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발 변이 코로나' 오피스텔..주민들은 4일동안 몰랐다

2021. 1. 2. 09: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13일 귀국한 80대 사망자, 변이 코로나19 확인"
"처음 듣는 얘기, 그럴리 없어"..주민들 '부인'
누리꾼들 "고양시청 정보 공개, 답답해" 비판
사망자 살던 오피스텔 측, 4일만에 사건 공지
지난달 29일 헤럴드경제 온라인 사이트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에 게재된 기사. 영국에서 귀국한 80대 사망자의 소식을 전혀 모른다는 오피스텔 입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네이버 홈페이지 캡처]

[헤럴드경제(고양)=김지헌 기자] “무슨 말씀이세요? 그럴 리가요.”

지난달 26일 경기 고양의 한 오피스텔에서 영국에서 온 80대 A 씨가 사망했습니다. 같은 달 28일 그 현장을 찾았습니다. 당시 입주민들과 1층에 있는 상점 주인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고 있냐”고 물으니 모두 “처음 듣는 얘기다. 그럴 리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현장을 잘못 찾았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다들 정말 모른다는 표정이었거든요.

사실 오피스텔 관리사무소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방역을 했으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해당 사실을 입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 오피스텔에서 사망했던 80대 A 씨가 지난달 30일 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것이 확인됩니다. 이 변이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기존보다 더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전염성이 훨씬 강한 바이러스가 훑고 간 오피스텔의 입주민들은 4일 동안이나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일상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지난달 30일 결과 발표가 되고 나서야 해당 관리사무소가 부랴부랴 “입주민들은 선별진료소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는 공고문을 붙였습니다. 주민들의 불안감만 커지게 된 것이죠.

사실 이 취재를 시작하게 된 것은 지난달 28일 새벽에 달린 한 누리꾼의 댓글 때문이었습니다. 회사 선배가 “지난 22일 영국에서 온 일가족에게서 변이 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기사를 하나 보내주면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내용을 확인해 보라고 해 취재에 착수했죠.

해당 누리꾼은 21개의 댓글을 남기며, 자신의 심정이 얼마나 답답한지 토로했습니다. 그는 ‘26일 날 사망한 사람(A 씨)이 자신이 사는 집을 이탈한 것만 2번 봤다. 그 할아버지는 마스크도 안 쓰고 나오다가 나와 마주쳤다. 복도에 쓰러지셔서 팔을 잡고 부축도 했다’고 적었습니다.

지난 2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된 한 기사에 달린 누리꾼의 댓글. 경기 고양의 한 오피스텔에서 사망한, 영국에서 귀국한 80대 A 씨를 목격했다는 주장이 담겨 있다.[네이버 홈페이지 캡처]

이 누리꾼이 특히 분노한 것은 이런 정보가 제대로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입주민에게 오피스텔에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것이 화가 난다’, ‘고양시청에서는 사망자의 동선이 없다고 공지했는데 이 말이 사실이 아니다’ 등의 주장을 그는 했죠.

해당 오피스텔에 도착한 저는 입주민들이 ‘이 사태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누리꾼이 지목한 고양시청의 공지글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공지글을 읽으니 그 누리꾼의 답답함이 뭔지 이해가 되더군요.

영국애서 귀국했다 사망한 80대 A 씨 가족에 대한 고양시청의 지난달 28일 공지. 해당 공지만 읽었을 때에는 이들 가족이 움직인 동선이 아예 없는 것으로 읽힌다.[고양시청 홈페이지 캡처]

위 공지 내용만 보시면 실제로 A 씨와 그의 가족이 움직인 장소가 마치 없었던 것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가족 중 한 명은 이후 움직인 동선이 고양시에 의해 지난 29일 추가로 공개되기도 했죠.

특히 사망자인 A 씨의 경우 ‘참고사항: 자가격리 중 양성 판정으로 이동 동선이 없음’으로 적혀 있습니다. 그러나 A 씨가 사망 당일 자신이 사는 오피스텔 복도로 나와 숨진 점에서 비춰 보면 이는 정확한 공지 내용이 아닙니다. 또 해당 누리꾼은 A 씨가 두 번이나 집을 이탈했고 그의 가족은 엘리베이터를 타기도 했다고 주장했죠.

‘A 씨가 복도에 나온 게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 겁니다. 소수의 집이 분리된 복도라면 아마 큰 문제를 삼지 않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제가 직접 찾아 목격한 해당 오피스텔의 복도는 감염이 우려되는 구조였습니다. 길게 일직선으로 쭉 뻗은 복도를 19개 가구가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는 모습이었는데요. 복도의 창문은 닫혀 있었고, 어떤 집은 겨울임에도 그냥 문을 열어 놓고 생활하기도 하더군요.

‘이런 복도에서 변이 코로나바이러스로 누군가 사망했다면, 적어도 같은 층 복도에 사는 입주민들은 반드시 알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일부 모습을 공개하면 아래 사진과 같습니다.

경기 고양의 한 오피스텔의 복도 모습. 영국에서 귀국했다 숨진 80대 A 씨가 살던 곳이다. 폐쇄된 일직선 복도를 중심으로 19개 가구가 빙 둘러싼 모습이다. 김지헌 기자/raw@heraldcorp.com

도대체 왜 고양시청은 80대 A 씨와 그의 가족 동선을 누구나 알 수 있도록 공개하지 않은 것일까요. 사실 고양시는 규정에 의해 공개했다고 말합니다.

해당 사안에 대해 잘 아는 관계자는 “A 씨 사망 당시 도착한 역학조사관이 오피스텔 복도 폐쇄회로(CC)TV를 통해 A 씨와 접촉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모두 식별할 수 있었다”며 “이 경우 접촉자 신원이 모두 파악되기 때문에,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반대로 만일 접촉자의 신원을 모두 파악하기 어려웠다면, A 씨가 발견된 장소를 공개했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였죠. 이것이 지자체의 가이드라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원점에서 생각해보면 공지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공지만 놓고 볼때, 누가 자신이 사는 곳에 변이 코로나바이러스 노출 위험이 발생했다고 예측할 수 있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선제적으로 이를 알리고 위험을 방지하려고 하는 주체가 부재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관리사무소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지자체가 했어야 하고, 지자체가 미진하다면 방역당국이 나섰어야 했다는 문제라는 이야기죠.

저는 방역당국에 “변이 코로나바이러스 같이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는 장소라면, 그곳 주민에게 이 사실을 의무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당국에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예측하지 못하는 바이러스가 발견된다면, 다른 때보다 정보를 더 선제적으로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아쉽게도 방역당국은 현재 이런 가이드라인을 갖추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지난달 26일 사건 발생 직후 아무것도 모르다가 나흘 만에 “변이 (코로나)바이러스 사망자가 나왔다”는 소식에 황망했을 입주민들의 심정이 잊혀지지 않는 한 주였습니다.

raw@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