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영의 일본 속으로]백신 서둘러 확보한 日, 정작 접종 날짜는 韓과 비슷 왜

윤설영 2021. 1. 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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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개최 위해 백신팀 극비리 가동
전국민 맞고 남을 만큼 확보했지만
'국내 1~3차 임상 필수' 규제에 발목
"국산 백신은 왜 없나" 비판도 일어
지난해 5월 6일 아베 신조 당시 총리와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학 교수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관련해 대담을 하고 있다. [인터넷 캡쳐]


지난 5월 6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弥) 교토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올림픽 성공을 위해서라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치료약, 백신 개발을 일본이 중심이 돼 추진하겠다”고 했다. 코로나19의 맹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던 시기. 야마나카 교수는 한숨을 내쉬며 “백신량을 1년 안에 준비할 수 있을지, 상당한 운이 겹치지 않는 한 백신만으로는 (올림픽은)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8개월 뒤인 지난해 12월 18일 미국 제약회사인 화이자는 일본 후생노동성에 코로나19 백신 사용 승인 신청서를 제출한다. ‘특례 승인’이 적용되면 이르면 2월 말 일본 내 접종이 시작될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3월 24일 도쿄 올림픽의 1년 연기를 결정하면서 코로나19 백신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모든 지시는 ‘총리의 의향’으로 진행됐다.

관저 소식에 밝은 한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후생노동성 혼자 움직인 것이 아니다. 관저가 직접 주도해 지휘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백신이 올림픽 개최의 조건은 아니지만, 주최국으로서 환경 정비가 되었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올림픽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서두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후생노동성 청사 전경. [연합뉴스]


올림픽 때문이라 하더라도 백신 확보 과정은 상당히 빠르고 치밀했다. 후생성에는 일찌감치 백신 확보를 위한 전담팀이 극비에 가동되고 있었다. 의사 면허증을 가진 차관급 관료, 법률 고문, 국제교섭 경험이 많은 국제변호사들이 투입됐고, 이들에 전권이 주어졌다.

여기서 백신 공급의 시기와 물량, 가격은 물론이고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제약회사가 아닌 국가가 보상한다는 방침 등 기본 골격이 세워졌다. 당시 전담팀을 지휘했던 의사 출신의 스즈키 야스히로(鈴木康裕) 전 의무기감(医務技監ㆍ후생성 차관급 관료)은 NHK 인터뷰에서 “종류가 다른 백신을 되도록 많이 준비해, 어느 백신이든 성공하면 될 정도로 준비해야 했다”고 증언했다.

이 팀은 7월 30일 화이자와 기본 합의 체결을 시작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모더나와도 차례로 공급 계약을 맺었다. 얀센, 화이자는 각각 9월, 10월부터 일본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했고, 일본 내 유통 공급망이 없는 모더나, 노바백스와는 국내 최대 제약회사인 다케다(武田)약품공업주식회사가 유통과 공급을 진행할 수 있도록 정부 예산 301억엔(약 3179억원)이 투입됐다.

미국 제약회사 화이자. [AFP=연합뉴스]


아베 전 총리는 퇴임하는 날까지 백신 확보계획을 챙겼다. 8월 28일 재임 중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전 국민 백신 확보’를 선언하고, 예산 확보와 접종 계획이 담긴 ‘코로나 대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곧이어 9월 8일 백신 확보를 위한 예산 6714억엔(약 7조907억원)을 예비비 중에서 사용하기로 각의(국무회의에 해당)에서 결정했다.

뒤이어 취임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관저에 전담팀을 설치하고 백신 유통 및 접종을 직접 총괄하고 있다. 후생성, 국토교통성, 경제산업성, 총무성 등 관련 부처가 총집합했다. 백신 승인만 떨어지면 곧바로 접종이 가능하도록, 보관 장비, 운반용 트럭을 확보하고 각 지자체에도 접종 준비를 지시한 상태다.

코로나19 백신 관련 일본 상황

현재 일본이 확보한 백신은 화이자 1억2000만 도스, 모더나 5000만 도스, 아스트라제네카 1억2000만 도스 등 총 2억9000만 도스로 일본 전체 인구 1억 2600만명이 맞고도 남는 양이다.

그러나 정작 일본 내 백신 논쟁은 “왜 국산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나”로 모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현재 개발 중인 백신 후보 233종으로, 최종 임상 3단계가 진행 중인 11종 가운데일본 제품은 하나도 없다. 나비타스클리닉 의사인 구스미 에이지(久住英二)는 중앙일보에 “애당초 국내 백신 개발이 어려웠기 때문에 해외로 빨리 눈을 돌렸던 것”이라면서 “일본의 백신연구는 자본도 실적도 뒤처져 있다”고 말했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지난해 12월 4일 기자회견에서 "인류가 바이러스와 싸워 이겼다는 징표로 도쿄올림픽을 개최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의료 전문가들은 일본 의료행정의 후진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백신을 빨리 확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접종 시작 시기는 2월 말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 일본에서 사용 승인을 받기 위해선 반드시 국내 임상 시험 1,2,3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이다. 별도의 국내 임상시험이 필요 없는 한국과 다르다. 모더나는 1월 중 일본에서 200명 규모의 임상시험에 들어간다고 발표했지만, 언제쯤 접종을 시작할지에 대해선 “타임라인을 내놓기 어렵다”며 시기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은 백신 후진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 같은 승인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전쟁이나 테러에 필적하는 코로나 재난 상황에서 일본의 의료 행정과 감염증 대책에는 위기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일본 최대 제약회사인 다케다약품공업의 대표인 크리스토프 웨버. 다케다는 모더나, 노바박스의 백신의 일본 국내 제조 유통을 담당할 계획이다.[AFP=연합뉴스]


백신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도 낮다. 크로스마케팅의 인터넷 조사(전국 20~69세, 1100명 대상)에서 응답자의 29%가 “백신 접종을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실제 접종률은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신종 플루) 유행 당시 스위스 노바르티스사로부터 구매 계약한 2500만 도스 가운데 1660만 도스 (약 214억엔·약 2260억원 어치)을 폐기한 사례가 있다. 당시 예측과 달리 유행이 대규모 확산하지 않아, 유통기한이 짧은 백신을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구스미는 “코로나 백신은 유통기한이 더 짧고 다루기도 어려워 다른 나라에 주기도 쉽지 않다. 이번에도 일정량을 폐기하게 되면, 부유한 나라가 자본력을 앞세워 백신을 선점했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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