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백신학 교과서를 다시 쓰는 사건이었다"

김연희 기자 2021. 1. 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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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부터 바이러스와 백신을 연구해온 남재환 교수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백신 역사의 3대 사건이라고 꼽았다. 백신 확보와 관련해서 면책을 보장해야 정은경 청장 같은 이가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사IN 조남진남재환 교수가 연구실 벽면을 다 채우는 대형 화이트보드 앞에서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칭기즈칸도, 나폴레옹도 해내지 못한 일이었다. 작디 작은 바이러스 하나가 1년 만에 전 지구를 점령했다. 전 세계 그 누구도 이 존재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많은 이들이 세상을 떠났고, 더 많은 이들의 삶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훗날 역사책을 펼친다면 2020년은 어두운 페이지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2020년은 암흑 속에서 쉴 새 없이 빛을 찾아나간 해이기도 했다. 코로나19를 따라잡기 위해 과학자들은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규모와 속도로 연구하고 개발했다. ‘원인 미상’이었던 폐렴의 정체를 밝혀냈고, 이 바이러스를 구성하는 유전자를 속속들이 알아냈으며, 어떤 경로로 질환을 일으키는지 탐구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백신을 완성했다. 몹시 혹독한 세밑을 지나왔지만, 2021년에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이유다.  

남재환 가톨릭대 의생명과학과 교수도 그런 과학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1990년부터 바이러스와 백신을 연구해왔다. ‘바이러스’라고 하면 컴퓨터 바이러스를 떠올리던 시절이었다. 2020년 팬데믹은 그가 30년간 걸어온 길과 여러 면에서 맞닿아 있다. 첫 코로나19 백신이 mRNA 백신으로 개발되면서 이 기술에 이목이 집중되었으나, 2019년까지만 해도 mRNA 백신을 연구하는 학자는 국내에 남 교수를 비롯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지금도 그는 국내 제약사와 함께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하고 있으며, ‘코로나19 백신 도입 자문위원회’에도 속해 있다. 2020년 과학이 이룬 성취에 대해, 2021년 코로나19 백신이 해낼 일에 대해 질문한다면 남 교수보다 적합한 상대는 없을 것이다. 지난 12월20일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으로 210분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화면 속 남재환 교수는 일요일인데도 연구실에 나와 있었다.

주말인데도 학교에 출근하나요?

집이 가까워서요. 유일하게 조용히 일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주말 오후에는 거의 연구실에 옵니다. 어제는 쓰던 논문 하나를 마무리했어요.

무슨 논문인가요?

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재조합 단백질 백신 기반으로 만들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을 함께 개발하고 있어요. 동물시험 데이터를 분석해 논문 쓰는 역할을 맡았어요(백신은 ‘후보 물질 개발→동물시험→임상 1상·2상·3상 시험’을 거친 뒤 규제 당국의 심사를 받아 출시된다. 단계마다 시험 결과가 논문으로 발표된다). 기사를 쓸 때 COI(Conflict of Interest:이해관계 충돌 문제)를 꼭 밝혀주세요. SK바이오사이언스에서 연구비를 받고 있어요. 만약 안 밝히고 인터뷰하면 나중에 SK 백신 홍보하려고 그랬던 거 아니냐고 오해받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의도는 당연히 없지만 그래도 밝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결과는 어떤가요?

아직 논문이 과학 저널에 실린 게 아니라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어요. 원숭이 시험 결과는 좋아요. 하지만 사람한테 접종했을 때는 또 달라집니다. 지난 12월에 서울대 병원에서 임상 1상 들어갔으니 지켜봐야죠.

국내에 도입할 백신이 아스트라제네카, 얀센, 화이자, 모더나로 정해졌습니다. ‘백신 도입 전문가 자문위원회’에 참여한 바 있는데 한국의 백신 확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2020년 11월에 두 번 정도 자문위원회 회의를 했어요. 그때 전문가들이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라”고 조언했지요. 다양한 종류의 백신을 선구매하라는 거예요. 그 조언을 듣고 정부가 여러 제약사와 협상했어요. 임상 2상 결과만 나와 있었고, 3상에 막 들어가던 시기였죠. 당시 3상에 들어가 있던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모더나는 모두 포함됐고 아직 3상 들어가기 전인 얀센까지 넣었으니, 다양한 백신을 계약했다고 볼 수 있어요.

‘백신 확보가 늦었다’ ‘백신 올림픽에서 뒤처졌다’ 등의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뒤처지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영국이나 미국 같은 일부 선진국처럼 빨리하지는 못했죠. 그런 나라는 2020년 봄에 이미 수천억 원, 심지어 수조 원 단위로 연구비를 주면서 선구매를 했어요. 우리나라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확진자 수나, 사망자 수, 유행 규모가 너무 달랐잖아요. 겨울 들어 국내 상황이 심각해지긴 했지만 미국이나 유럽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그렇게 급하지 않은 나라에서 몇조 원 단위로 계약했다가 개발 중인 백신이 실패했다면 지금쯤 완전히 다른 얘기가 나오는 중일 겁니다.

화이자, 모더나는 효능이 95%가량 됩니다. 한국이 첫 번째로 들여올 아스트라제네카는 70% 정도라고 밝혔고요. 효능이 좋은 화이자, 모더나 백신으로 전 국민이 접종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화이자, 모더나는 mRNA 백신이에요. 지금까지 한 번도 상용화된 적이 없는 기술이죠. 95%는 깜짝 놀랄 만큼 좋은 결과예요. 앞으로 mRNA 백신이 판도를 바꿔놓게 될 거라고 기대할 만합니다. 하지만 이번 팬데믹에서 ‘게임 체인저’가 되기는 어려워요. 새로 나온 기술이라 생산설비 자체가 아직 별로 없어요. 갑자기 대량으로 원료를 공급하기도 어려워요.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거죠. 미국이나 유럽도 화이자, 모더나 백신으로 일부 고위험군을 먼저 접종하고 있지만 전체 국민이 맞을 만한 물량이 되진 않을 거예요.

아스트라제네카도 상당히 좋은 백신이에요. 효능 90%와 70%가 엄청 큰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실제 필드에서 접종 들어가면 발표한 효능과 달라질 수 있고요, 효능이 한 가지 기준은 되겠지만 90%는 좋은 백신, 70%면 나쁜 백신 이렇게 단순 비교할 수는 없어요. 백신은 접근성, 수용성, 경제성 모두를 고려해야합니다. 지금은 무조건 어느 정도 효율이 좋은 백신을 빠르게, 많은 사람들이 접종 받는 게 중요한 시점이에요. 제일 중요한 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고 코로나19에 걸린 사람은 있었지만, 중증으로 심하게 앓은 케이스는 안 나왔어요. 모더나, 화이자도 마찬가지예요. 백신 효과는 감염이 안 되게 하는 것과 중증도로 가지 않게 하는 것 두 가지예요. 걸렸어도 중증이 안 되면 의료시스템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어요.

ⓒEPA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mRNA 백신 기술로 공동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아스트라제네카는 임상 3상에서 초기 참가자들에게 용량을 절반만 투여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원래 용량을 제대로 투여받은 참가자들보다 절반만 맞은 참가자들에게서 더 높은 효능이 나타나는 의외의 결과를 얻었지요. 믿어도 되나요?

아스트라제네카가 그런 실수를 할 줄이야. 정말 의외였어요. 좋은 쪽으로 봐주자면 자기들이 실수했다는 사실을 속이지 않고 공개했다는 거예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2회 접종을 해야 하는데, 일부 참가자들에 대한 첫 번째 접종에서 하프(half:절반) 도스를 투여하는 실수를 범했지요. 두 번째에 풀(full:정해진 용량) 도스를 접종했고요. 그런데 “효능이 하프 도스를 맞은 그룹에선 90%, 전체 용량을 원래대로 맞은 그룹에서는 62%가 나와 평균을 내보니 70%더라”고 발표했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바이러스 벡터 백신이잖아요. 아직은 조사를 더 해봐야겠지만, 바이러스 벡터 백신은 ‘하프-풀 조합’으로 접종했을 때 효능이 좋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미국 FDA 심사가 늦어지는 이유도, 안전성이나 효능에 대한 의문이 아니라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더 가져와봐’ 하는 겁니다.

중국이랑 러시아도 백신을 아주 빠르게 개발했고, 자국에서 쓰고 있어요. 그런데 백신 도입 자문위원회에서 그 백신을 확보하자고 할 수가 없었어요. 과학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에요. 중국과 러시아의 과학 수준도 상당히 높고, 백신도 잘 만들어요. 이번 백신도 엉터리일 거라곤 보지 않아요. 그러나 공개된 데이터가 부족했어요. 임상 3상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어떤 부작용 의심 사례가 있었는지,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공개를 안 하니까 신뢰의 문제 때문에 도입할 수가 없었습니다.

코로나19 백신은 정말 놀라운 속도로 완성되었어요.

백신이라는 용어는 ‘소로부터’라는 뜻의 라틴어 ‘바키누스(vaccinus)’에서 나왔어요. 최초의 백신은 소한테 천연두를 일으키는 ‘우두’였어요. 1700년대 말에 에드워드 제너가 소에 생긴 우두를 사람에게 접종해 천연두를 예방하는 요법을 개발하면서 ‘백신의 아버지’라 불리게 된 거죠. 이건 자연에 있던 바이러스를 가져다 쓴 거고, 인위적으로 백신을 만들 수 있게 된 건 19세기 들어서예요. 파스퇴르가 인위적인 백신을 최초로 만들었죠. 제너와 파스퇴르, 이 두 사람 덕분에 ‘백신’이라는 ‘사건’이 벌어진 거예요. 그 뒤로 다양한 종류의 백신이 개발되었어요. 제너와 파스퇴르가 썼던 약독화 백신부터 불활화 백신, 재조합 단백질 백신 그리고 DNA 백신, mRNA 백신까지…. DNA 백신, mRNA 백신 기술은 1990년대에 이미 알려졌지만 그 이후로 천천히 진도가 나가고 있었죠. 여기까지가 전체적인 백신의 역사입니다. 강의를 하면 이렇게 점진적인 발전 과정을 설명하고 “백신 개발은 최소 5년, 보통은 10~20년 걸립니다”라고 가르치는데, 이번엔 모든 것이 1년 만에 이루어졌잖아요. 백신학의 교과서를 완전히 바꾸었다고 할 수 있어요.

백신 역사에서도 2020년이 굵직하게 기록되겠네요.

그 이상이죠. 제너와 파스퇴르에 이어 3대 사건으로 꼽고 싶어요. mRNA 백신을 필두로 해서 코로나19 백신 전체를요. mRNA 백신이 먼저 나오기는 했지만 다른 종류의 백신도 정말 빠르게 개발되고 있거든요. 현존하는 모든 백신 기술과 시스템이 다 동원되고, 개발·생산·배분까지 한 번에 이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어떻게 기간을 단축할 수 있었죠? 짧은 시간에 개발한 백신이라 불안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몇 가지 요인이 겹친 덕분이에요. 첫 번째, 코로나19는 다행스럽게도 변이가 심하지 않아요. 변이가 발생했다는 뉴스가 계속 나오지만, 다른 바이러스와 비교하면 많지 않은 편이에요. 에이즈를 유발하는 HIV 바이러스는 몸에 들어오자마자 변이를 일으켜요. 그래서 발견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백신이 없는 거예요. 심지어 ‘백신 회피주’라고 해서 새로 나온 백신의 효능을 무력화하는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코로나19 변이 중에 백신 회피주는 없는 것으로 보여요. 두 번째, 이제 인류가 바이러스 백신 개발 플랫폼을 다양하게 갖추는 수준에 도달한 거예요. mRNA 백신이 대표적이죠(플랫폼은 백신을 만들 때 범용적으로 쓰이는 틀을 뜻한다. mRNA 플랫폼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RNA를 넣으면 코로나19 백신이, 지카바이러스의 RNA를 넣으면 지카 백신이 된다). 모더나, 바이오엔테크 같은 회사들은 mRNA 플랫폼으로 암 치료용 백신을 개발하고 있었어요. 아스트라제네카나 얀센은 바이러스 벡터 백신으로 다른 감염병 백신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고요. 이번 사태가 터지자 그걸 잽싸게 코로나19 백신으로 바꾼 거예요.

세 번째 이유는 FDA 같은 규제기관이 인허가를 굉장히 빨리 내준 것이죠. 백신(백신 후보 물질)을 실험실에서 만드는 것 자체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아요. 웬만한 건 한두 달이면 돼요. 진짜로 효능이 있고 안전한지, 용량은 얼마가 적당한지 알아보는 테스트(동물시험·임상시험) 기간이 오래 걸리는 거예요. 경험이 없으면 임상시험 디자인이나 분석을 못해요. 비용도 많이 들고요. 임상 3상은 수천억 원 단위로 돈을 써야 해요. 지금은 제약사들이 아주 의욕적으로 투자하고 있잖아요. 동시에 규제기관이 동물시험에서 1상으로, 1상에서 2상으로, 2상에서 3상으로 넘어가는 것을 아주 신속하게 허가해주고 있어요. 사실 임상 3상도 다 끝난 게 아닌데 워낙 급하니까 승인한 거죠. 그래서 ‘긴급’ 사용 승인이에요. 원래대로면 1~2년 동안 3상으로 장기 부작용이나 장기 면역성을 확인하고 그 데이터를 제출해야 심사를 받을 수 있어요. 긴급사용 승인을 받은 화이자나 모더나도 계속 임상 참가자들을 모니터링 하고 있어요.

ⓒAP Photo앤서니 파우치 미국 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 소장이 2020년 12월22일 모더나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백신 부작용이 1~2년 뒤에 나타날 수 있나요?

물론 확률은 굉장히 낮아요. 그런데 mRNA 백신을 맞고 1년이 지난 사람이 지금 아무도 없으니까, 과학적으로는 “모른다”라고 하는 게 정확하죠. 하지만 백신 부작용은 보통 두 달 안에 일어나요. 그래서 이번에 코로나19 백신도 임상 3상에서 접종 후 최소 두 달은 지켜본 다음에 승인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대부분의 백신 부작용은 접종하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요. 백신 맞으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 병원을 떠나지 말라고 하잖아요. 위기 상황이라서 급하게 했지만 지켜야 할 건 다 지켰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도입하려고 하는 백신들은 문제가 생기면 생겼다고 임상시험도 투명하게 공개하고 있고요.

mRNA 백신에 대한 첫 논문은 1990년에 이미 발표되었는데 왜 이제야 처음으로 활용하게 되었을까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대량생산. 이건 아직도 완벽하게 해결되지 못한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전달. RNA는 아주 연약한 물질이라 쉽게 깨지거든요. 깨지지 않고 체내까지 전달할 방법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RNA를 잘 보호할 수 있는 막을 개발하기 시작한 거죠. ‘리피드 나노 파티클’이라는 지질막이 유력해 보였고, 이번에 코로나19 백신에 쓰이면서 검증이 됐어요. 이 막이 처음에는 비누 거품처럼 RNA를 잘 감싸고 있어야 해요. 몸 속 세포에 들어간 이후엔 잘 쪼개져서 RNA가 빠져나올 수 있어야 해요. 둘 다 충족해야 하니까 어려웠죠. mRNA 백신 기술은 조금씩 진보해왔어요. 암 치료용 백신으로 많이 연구됐는데, 코로나19 유행을 맞아서 ‘빵’ 떴죠. mRNA 백신은 다른 백신보다 비교적 빨리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이미 유명했어요. 사회적 수요가 딱 맞아떨어진 거죠.

국내에도 mRNA 백신 연구자가 많나요?

2019년까지는 거의 없었어요. 저는 8~9년 전쯤 시작했는데 두 번의 계기가 있었어요. 첫 번째는 다른 연구자와 술 먹다가 ‘넥스트 게임 체인저는 뭐가 될까’ 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둘 다 mRNA 백신을 생각한 거예요.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아니구나 싶었죠. 두 번째 결정적인 계기는 2015년 메르스 사태예요. 그때 여러 가지 정부 과제가 나왔어요. mRNA 백신으로 메르스 백신을 개발하겠다고 신청하고 연구비를 받았어요. 2년 정도 뒤에 mRNA 플랫폼을 완성했죠. 그런데 아직 해결이 안 된 게 mRNA 플랫폼을 감싸는 ‘리피드 나노 파티클’ 부분이에요. 이 파트는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협업을 해야 돼요.

그 기술로 코로나19 백신도 개발하고 있나요?

실험실에서 연구용으로만 하고 있어요. 그동안 국내에서 혼자 mRNA 백신을 하다 보니 아주 획기적인 개발을 하지는 못했어요. 모더나만 해도 전체 직원이 400명이 넘어요. 거의 다 mRNA 하는 사람들이죠. 나는 그냥 조언해줄 정도의 지식만 쌓은 것이지 그런 회사를 압도할 수는 없어요. 한국에서도 삼성 바이오로직스나 SK바이오사이언스처럼 규모와 기술력을 갖춘 회사들이 mRNA 백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일하는 연구원들이 제가 알고 있는 정도를 따라잡는 건 몇 개월이면 끝나요. 코로나19 백신은 늦었지만 앞으로 다른 백신들은 체계가 잘 잡히지 않을까 싶어요.

ⓒEPA2020년 12월15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중국 칸시노바이오로직스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의 임상시험에 응한 참가자들이 접종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mRNA 백신에 대해 강연한 영상을 봤습니다. 필요한 사람에게 mRNA 플랫폼을 나눠주겠다고 하셨어요.

mRNA 플랫폼을 생산해서 주는 거예요. 공동연구 차원이라고 하면 무료로 줘요. 지금 한 다섯 군데 정도 주고 있어요.

원재료를 준다는 건가요?

아니요. 우리 연구실에서 발현한 거요. 우리가 만든 거, 우리가 특허 낸 거.

그걸 왜 공짜로 나눠주나요?

과학은 공짜로 나눠주는 거잖아요.

네?

원래 그렇게 다 하는데···. 과학자가 왜 연구를 하겠어요. 첫 번째는 호기심이에요. 두 번째 솔직히 말하면 과학자들, 명예욕이 있어요. 명예욕이 뭐냐면 ‘내가 최초로 발견했어’ ‘이런 거 처음 했어’ 그런 거예요. 세 번째는 물질적인 욕구도 당연히 있죠. 이 세 가지가 섞여 있겠죠. 근데 과학 논문을 발표한다는 건 ‘내가 가진 정보나 물질을 모든 사람에게 대가 없이 제공하겠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는 거예요. 물론 ‘이건 정말 나만의 한 수다’ 그러면 조금씩은 숨기죠(웃음). 그래도 연구한 건 모두 공개한다는 게 과학자들의 기본적인 마음이에요. 저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mRNA 플랫폼 공유가 저에게도 도움이 돼요. mRNA를 둘러싼 거품 부분(리피드 나노 파티클)은 협업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걸 연구하는 분들에게 주고 그 연구자들이 성공하면 저에게도 이득이잖아요.

안 주는 경우는 없습니까?

회사나 회사에 속한 과학자들은 그렇게 하기 어렵죠. 회사는 이윤을 내야 하고 노하우를 독점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아카데미에 있는 연구자들은 대부분 공유하는데 간혹 안 주고 감추는 사람들이 있어요. 바보라고 생각해요. 우리 연구실 학생들이 연구하다가 가끔 “교수님, 우리만의 획기적인 무언가가 될 것 같아요” 할 때가 있어요. 그러면 더 찾아보라고 해요.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롭고, 완전히 혼자만 할 수 있는, 그런 거 없어요. 과학은 누구 한 명이 ‘날 따라라, 내 밑으로 다 모여’ 하는 톱다운(하향식) 방식이랑 안 맞아요. 많은 과학자들이 우르르 연구해서 조금씩 진보하는 거예요. 이번 코로나19 mRNA 백신도 만든 곳은 모더나나 바이오엔테크 같은 특정 회사지만, 수십 년간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이 축적되어서 여기까지 온 거예요.

ⓒAFP PHOTO2020년 12월29일 그리스 엘레프테리오스 베니젤로스 국제공항에서 인부들이 화이자의 코로나19 백신 컨테이너를 하역하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이 나오는 데 도움이 된 앞선 연구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다들 곧바로 스파이크 단백질에 매달렸잖아요(스파이크 단백질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 부위다. 세포에 침투할 때 코로나바이러스는 이 부위를 열쇠처럼 활용한다). 스파이크 단백질이 백신 후보인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2002년 사스, 2015년 메르스가 나오기 전부터 미국에는 코로나바이러스를 연구하는 팀들이 있었어요. 수전 와이즈 교수라고 70세가 넘었는데 오랫동안 코로나바이러스를 연구했어요. 제자들이 학계로 나와 코로나 연구의 중심이 된 거죠. 올해 초 어떤 강연을 봤는데 “전 세계 과학계가 수전 와이즈 박사한테 빚이 있다. 와이즈 박사의 코로나 기초연구 덕분에 백신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라고 소개하더라고요. 기초과학이나 보건에 투자하는 건 국방비랑 비슷해요. 평시에 국방비는 쓸모없어 보이지만 전쟁이 나고 그때부터 투자하면 이미 늦잖아요. 한국 과학계 상황이 거기에 비견될 수 있어요. 우리나라도 기초과학 투자비가 절대량으로 작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탄탄한 수준은 아니죠.

과학자들에게 2020년은 어떤 해였습니까?

매우 놀라웠죠. 하나의 바이러스에 대해 이렇게 짧은 시기에 많은 정보가 쏟아진 건 코로나19가 처음이에요.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로 연구가 진행된 것도 처음이고요.

코로나19보다 더 알 수 없는 바이러스가 있나요?

엄청 많죠. 바이러스 대부분에 대해 밝혀진 지식이 별로 없어요. 다만 코로나19보다 더 많이 연구된 바이러스는 에이즈의 원인인 ‘HIV 바이러스’와 C형 간염 바이러스 정도밖에 없어요. 미국에서 에이즈와 C형 간염에 걸리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그래서 C형 간염은 완치 약이 개발되었고, 에이즈도 완치는 아니지만 복용하면 일상에 문제가 없는 치료제가 나왔죠. 과학에도 헤게모니가 있는 거예요.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에서 유행하며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병보다 선진국을 위협하는 질환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해요.

ⓒEPA수전 와이즈 교수의 기초연구 덕에 코로나19 백신 개발이 빨라질 수 있었다.

코로나19에 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정보가 있다면요?

왜 고령자에게는 치명적이고 젊은 사람들에게는 별문제가 없을까요? 이 부분에 대한 연구도 빠르게 진척되어서 몇 가지 가설은 나왔지만, 명확한 원인은 아직 밝히지 못했어요. 두 번째는 백신과 관련된 거예요. 면역이 얼마나 유지되는지, 백신이 막아내지 못하는 변이가 나타날지 아직은 몰라요. 처음에는 코로나19에 걸린 뒤에 면역이 생기는지도 확실치 않았죠. 이제 생긴다는 건 알고 있는데 기간은 정확히 모르는 거죠. 코로나19에 걸리고 나서 제일 오래된 사람들이 이제 고작해야 1년이잖아요. 이건 경험적으로 지켜봐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과학계가 놀라운 성취를 보여주었지만 잘못된 연구나 발표는 없었나요? 발표했다가 오류가 발견돼 철회된 논문들도 있었는데요.

가장 널리 퍼진 가짜뉴스는 ‘중국에서 코로나19를 인위적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인 것 같아요. 홍콩 출신의 옌리멍 박사가 논문을 냈지만 과학 저널에서 다 반려됐어요. 데이터가 너무 조잡해서 논의하기도 어려운 수준이었어요. 중국을 싫어하는 감정이 앞선 건데, 과학에 감정이 개입하면 안 돼요. 과학계에서 나온 가짜뉴스는 아니지만 또 하나 꼽고 싶은 건 빌 게이츠나 제약회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바이러스를 만들고 백신을 판다는 얘기예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예방용 백신은 가격을 높게 받을 수가 없어요. 모더나가 40달러 조금 못 되는데 코로나19 백신 중에서는 비싼 편이잖아요. 암 치료용 백신은 한 번 투여하는 데 1만 달러(약 1100만원)씩 해요. 면역 항암용법을 하면 10회 정도 맞아야 하니까 10만 달러예요. 돈만 봤다면 암 치료용 백신을 계속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2021년에 한국에서도 코로나19 백신이 접종될 텐데 시민들이 미리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을까요?

백신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효능이 100%는 안 나오니까 백신을 맞아도 코로나19에 걸리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건 맞아요. 하지만 임상 3상 데이터를 보면 중증도로 가는 건 다 막아냈어요. 백신이 우리 몸을 보호해서 심하게 앓는 걸 방지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백신을 맞으세요” 권유할 수 있어요. 또 하나 알아둬야 할 게, 백신을 맞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면역이 형성됩니다. 백신은 진짜 바이러스에 감염될 걸 대비해 가상으로 위험신호를 보내서 인체를 훈련시키는 거예요. 군대를 떠올리면 쉬운데 군인들도 입대하자마자 명사수가 되는 거 아니잖아요. 논산훈련소에서 신병 교육 훈련을 받잖아요. 인체도 훈련 기간이 필요해요. 지금 2회 접종 백신이 대부분인데, 두 번째 접종을 한 뒤 2주는 지나야 면역이 완전하게 형성돼요. 그러니까 백신 맞았다고 바로 마스크를 벗고 다니면 안 돼요.

ⓒ연합뉴스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2020년 12월8일 백신 도입과 관련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능후 장관 오른쪽 뒤에 백신 도입 자문위원인 남재환 교수가 있다.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백신은 당신을 보호하는 게 아니라 당신 가족을 보호하는 겁니다”라고 말해주세요.

부작용이 불안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부작용에도 단계가 있어요. 그레이드(Grade)를 1에서 4까지 나누어요. 그레이드 3부터가 위험한데 우리가 도입하는 백신 중에 그레이드 1, 2를 넘는 건 없어요. 백신은 위험신호를 보내서 몸을 훈련시키는 거라고 했잖아요. 면역반응이 일어나면서 열이나 몸살 나는 것이 그레이드 1, 2예요. 다른 감염병 백신들도 그런 반응이 나타나요. 그런데 임상 3상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부작용이 접종을 시작하면 나타날 수 있어요. 지금 3만명 이상 임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보다 드물게 나타나는 부작용은 걸러내지 못하는 거잖아요. 화이자 백신을 실제 접종하니까 아주 소수이긴 하지만 임상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일어났잖아요. 이전에 알레르기가 심했던 사람들은 테스트에 포함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임상에서 알아내기 어려웠던 거예요. 화이자와 모더나는 접종에 들어갔고 아스트라제네카도 영국에서는 곧 접종을 할 것으로 보여요. 우리는 빨라야 2~3월에 시작이잖아요. 그때까지 다른 나라의 데이터를 참고해서 예방접종을 준비해야죠. 1000만명쯤 접종했는데 문제가 없으면 이거 믿고 맞아도 되겠다 할 수 있어요.

교수님은 코로나19 백신 맞으실 건가요? 맞으면 언제 어떤 백신으로 맞을 건가요.

순서가 돌아오면 맞을 거예요. 어떤 종류의 백신이든 상관없이요.

ⓒ연합뉴스2020년 12월25일 서울광장 임시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다.

본인에겐 2020년이 어떤 해였나요?

첫 번째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요(웃음), 두 번째는 과학자로서 좀 미안했어요. 미리 준비를 잘 할걸 싶어서요. 제가 mRNA 백신 플랫폼을 완벽하게 만들어두었으면 우리나라도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빨리 성공할 수 있었잖아요. 또 하나, 저는 교수라서 월급도 밀리지 않고 코로나19 때문에 약간 이름도 얻었잖아요. 그런데 2020년에 힘들어진 분들이 더 많아요. 이래도 되나 죄송스럽기도 하고 좀 미묘한 감정이었어요.

2021년은 어떤 한 해가 될까요?

여전히 정신없는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1년 독감 유행 시즌 전까지 코로나19 예방접종을 완료하는 게 목표잖아요. 11월쯤 되어야 집단면역이 생길 거예요. 그 이후로도 산발적인 유행이 계속 생기겠지만 2022년이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하게 정비해야 할 것이 있어요. 이 내용은 꼭 기사에 써줬으면 좋겠어요.

뭔가요?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정책을 판단하면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가 있어야 해요. 백신 확보와 관련해서 전문가들은 빨리 사라고 쉽게 말할 수 있죠. 그러나 잘못되었을 때 책임을 지는 건 담당 공무원들이거든요. 백신은 1억, 2억원이 아니라 수천억 원 단위로 돈이 오고 가잖아요. 백신 잘못 샀으니 책임지라고 하면 공무원이 그걸 어떻게 책임져요. 이건 면책을 보장하는 제도를 법으로 마련해줘야 해요. 정치권에서 해야 하는 일이죠. 그래야 정은경 청장 같은 분이 소신껏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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