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재판 방청기] 해경 수뇌부도 YTN 보고 세월호 침몰 알았다

한겨레21 2021. 1. 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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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 아빠의 세월호 재판 방청기]이춘재 당시 해경 경비안전국장 증언 "선박에 퇴선 명령 하는 것은 선장만이 가능" 주장
2020년 1월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한 이춘재 전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가운데)과 김문홍 전 목포해양경찰서장(왼쪽 둘째). 이들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승객들이 배에서 벗어나도록 지휘하는 등 구조에 필요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303명(사망자 304명 중 세월호가 기울어진 직후 떨어진 1명 제외)을 숨지게 하고 142명을 다치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를 받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2020년 12월14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세월호 재판 중계 법정은 ‘고장 난 라디오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모습’ 같았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재판은 대법정보다 작은 규모의 523호 법정에서 진행했고, 방청객은 510호 화면으로 그 진행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양쪽이 제시하는 수많은 증거 자료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스피커로 전달되는 음질 불량의 목소리만 들으며 종일 상상의 나래를 펴는 방청이었다.

배가 그렇게 빨리 넘어갈 줄 몰랐다?

이날 피고인 쪽 변호인들은 해경이 구조작업을 하지 못한 이유를 ‘구조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는 논리로 펼치면서, 선체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와 일본 아리아케호 침몰 등 과거 해양사고 사례를 소환했다. 증인으로 나선 피고인 이춘재(당시 해양경찰청 경비안전국장)는 ‘만약 갑판 수밀문(Watertight Door·침수되더라도 수압을 견딜 수 있는 미닫이문)이 닫혀 있었다면 오랫동안 떠 있었을 수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 사례로 세월호와 같은 조선소에서 만든 일본 선박 아리아케호를 들며 “50도가 기울어졌어도 침몰하는 데 5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2015년 가천대 초고층방재융합연구소의 ‘세월호 침몰시 가상 대피 시나리오 기반의 승선원 대피경로 및 탈출소요시간에 관한 연구’를 보면, 세월호에서 탈출하는 데 13분28초가 소요된다고 돼 있다며 사고 현장에 처음 출동한 경비정인 123정이 세월호에 퇴선 명령이 없었다는 걸 인식한 오전 9시44분(1심 판결문)에 퇴선 명령을 내렸더라도 승객 모두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1심을 뒤집은 항소심과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주장이다. 항소심에선 123정이 9시30분에 승객 대부분이 퇴선하지 않고 아직 세월호에 대기했다는 걸 인식했다고 봤다. 또한 당시 동영상을 보면 123정의 승조원 이형래(경사)가 세월호 3층 여객안내실 난간 앞에서 9시43분44초에 승선한 뒤, 5층 조타실 앞까지 이동한 시간은 정확히 1분27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위로 기어 올라가는 탈출’이 아니라 수평으로 좌우를 이동해 미끄럼틀을 타고 밑으로 내려가는 탈출이었기 때문에 가천대 연구 결과보다 훨씬 짧은 시간 안에 모든 승객이 탈출할 수도 있었다.

퇴선 명령 내릴 사람은 누구인가

피고인 김석균(해양경찰청장) 쪽 변호인은 ‘퇴선 명령의 주체’를 쟁점으로 삼았다.

“선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퇴선 여부를 결정하고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가?”(변호인)

“퇴선 명령 관련 규정은 국제해상기구 안전협약과 해사안전법, 수난법에도 나와 있고, 해양수산부의 선박 대피 안전요령 이런 것에도 나와 있는데, 기본적으로 해사안전법 기준으로 본다면 ‘누구든지 선박의 안전을 위한 선장의 전문적인 판단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선박에 퇴선 명령을 하는 것은, 선장만이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이춘재)

검찰 쪽은 “해사안전법도 선장 등이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해경이 승객 퇴선을 명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며 “실제로 123정장 같은 경우 퇴선 유도 조치를 하지 않아서 유죄판결이 확정됐다”고 반박했다.

세월호 침몰 당시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을 안전한 장소로 대피시킬 의무와 탈출시킬 의무(퇴선 명령)가 있었다. 또한 해경도 침몰 사고를 접수하는 시점부터 탑승객을 안전하게 구조할 의무와 구조작업을 지휘할 의무가 있었다. 해경의 퇴선 유도와 퇴선 명령 행위는 구조 과정에 반드시 해야 할 기본 의무였다. 그럼에도 피고인들이 오직 형사책임만 면할 목적으로 “퇴선 명령은 선장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하는 건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이날 이춘재는 내 귀를 의심케 하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세월호 침몰 당일 아침, 해경 차장실에서 국장급 회의를 하고 나오다가 YTN 속보 자막을 보고 세월호 침몰 사실을 알았고, 곧장 차장실로 돌아가 차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 뒤 위기관리실로 달려가 상황을 관리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9시19분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이 나라에 YTN이 없었다면!

청와대 위기관리센터를 비롯해 국가정보원, 행정안전부 등 대한민국 거의 모든 국가기관이 9시19분 YTN 속보 자막을 보고 세월호 침몰 사실을 인지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해양경찰청 수뇌부인 이춘재마저 같은 발언을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이 나라에 YTN이 없었다면 세월호 사건의 결과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YTN이 9시19분에 세월호 침몰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다’는 통설을 믿지 않는다. 세월호 침몰 당일 9시19분33초 청와대 위기관리센터가 문자메시지로 직원들에게 세월호 침몰 사고 사실을 알렸다는 것이 얼마 전 사회적참사위원회 조사 결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해양경찰청 상황실 경비전화 녹취록을 보면, 한 언론사 기자가 9시15분 ‘인천에서 제주 가는 카페리호 사고와 관련한 문의’를 한 것으로 나온다. 구조 지휘 의무가 있는 이춘재가 언론사 기자보다 침몰 사고 발생을 늦게 알았다면 해경을 어찌 정상적인 국가기관이라 할 것인가. 그런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이제 공식적인 재판 절차는 한 번 남았다. 2021년 1월11일 마지막 공판 때 피고인신문과 최후진술을 한다. 지금까지 피고인들의 태도를 볼 때, 다음 기일에서 진실을 말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오직 형량을 낮추기 위해 기계적으로 반성하는 모습만 보일 것이다. 급속히 기울어지는 배 안에서 죽어갔던 원혼들의 고통에 견줄 순 없겠지만, 만약 그들이 그런 모습을 보인다면 나는 극심한 고통으로 법정에서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피고인들의 가슴속에 작은 양심의 불꽃이 아직 남아 있다면,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로 죽어간 아이들한테 진정으로 사죄하는 모습만은 꼭 보여줄 것을 권한다.

박종대 단원고 2학년 고 박수현군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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