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향신문]
서울시가 운영하는 임신·출산 정보 사이트에 임신부에게 돌봄 노동을 하고 외모를 가꾸라는 등의 내용이 실려 비판이 커지고 있다. 논란이 일자 서울시는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6일 온라인에는 ‘서울시 임신·출산정보센터’에 실린 임신 주기별 정보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이 사이트는 서울시가 2019년 6월 임신·출산 정보를 한눈에 보고 민원까지 처리한다는 취지로 개설됐다.
문제가 된 부분은 임신 주기별 정보를 제공하는 메뉴다. 임신 35주차 만삭 임신부의 행동 요령으로 ‘밑반찬 챙기기’ ‘옷 챙기기’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사이트는 “냉장고에 오래된 음식은 버리고 가족들이 잘 먹는 음식으로 밑반찬을 서너 가지 준비해 둡니다. 즉석 카레, 자장, 국 등의 인스턴트 음식을 몇 가지 준비해 두면 요리에 서툰 남편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라고 안내했다. 또 “3일 혹은 7일 정도의 입원 날짜에 맞춰 남편과 아이들이 갈아입을 속옷, 양말, 와이셔츠, 손수건, 겉옷 등을 준비해 서랍해 잘 정리해 둡니다” “화장지, 치약, 칫솔, 비누, 세제 등의 남은 양을 체크해 남아있는 가족들이 불편하지 않게 합니라” 등의 당부도 실렸다.
지방자치단체가 가사와 돌봄노동을 여성의 몫으로 상정하고, 출산 전 이를 마치고 (병원으로) 떠나라는 안내를 한 것이다.
임신한 여성에게 외모를 가꿀 것을 조언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임신 19주차 안내에는 “배가 불러온다고 움직이기 싫어하면 체중이 불어나는 것은 순식간”이라며 “청소나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미루지 말고 그때그때 하면 체중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권했다. 또 필요 이상 음식이 당기거나 체조를 거르고 싶을 때에는 “결혼 전 입던 옷이나 출산 후에 입고 싶은 작은 사이즈의 옷을 사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자극을 받으라”는 조언도 했다.
이러한 내용이 전날 알려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비판이 커졌다. 누리꾼들은 “여성을 가사도우미로 여기는 것이냐” “국가가 비혼을 장려한다” 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한 30대 여성은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는 지경이다. 왜 매번 욕을 먹고도 발전이 없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센터 담당자 징계와 서울시의 사과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와 수 시간 만에 1만3000명 넘는 동의를 얻었다.
비판이 커지자 서울시는 해당 내용을 삭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보건복지부의 임신육아종합포털인 ‘아이사랑’에 나온 가이드 내용을 그대로 쓴 것”이라며 “복지부는 이후 검수를 받아 해당 내용을 수정했는데 서울시는 인력 부족 등 이유로 업데이트를 하지 못했다. (사이트) 개설 당시 잘 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정부기관이 제공하는 콘텐츠가 여성혐오 논란에 휩싸인 사례는 많다. 국무총리실은 지난달 공식 트위터 계정에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의 고통을 ‘마스크 때문에 안 좋아진 피부’로 표현한 만화를 올렸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18년에는 불법촬영물 근절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든 홍보물에서 불법촬영물 소지를 가볍게 묘사해 공분을 샀다. 2016년에는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가 지역별 가임기 여성의 수를 표시한 이른바 ‘가임기 여성지도’를 만들어 거센 비판을 받았다. 보건복지부도 같은 해 국가건강정보포털에 ‘여성의 아름다운 가슴’이 갖춰야 할 조건을 구체적인 수치로 나열해 여성 신체를 성적 대상화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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