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 하는 죄로 교도소 담장 위에서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

입력 2021. 1. 7. 03:26 수정 2021. 1. 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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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단체장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입법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산업 현장에서 1명 이상 사망하거나 2명 이상이 중상을 입는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기업 CEO와 임원, 대주주까지 최소 1년 이상 감옥에 보낼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합의됐다. 중대 사고 발생 시 경영자의 과실 여부를 사실상 따지지 않고 1년 이상 징역형이나 10억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이다. 대기업은 물론 영업면적 1000㎡ 미만의 음식점·노래방 등 다중 이용업소와 종업원 5인 미만 사업장을 뺀 모든 중소기업·상공인들이 적용받게 된다. 여야가 합의한 대로 이 법이 오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대부분 기업과 상당수 소상공인들이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가혹한 처벌 위험에 처하게 된다.

이 법안은 사업주에게 ‘재해 예방에 필요한 안전 보건 경영 체계의 수립·이행에 관한 조치' 등을 취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중대 사고가 나면 사실상 무조건 징역·벌금형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사업주의 의무를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포괄적으로 규정해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사업주가 아무리 산업 안전 조치를 취해도 법에 규정된 의무를 다했음을 입증해 면책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근로자 사망 등 중대 재해가 터지면 거의 100% 사업주가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처벌 대상자엔 CEO나 경영자는 물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책임 있는 사람'도 포함시켰다. 대주주가 경영에 직접 관여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하도급업체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해도 원청업체 경영진과 대주주에게 책임을 묻도록 했다. 웬만한 중소기업이면 사업 현장이 수십 개에 달하고, 건설업체는 수백 곳씩 건설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수많은 현장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CEO나 대주주를 감옥에 보낸다면 성할 기업이 없다. 기업인을 교도소 담장 위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처벌은 벌금 아니면 ‘1년 이상 징역형’이다. 이런 식으로 형량을 정해 무조건 그 이상 징역형을 내리도록 한 범죄는 살인이나 아동학대치사, 특수절도 정도다. 안전사고가 발생한 기업의 경영자가 그런 범죄를 저지른 것인가. 세상에 근로자를 죽이거나 중상을 입히겠다는 고의를 가진 경영자가 어디에 있나. 중소기업계에선 “기업인에게 이 나라를 떠나라는 법” “소상공인더러 멸망하라는 것”이란 절규에 가까운 반발이 쏟아지고 있다.

문 정부 들어 기업을 범죄자로 모는 법이 줄줄이 만들어졌다. 주 52시간제를 비롯해 화학물질 관련 규제와 산업안전보건법이 강화되고 경영권을 위협하는 기업 규제 3법까지 만들었다. 기업주와 법인을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규가 2600여 개에 달한다. 여기에 중대재해법까지 더해져 기업 하는 사람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예비 범죄자’나 마찬가지 처지가 됐다. 노동계 환심을 사려는 정부·여당이나 법 처리에 합의해준 야당이나 기업의 처지는 안중에 없다. 기업을 경영하는 그 자체가 ‘잠재적 범죄'가 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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