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00조 빚 시한폭탄, 韓銀 경고 날렸다

김은정 기자 2021. 1. 6.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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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 코스피, 돈몰려 2990 기록.. 영끌 부동산, 대출 눈덩이 급증

“자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잠재된 위험이 올해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5일 금융권 신년 인사회 신년사에서 “정책 당국과 금융권의 유동성 공급과 이자상환 유예조치 등으로 잠재돼 있던 리스크(위험)가 올해는 본격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높은 수준의 경계감을 가져야 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내수 위축 등으로 실물 경제는 식어가는데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우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경고다. 저금리로 풀린 막대한 자금이 증시로 쏠리고, 부동산 대출 등으로 늘어가는 가계 부채, 복지 확대를 위해 적자 국채를 찍어내고 있는 정부 부채가 더 지속되기 어려운 위태로운 상황이라고 한은 총재가 진단한 것이다.

이날 코스피는 2990.57을 기록했고, 코스닥은 985.76으로 마감했다. 코스피 3000, 코스닥 1000 시대를 눈앞에 두게 됐다. 개인 투자자들은 새해 증시가 문을 열자마자 4~5일 이틀간 2조6000억원이 넘는 돈을 주식에 쏟아부으면서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자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이 총재의 경고는 일부 ‘좀비 기업'의 도산이나 2030세대의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에서 연체가 발생하는 경우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대책 일환으로 이자를 낮추고 원금 상환도 늦춰주고 있지만, 취약한 부분에서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빚으로 지어 올린 누각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다.

증시로 몰린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도 상당 부분 빚이다. 작년 3분기 기준으로 가계·기업·정부 3대 경제 주체가 가진 빚은 4900조원에 육박한다. 특히 가계와 기업의 빚은 각각 경제 규모(GDP)의 101.1%, 110.1%로 전문가들이 과대 부채를 판정하는 임계치를 넘어섰다.

이런 상황에 대해 이 총재는 “코로나를 극복하고 이번 기회에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재설정한다는 ‘그레이트 리셋(Great Reset)’의 비상한 각오가 필요한 때”라고 했다.

증시 대기자금만 130조… 한은 “작은 충격에도 시장 크게 흔들릴 것”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5일 ‘자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잠재된 리스크(위험)’라는 강한 표현까지 동원하면서 증시로 몰리는 자산 쏠림과 가계 부채 급증 현상에 경고장을 날렸다. 통화 정책의 수장이 연초부터 충격 요법에 가까운 발언을 할 정도로 우리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 다다랐다는 의미다.

/그래픽=이철원

◇약한 고리 1. 가계 부채

무엇보다 가계 부채가 턱밑까지 차올랐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는 부실해진 기업의 부채 위기를 건전한 가계와 정부가 받쳐줬지만, 지금은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 3주체가 모두 여유가 없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기업·정부의 부채 총합은 490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작년 6월 말까지 12년간 145% 증가해 세계 평균 증가 속도(31%)에 비해 5배나 빨리 급증했다.

특히 가계 부채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진원지였던 미국의 당시 수준마저 넘어섰다.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작년 9월 말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신용은 101.1%였다. 이는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경제 위기를 맞았던 2008년 미국(97.4%)보다 높다. 장기 경기 침체인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된 1990년 말 일본의 GDP 대비 가계 부채는 70% 안팎이었다. 세계경제포럼(WEF) 등 국제기관들은 GDP 대비 가계 부채가 70~90%를 넘어서면 위험한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가계 부채는 원래도 한국 경제의 우환이었지만, 이번 정부 들어 더욱 빠르게 임계치를 넘어버렸다.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로 빚내 집 사려는 사람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인들을 중심으로 빚을 더 내 주식시장에 달려드는 과열 양상까지 겹쳤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개인이 증권사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에 투자하는 금액인 신용융자는 4일 기준 19조3523억원으로, 2019년 말(9조2133억원)에 비해 10조원 넘게 늘었다. 증시에 언제든 투입될 수 있는 투자자 예탁금은 68조2873억원,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고는 66조4402억원으로 증시 주변을 맴도는 자금이 130조원을 넘는다.

◇약한 고리 2. 좀비 기업들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 기업들도 우리 경제의 약한 고리다. 한은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기업 부채는 2112조7000억원으로 GDP 대비 110.1%로 올라섰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지난달 우리나라 가계·기업 등 민간 부문 빚 위험도를 11년 만에 ‘주의’에서 ‘경보’로 격상했다. 중소기업 중에는 벌어서 이자도 못 갚는 곳이 절반이 넘는 52.8%에 달한다. 은행들은 정부의 코로나 대책 일환으로 작년 9월 말까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 원금 만기와 이자 상환을 연장·유예해줬고, 이 기한을 올 3월 말까지로 한 번 더 미뤄준 상태다. 조만간 만기가 돌아오면 빚 못 갚고 드러눕는 곳이 속출할 수 있다.

실제 한국은행이 성장률 급락과 거품 붕괴라는 강한 충격이 발생하면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충격을 받을지 스트레스 테스트(건전성 평가)를 해봤다. 올해 성장률이 예상치(3.0%)보다 한참 낮은 0%에 그치는 등 2023년까지 성장률이 1%를 밑돌고 주가가 반 토막 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그 결과, 자산가격 하락에 따른 시장 손실을 제외하고 기업이 빚을 갚지 못해 나타나는 신용 손실만 약 48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가계와 기업을 합친 전체 신용 손실 추정액은 67조원으로 계산됐다.

◇”썰물 빠지면 67조원 터진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썰물이 빠져나갈 때 누가 벌거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코로나가 불러온 이례적인 초저금리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 수는 없다. 언젠가는 금리가 정상화되고 거품이 꺼지는 시기가 올 텐데, 이때 빚으로 잔치를 벌이던 이들은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가계 빚 거품이 터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미국에서는 증시가 2007~2009년간 반 토막(-54%) 났고, 경제성장률은 2009년 -2.5%로 뒷걸음쳤다. 미국 경제를 대표하던 투자은행 3곳이 파산했고, 중산층의 자산은 2007~2010년 3년간 40%가 날아갔다.

민좌홍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저금리나 대출 만기 연장이 앞으로 계속될 거라 보기 어렵다”면서 “상황이 변하면 가계의 빚 상환 능력이 빠르게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가계 부채 위험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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