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치 아이콘' 마크롱 대통령의 씁쓸한 몰락

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2021. 1. 2. 14: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크롱 집권 4년,
개혁 성과보다 거듭되는 악수(惡手)로 지지율 다 까먹어

(시사저널=최정민 프랑스 통신원)

지난 12월24일 성탄절을 하루 앞두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베르사유 대통령 전용 별장에서 엘리제궁으로 복귀했다. 7일간의 자가격리가 끝나서다. 마크롱은 12월17일 코로나바이러스 양성 판정을 받았다. 확진 시점 일주일 전부터 많게는 25개국 정상과 환담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지며 유럽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39세의 나이에 대통령에 오른 마크롱은 '새 정치의 아이콘'이었다. 기존의 좌파와 우파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펼치겠다는 그의 야심은 구태정치에 염증을 느낀 프랑스 국민과 표심을 자극했다. 한 세대 앞서 영국에서 기치를 높이며 시선을 끌었던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을 연상시키는 대목이었다. 그의 공언대로, 좌파 정부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던 마크롱은 친정을 떠나 우파도 아닌 중도에 깃발을 꽂고 당당히 대선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대선 직후 치러진 하원 선거에서 자신이 이끄는 중도 신당 '레퓌블리크 앙마르슈(전진하는 공화국)'는 총 577석 중 절반을 훌쩍 넘는 350석을 확보하며 프랑스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까지 확인했다. 그러나 마크롱 집권 4년 차, 그를 향한 민심은 참담한 수준이 됐다.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2020년12월16일 코스타 포르투갈 총리의 연설을 들으며 힘든 표정을 짓고 있다. ⓒAP 연합

'노란 조끼' 사태로 돈만 쓰고, 민심 잃고

마크롱이 매년 남긴 족적은 공약 실천이나 개혁의 성과가 아닌 굵직굵직한 스캔들이었다. 취임 이듬해인 2018년 7월에 터져 나온 이른바 '베날라 스캔들'은 그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다. 대통령의 근접 경호원이 시민을 폭행한 사건이었다. 사태 초반에 심각성을 인식하고 곧장 사과하기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언론과 야당을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는가 하면, 프랑스 정보 당국이 당시 사건을 처음 보도한 르몽드 기자를 소환하는 등 민심과 배치된 행보로 반발에 불을 지폈다.

집권 3년 차 한 해를 뒤덮은 것은 '노란 조끼' 시위대였다. 집권 2년 차 말미인 2018년 11월17일 시작된, 매주 토요일 노란 조끼 집회는 이후 52차례까지 이어졌다. 직접적인 원인은 '유류세 인상'이었다. 이미 '부자들의 대통령'으로 낙인찍혔던 마크롱이 '유류세 인상'이라는 '패착'을 두며 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평화적인 시위문화로 시작된 노란 조끼 시위는 매번 폭력 사태로 얼룩졌다. 파리의 주요 번화가 상점과 프랑스의 주요 도시들은 약탈과 방화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파리 샹젤리제에 있는 개선문이 방화와 유물 파손의 피해를 입었을 정도다.

노란 조끼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마크롱이 테이블에 얹어놓은 비용만 무려 102억 유로(약 13조원)다. 재정적자 3%라는, 유럽연합의 우등생 기준을 턱걸이로 지켜왔던 프랑스의 마지노선은 유류세 인상이라는 패착으로 무너져 내렸다. 지금까지 마크롱 정부의 그 누구도 '왜 그 시점에 유류세를 인상했어야만 했나'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는 이가 없다.

1년여를 이어간 노란 조끼 사태가 프랑스 경제에 미친 여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2019년 9월까지 집계된 보험사의 보상 액수, 즉 시위로 인한 화재·도난 등에 든 금액만 무려 2억1700만 유로(약 2905억원)다. 시위로 인해 호텔과 지역 식당가가 입은 피해액 규모는 8억5000만 유로(약 1조1900억원)이며, 시내 도심에 위치한 상권의 매출은 전체 평균 20~30%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11월부터 단 두 달 동안의 시위 여파는 그해 프랑스 국민총생산의 0.1%를 깎아먹었다고 프랑스 국립 통계청이 발표했다. 프랑스 경제 전문지인 '챌린지'는 이를 '마크롱 이코노미의 비용'이라고 꼬집었다.

마크롱 정부의 미숙함이 더욱 두드러진 것은 2020년을 뒤덮은 코로나19 사태였다. 사태 초기, '마스크 부족' 논란은 정부에 대한 불신의 서막이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지방선거를 강행한 일은 마크롱 정부가 행한 많은 일 가운데 가장 납득하기 힘든 것 중 하나로 꼽힌다. 이동 제한령을 내리며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초등학생조차 이해할 수 없는 어법이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국민의 불신에 불을 지피는 마크롱 정부의 패착은 그 후에도 이어졌다.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던 지난 2월7일, 마크롱 대통령은 갑작스레 낙마한 여당의 파리시장 후보를 대체하기 위해 다른 누구도 아닌 보건복지부 장관을 낙점했다. 방역 비상 국면에서 보건부 수장을 여당의 선거를 위해 교체한 것이다.

"일단 경제부터 살리고 보자"가 빚은 참사

그뿐이 아니다. 사태 초기부터 끊임없이 경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마크롱 정부의 모호한 선택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고된 6주간의 이동 제한을 완화하며 프랑스 정부는 식당과 바의 실내 영업엔 엄격한 제한을 두었지만, '야외 테이블'만은 무제한으로 허용했다. 그 결과 여름휴가 기간 내내 파리를 비롯한 전국의 주요 도시 식당가의 야외 테이블은 바캉스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지난 11월초 하루 확진자가 8만 명까지 치솟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코로나를 잡아야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각오가 아닌 '코로나보다 경제부터 살리고 보자'는 안이한 인식이 낳은 참사였다.

2021년을 기점으로 프랑스 정부가 올인하고 있는 것은 '백신'을 통한 코로나19 퇴치다. 그러나 백신에 대한 국민적 인식 역시 여전히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이 불신은 사그라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프랑스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난 12월27일, 시사주간지 '르 주르날 뒤 디망쉬'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전 세계 국가들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 프랑스의 경우 44%에 이르는 응답자가 백신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BVA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WIN이 전 세계 32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프랑스 국민 중 백신에 대해 '전적인 신뢰'를 보인 응답자는 13%에 불과했다.

더 심각한 것은 백신 접종 2주 전에 발표된 전국 요양병원 의료진 상대 조사 결과다. 요양병원 의료진은 현재 프랑스 정부가 선제적으로 접종하겠다고 밝힌 우선 대상군이다. 여론조사 결과, 단 19%의 의료진만 백신 접종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휴를 넘기며 여전히 심각한 확진자 수(지난 12월27일 기준 8822명)를 보이는 가운데, 프랑스 언론들은 '3차 대유행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할 경우 자연히 따라오는 것은 '3차 이동 제한령'이다. 2019년부터 노란 조끼로 타격을 입은 시내 번화가의 상점들과 지난 연말연시 문을 열지 못한 프랑스 식당가는 할 말을 잃은 분위기다. 새 정치를 앞세워 야심 차게 출발했던 마크롱 정권에 대한 가혹한 시험대는 끝을 모른 채 이어지고 있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