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5인 미만 사업장 제외 합의..껍데기만 남은 중대재해법

심진용·김상범 기자 2021. 1. 6.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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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정부 입김만 반영되는 여야 '합의안'

[경향신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 위원장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일 정의당 의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손팻말을 들고 있는 소위 회의실 앞을 지나 들어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경영 책임자 범위 규정도 완화…사주 처벌 제외 가능해
10인 이하 소상공인·1000㎡ 이하 다중시설도 제외 합의
정의당 “법안소위가 국민 배반…기업살인방조법 됐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안이 처벌 수위와 대상, 법 적용 대상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여야는 6일 부칙의 법 적용 유예 조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쟁점에 잠정 합의했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재벌 총수 등 실질적인 경영책임자가 처벌을 면할 여지를 만드는 등 재계와 정부 입김이 강하게 반영되면서 법 제정 취지 자체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야는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논의 결과 중대산업재해와 관련해 5인 미만 사업장은 법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소벤처기업부에서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소상공인 어려움이 너무 커진다’고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산업재해 사고 다수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노동자 죽음을 막겠다’는 법 취지를 근본적으로 훼손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연간 산재 사망자 2000명 중 약 400명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한다”며 “국민 생명과 안전에 차별을 두는 것으로 ‘중대재해국민차별법’”이라고 비판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법의 근간인 근로기준법도 일부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이중 사각지대’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야는 중대시민재해와 관련해서도 10인 이하 소상공인과 1000㎡ 미만 다중이용업소(식당, 노래방, PC방 등)도 법 적용 대상에서 빼기로 했다.

여야는 경영책임자 범위 규정에서도 후퇴했다. 정부안에 맞춰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책임자를 규정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경영책임자가 규정될 경우 실질적 책임이 있는 재벌 총수 등이 아닌 하급자인 안전보건 담당자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어 ‘또는’ 대신 ‘및’을 써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여야는 ‘또는’을 관철했다. 백 의원은 “차관에게 전속 권한을 주고 일을 맡겼는데,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장관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되는 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말했다.

책임범위에 ‘발주처’나 ‘임대인’을 포함시키는 내용도 삭제됐다. 원안에는 재해 발생 시 공사를 발주한 건설사나 건설장비를 임대한 측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공무원도 책임범위에서 제외됐다. ‘소극행정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여야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법 적용을 4년간 유예한다’는 부칙 조항을 두고도 격론을 벌였다. 이미 정부안에 50~99인 사업장도 법 적용을 2년 유예한다는 내용이 더해진 상황이다.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는 통화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 사고가 가장 많이 일어난다. 유예를 둔다면 법안을 만드는 취지도 없어진다”고 말했다.

정의당은 이 같은 합의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장혜영 의원은 “법안소위가 국민을 배반했다. 기업살인 방조법에 가깝다”고 말했다. 경영책임자에게 직접 책임을 묻지도 못하고, 산재 사고가 집중되는 영세 사업장도 관리할 수 없는 법이 됐다는 것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7일 다시 법안소위를 열어 법 적용 유예를 다루는 부칙을 논의한뒤 8일 본회의에서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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