴업도 인근에 약 8조원을 투자해 1.6GW(기가와트) 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아시아에서는 대만과 중국을 중심으로 사업을 벌여온 오스테드는 우리나라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으로 해상풍력발전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오스테드가 추진하는 인천 해상풍력단지 사업에는 LS전선이 초고압 케이블을 공급하기로 했다.

에넬과 이베르드롤라도 향후 10년간 신규 신재생 에너지 프로젝트에 1700억달러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예고했다.

이탈리아 발전회사 에넬(ENEL)이 남미 칠레에 건설한 태양광 발전소 / 에넬 제공

◇ BP "석유시대 종말" 예고…탈석유 박차

위기를 느낀 기존 석유공룡들도 살아남기 위해 사업 전략을 새로 짜고 있다. 영국 석유기업 BP(브리티시페트롤리엄)는 최근 ‘석유시대의 종말’을 선언, 2030년까지 석유가스 생산을 40% 감축하고 신재생에너지 사업 투자를 확대해 종합 에너지회사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BP는 지난해 9월 발표한 연례에너지 전망 보고서에서 2020년 이후에는 세계 석유 수요가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석유 수요가 이미 정점을 찍었다는 파격적인 분석을 내놓은 것이다.

노르웨이 국영 석유기업 에퀴노르도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풍력발전과 수소를 미래 먹거리로 선택했다. 에퀴노르는 또 다른 석유 메이저인 로얄더치쉘과 손잡고 10GW(기가와트) 규모 네덜란드 해상풍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영국에 세계 최대 수소생산기지 ‘H2H솔텐드’를 구축한다고 발표했다. 프랑스 석유기업 토탈도 "석유 수요가 2019년에 정점을 찍었다"고 보고 탄소포집·저장과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확대하는 중이다. 앞서 토탈은 울산과 전남 신안 일대에 부유식 해상풍력발전소를 건설하기로 했다.

석유기업들이 사업 방향을 틀면서 신재생 에너지 기업들과의 시장 선점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RBC 캐피탈 마켓은 "신재생 에너지 시장에 진출하는 석유 회사가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려면 초기에 수익률이 낮은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는 전반적인 마진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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