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원순 피소 유출' 여성단체 앞 대자보 "여성연합 수직적 위계질서가 근본원인..김영순 해임해야"

이윤식 2021. 1. 4. 11: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피해자 도운 공동행동에도 "여성단체 내부 폭력에 침묵..꼬리자르기 말라"
여성연합 측 "내부 논의 후 대응..김영순 출근 안 했다"
4일 오전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 영등포구 여성미래센터 현관 앞에 여성연합의 `박원순 피소` 유출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여져 있다. [이윤식 기자]
'박원순 성추행 피소'를 유출한 여성단체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연합)의 사무실 건물 앞에 여성연합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은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연합 측은 "해당 작성자가 누구인지 확정하지 못한다"며 "대자보 처리는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4일 오전 매일경제가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여성연합 사무실(여성미래센터)을 찾은 결과, 이 사무실 건물 1층 현관에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을 유출한 여성연합과 여성계 기성세대의 '정계유착'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지상 5층 규모의 여성미래센터에는 여성연합을 비롯해 여성환경연대, 한국여성연구소, 기독여민회 등 여성단체 사무실이 위치해 있다.

자신을 여성단체 막내 활동가로 소개한 작성자는 '나는 살고 싶다'라는 제목의 대자보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국내의 가장 큰 여성단체들의 연대체로 구성된 단체"라며 "여성단체연합에서 발생한 정계유착에 기반한 권력형 성폭력 2차 가해는 결코 상임대표 개인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여성단체연합은 끝까지 해당 대표에 대한 어떠한 해임 소식이나, 앞으로 단체 측의 대처 방향, 혹은 해당 단체 대표에 대한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며 "그렇기에 여성단체연합은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본 사안의 무게를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 등 피해자 측을 돕고 있는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작성자는 "(공동행동의 주도적 참여단체인)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영순이 2차 가해를 행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해당 사실에 대해서 은폐하였다"며 "가장 피해자의 편에 있어야할 본인들은 이 사실을 묵인하는데 있어 적극 가담했다"고 적었다. 그는 "공동행동은 여성단체 내부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침묵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하며, 여성단체연합과 꼬리자르기의 형태로 본 사태에 있어 입장을 취하는 행보를 중단하라"고 했다.

이 작성자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여성연합의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인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고 꼽았다. 그는 "여성연합 상임대표의 박원순 피소 유출 사실에 대해서 각종 여성운동계가 해당 사실을 인지하게 된지 한참 시일이 지났다"며 "(이에)불구하고 외부에 의해 공개되기 전까지 조직 내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는 사실은 본 사태의 원인이 폐쇄적이고 대표자들의 수직적인 태도이 기인하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그간의 여성운동 관행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작성자는 "지금까지 여성운동계 인사들의 성인지감수성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었다"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적나라하게 하는 단체들 또한 있었으며, 해당 단체에 대한 공론화가 이루어져도 시정조치 없이 잘만 운영되는 단체들 또한 소수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젊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여성운동계를 '?충'이라고 지칭하는 단어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대자보는 "여성단체는 정치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박원순 서울 시장 사건에 있어 가해자와의 함께하기를 택했다"며 "더 이상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도록 조직의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정치권과 결탁 없는 운동을 이어나갈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서울북부지검의 수사 결과 등에 따르면 김영순 여성연합 공동대표는 지난 7월8일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박 전 시장 피소 정황을 전달했다. 또 남 의원은 직후 이를 임순영 당시 서울시장 젠더특보에게 전달했다. 남 의원은 여성연합 상임대표를 지내다 민주당 비례대표로 정계에 입문했다. 임 특보는 남 의원실 보좌관을 지낸 인물이다. 여성연합은 검찰 발표 이후에야 입장문을 내고 김영순 공동대표를 직무배제한다고 밝혔다.

여성연합 측은 이날 매일경제와 만나 이 대자보에 대해 "내부적으로 논의를 한 후 처리 방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김영순 공동대표는 출근하지 않았고, 김민문정 공동대표 역시 외부 일정 중"이라며 "지난 30일 공개한 입장문 외에는 따로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매일경제는 이날 김영순 공동대표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윤식 기자]

아래는 대자보 전문

<나는 살고 싶다-여성단체연합의 '박원순 피소' 유출 연루 건에 대하여>

나는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는 삶이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기에 여성단체 활동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택했다. 이후 여성단체 내의 수많은 부조리를 보고 침묵하면서도 활동가의 삶을 멈추지 않기를 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폭력 피해자와의 연대를 위해 형성된 여성단체의 의의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국내의 가장 큰 여성단체들의 연대체로 구성된 단체이다. 이는 국내 여성운동에 있어서 대표성을 띄는 단체라는 것을 뜻한다. 여성단체연합에서 발생한 정계유착에 기반한 권력형 성폭력 2차 가해는 결코 상임대표 개인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이 문제는 해당 단체 대표가 공식적으로 해임되어야 하는 문제이며, 더 나아가 가해자는 단체의 상임 대표이기에 누구인지 알여져야 하는 사안에 해당된다. 허나 여성단체연합은 끝까지 해당 대표에 대한 어떠한 해임 소식이나, 앞으로 단체 측의 대처 방향, 혹은 해당 단체 대표에 대한 어떤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성단체연합은 이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으며 본 사안의 무게를 이해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서울시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에서 가장 앞장서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국내의 가장 큰 단체 중 하나이다. 허나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영순이 2차 가해를 행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해당 사실에 대해서 은폐하였다. 마치 여성단체는 피해자를 둘러싼 2차 가해에서 자유로운 것처럼 다른 기관들을 규탄하며, 정작 가장 피해자의 편에 있어야할 본인들은 이 사실을 묵인하는데 있어 적극 가담했다. 또한 한국여성의전화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여성단체연합과 함꼐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차별금지법 제정연대에 함께 소속되어 있는 등 여성단체연합과 함께 여성운동을 해오고 있다. 더군다나 김영순 상임대표는 아직까지도 여성단체연합의 상임대표이며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공동대표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문제는 서울시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의 '업무 배제 조치를 취했다'는 내용의 입장문으로 덮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서울시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은 여성단체 내부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침묵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하며, 여성단체연합과 꼬리자르기의 형태로 본 사태에 있어 입장을 취하는 행보를 중단하라.

여성단체에서 일하며 여성단체의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서 숱하게 접했다. 막내활동가이기에 정치권의 내부적인 결탁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여성운동계 인사들의 성인지감수성 부족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적나라하게 하는 단체들 또한 있었으며, 해당 단체에 대한 공론화가 이루어져도 시정조치 없이 잘만 운영되는 단체들 또한 소수가 아니었다 이로 인해 영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 여성운동계를 '?R충'이라고 지칭하는 단어까지 생성되었으나, 정치결탁에 기반한 여성단체연합의 2차 가해가 공론화된 지금까지도 여성운동계는 위계 질서를 쌓아올린 성 안에서 변하지 않고 굳건하게 버텨왔다.

내부에서 문제제기가 불가능한 권위적인 태도, 위계질서에 대한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대표자, 직원들을 하대하는 행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대표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행사하는 단체, 심지어 성인지감수성이 완벽하게 부재한 대표자까지. 수직적인 위계질서로 인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는 여성단체연합의 '박원순 피소' 유출 사태를 야기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의 박원순 피소 유출 사실에 대해서 각종 여성운동계가 해당 사실을 인지하게 된지 한참 시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외부에 의해 공개되기 전까지 조직 내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는 사실은 본 사태의 원인이 폐쇄적이고 대표자들의 수직적인 태도이 기인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에도 침묵했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단체의 의의가 성폭력 피해자와의 연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단체는 여성혐오 사회에서 언제나 벼랑 끝에 위치한다는 것을 활동가로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벼랑 끝의 위치는 벼랑에 매달려 살려달라고 외치는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지 위한 위치이다. 피해자를 완벽하게 고립시키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연대를 외치고자 여성단체 활동가가 되기로 결심했으나, 활동가가 된 후로 내가 배운 것은 침묵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는 동료와 여성단체들이 피해자와의 연대만은 함께하고 있다고 믿었다. 이 믿음이 독이었다고, 나의 멍청한 순진함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만 12월 30일 자 검찰 발표는 내게 현실을 들이밀었다.

여성단체는 정치적인 이익에 눈이 멀어 박원순 서울 시장 사건에 있어 가해자와의 함께하기를 택했다. 그리고 내부구성원들은 이 사실이 외부에 의해서 강제로 공개되자 그제서야 자신의 입장을 취했다. 과거의 죄 앞에서 발 빠르게 도망가기 바쁜 당신들이 놓고 간 것은 여성운동이었다. 당신들이 떠나 자리에 남아있는 것은 당신들의 2차 가해로 인한 피해자들의 상처와 죽어버린 여성운동의 시체 뿐이다.

남은 자리에서 시체를 접하게 된 나는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할지 길을 잃었다. 여성단체라는 빈 껍데기만 뒤집어쓴 당신들을 동료로 지칭하며 느낀 참담함의 무게가 당신의 목을 부러뜨리길 바란 날도 있었다. 허나 빈껍데기가 전부였음을 알게 된 후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가 가해자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본 내 두 눈을 찔러서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한들, 이 일이 없던 일이 될 수 있을까.

다른 동료 활동가들처럼 눈이 멀어버린 상태로 이 길을 걷는다 한들, 그 길이 내가 걷고자 한 길이 될 수 있을까. '선배' 활동가라며 그동안 갖은 위계 속에 후배들의 목소리를 틀어막은 당신들은 후배들이 스스로 자신의 눈을 멀게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서울시처럼 성폭력 2차 가해 앞에 침묵하기를 택한 당신들은 지금 가해자와 함께하는 곳에 서 있다. 당신들이 서 있는 장소를 직시하라.

이 글을 읽고서 아무것도 모르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애가 쓴 글이라고 비웃을 당신들의 모습이 훤히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마지막 멍청함을 담아 말하고자한다. 당신들의 위치는 피해자의 목숨을 살리는 위치라는 걸, 그리고 당신의 자리는 지금 가해자와 함께한다는 것을 직시하길 바란다. 여기까지 걸어오게 된 당신의 발자취는 당신들의 썩어문드러진 조직문화가 이끄는 방향 그대로 걸어온 것의 결과이다. 지금 상황은 당신들의 운동의 끝이 어디에 있는지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더 이상 피해자가 고립되지 않도록 조직의 위계질서를 타파하고, 정치권과 결탁 없는 운동을 이어나갈 것을 촉구한다.

그렇지만 나는 여성운동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간직하며 살아갈 것이다. 나는 아직도 내 삶의 소명이 피해자와의 연대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한 여성단체 활동가라는 이름은 단체들의 봐주기식 행정을, 성폭력 2차 가해자를 따스히 감싸안는 활동을, 단체 내부의 여성혐오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위계질서로 찍어누르고, 어린 활동가를 하대하는 것이 일상인 활동을 뜻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성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여성의 목소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순진하게도 믿고 있기에. 여전히 여성운동가의 손은 언제나 피해자의 손을 향해 뻗어있다고 믿기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