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받아선 부자 못된다 절박감.. 시간을 믿고 투자해야" [2021신년특집-富 리포트]

김범수 2021. 1. 3.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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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6인 '부자열풍' 진단과 해법
젊은층 근로 소득만으로는 '한계' 인식
극복 위해 왕성한 투자 활동 필요 절감
증시, 유동성 풍부.. 신사업 기대감에 활황
'증권사 직원 조언시대' 가고 직접 투자로
장기적으로 투자하면 실패할 확률 줄어
부동산 안정 위한 해결책 결국 공급 확대
쉽게 못 파는데 재건축 막으니 집값 폭등
수요 몰리는 곳 공급 확충, 적은 곳 줄여야
코로나19 여파로 유독 힘들었던 2020년은 역설적으로 ‘부자되기 열풍’이 불었던 한 해다. ‘주식을 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재테크에 뛰어들었지만, 그 내면에는 너무나 뛰어버린 집값을 마련하려는 절박함이 있었다. 올해에도 여전히 부자되기 열풍은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대한 방향을 경제·사회 전문가 6인으로부터 들어본다.
 
◆부자열풍 원인은 ‘절박함’

“최근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재테크 열풍에 뛰어들었다. 근로소득으로만 부자가 될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왕성한 투자활동을 해야 한다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 것으로 보인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두드러진 부자열풍 현상 원인에 대해 이렇게 요약했다.

김 센터장은 지난해 투자하기 좋았던 주식시장이 전국적인 부자열풍을 뒷받침했다고 분석했다. 김 센터장은 “지난해 코로나 여파는 경제 측면에서 보면 파급력이 강한 침체 요인이었지만, 정부와 중앙은행이 신속하게 자금을 풀어 대응을 했다”며 “특정 산업군에 의존도가 높은 데다가 2019년 미·중 무역갈등 등 악재에 짓눌려 있던 국내 증시가 코로나19로 인해 자금이 풍부해지고 신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개인들의 투자열풍을 단순하게 ‘한몫 챙긴다’는 투기의 관점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늘날에는 다양한 투자 정보를 습득하는 채널이 많아지면서 개인 투자자들의 경제 지식 전반적인 성숙도가 향상됐다”며 “과거에는 증권사 직원의 조언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거나 펀드 구매 등 간접적인 투자활동이 주류였다면, 오늘날에는 개인이 직접투자에 뛰어든 것이 큰 차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 김 센터장은 올해 증시에 대해 ‘응용과 심화 단계’로 전망했다. 지난해 같은 상승장은 기대하긴 어렵지만, 가지고 있는 장점을 응용해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는 단계로 본 것이다. 그는 “지난해는 코로나로 상당히 어려운 투자환경이었지만, 정작 대응은 쉬웠고 리스크를 부담한 만큼 좋은 수익도 낼 수 있었다”며 “일단 올해에도 풍부한 유동성 환경은 이어질 것이다. 다만 이제는 국내 산업환경과 증시가 변화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다가올 변화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코스피 도약의 핵심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김 센터장은 부자열풍 이면에 ‘절박함’이 있다고 봤다. 김 센터장은 “근로소득으로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지난해 금리인하와 코스피 상승이라는 호재에 맞물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투자의 기본은 시간을 믿는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개인이 투자한 오랜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돈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 투자를 하면 실패할 확률이 작아진다. 단적으로 코스피가 2년 연속 하락한 적은 없었던 만큼 조정장이 오더라도 그 시간을 이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건전하고 안정된 증권투자 문화에 대해 기업의 배당률 인상을 꼽았다. 김 센터장은 “기업 측면에서 배당을 늘리면 개인 투자자들이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라며 “기업과 증시 입장에서도 투자자의 자금이 오래 머무를수록 안정성이 커진다”고 했다.
◆부자열풍은 내 집 마련의 욕구

부자되기 열풍의 시작이자 끝은 ‘내 집 마련’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최근 너무나 올라버린 부동산값에 생존마저 위협을 받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는 모양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 교수는 부자되기 열풍 핵심으로 ‘내 집’을 꼽으며 “내 집이란 그 사람의 생존력은 물론 그 사람의 계층을 보여주고 더 나아가 장래성까지 담보하는 수단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요약했다. 이어 그는 “특히 최근 집값이 급등하면서 이 같은 세태는 더 심화했다. 당장 집이 없으면 결혼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라고 덧붙였다.

심 교수는 부동산을 안정시키지 못하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극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인데 결국 해법은 공급”이라며 “공급이 늘면 가격이 내려가고, 수요가 많은데 공급을 줄이면 가격이 폭등하는 것은 경제학적 상식”이라고 했다. 이어 “선진국의 주요 도시들은 항상 주거 공급을 늘리는 기조로 가는데 정작 우리나라는 최근 반대로 가는 상황”이라며 “규제가 많아지면서 부동산을 쉽게 팔 수 없는 상황에서 재건축이나 재개발 등 공급을 막아버리니 집값은 폭등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부동산을 안정시키는 방안에 대해 ‘공급과 수요의 시스템의 부활’을 꼽았다. 그는 “집값을 인위적으로 낮춘다고 해도 가계 부채 악화와 경기 침체 등 문제가 생긴다”며 “핵심은 공급과 수요가 활발하게 교류하는 기본적인 시스템을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심 교수는 공공임대주택에 대해서도 “한국의 공공주택 비율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보다 높다”며 “공공임대주택을 무작정 늘리는 것보다 수요가 몰리는 곳에 늘리고, 수요가 적은 지역은 줄이는 등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듯싶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 교수 역시 “부자열풍에서 부동산 선호 현상은 과거 누군가가 부동산을 통해 자산을 증식한 것을 보고 느낀 학습 효과에서 기인된 것”이라며 “부동산이 단순한 의식주 개념을 넘어 재테크 수단으로 여겨지는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권 교수 역시 부동산값 안정화 방안으로 주택 공급 활성화를 꼽았다. 권 교수는 “정확히는 수요자가 원하는 지역에 주택 공급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며 “주택 공급 이외에도 집을 팔고 수도권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양도세를 낮추는 등 규제를 낮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욜로’에서 ‘부자되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20~30대 젊은 계층의 경제 테마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였지만, 한 순간에 ‘부자열풍’으로 반전됐다. 사회학자들은 이 같은 극단적인 변화의 원인을 생존의 위기감으로 분석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 교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욜로나 소확행 등 소소한 사치를 누려도 생존은 충분히 가능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며 “하지만 짧은 기간 부동산이 급등한 데다가 2020년에 코로나 여파로 주식열풍도 불면서 부자되기 열풍에 끼지 않으면 낙오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커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구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계층을 상승시키기 위해 목을 매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 계층 이동 통로는 사실상 없다고 봤다. 그는 “과거에는 계층을 판단하는 요건이 직업이나 월 소득, 교육 수준 등 다수였고 계층 간 이동 통로도 다양했다”며 “하지만 오늘날엔 오로지 가지고 있는 자산으로만 판단한다. 그런데 이 자산의 가치가 너무나 커지면서 양극화가 심화해 사실상 계층 이동은 불가능해진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자산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는 너무나 더디게 만들어지는 상황”이라며 “그나마 인공지능 등 신산업에 뛰어든 기술자들은 어느 정도 미래를 기대할 수 있지만, 전통 산업군과 관련이 높은 인문사회 교육을 받은 근로자는 더욱 빈곤해지는 현실”이라고 했다.

그는 “현재 젊은 계층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비혼주의도 같은 맥락이다. 자기 한 몸 지키기도 어려우니 결혼조차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특히 20~30대 여성들 사이에서 비혼주의 풍조가 확산한 것도 인문사회 교육을 주로 받은 이들이 경제적 취약층이라는 것을 방증한다”고 했다.

구 교수는 생존욕구로 시작된 부자열풍이 강해질수록 규범이나 윤리 등 사회화 과정이 무너지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를 네글자로 요약하면 ‘각자도생’이 아닐까 싶다”며 “사람이 생존에 절박해지면 타인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사회 가치나 규범, 윤리 등을 무시하며 자신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이 같은 열풍의 문제점에 대해 “지금처럼 경제적 양극화가 커지면 취약계층은 극단적으로 생존조차 포기하게 될 수 있다. 경제적 취약계층인 20대 여성 자살자가 급증한 것이 단적인 예”라며 “또 일을 열심히 해도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근로 의욕이 사라지게 되며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회 전반적인 성장동력도 떨어지게 된다”고 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 교수도 전 사회적 부자열풍의 원인에 대해 구 교수와 비슷한 시각을 보였다. 설 교수는 “과거 우리나라 새해 인사는 보통 ‘근하신년’이었지만 최근에는 ‘돈 많이 버세요’라는 말이 더 많이 보인다”며 “세태가 바뀐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대부분의 사람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만큼 가장 큰 의존자원인 돈밖에 믿을 게 없다는 심리”라며 “이 같은 열풍은 불확실성이 늘어난 사회에서 안전발판을 마련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마냥 비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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