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가 벽에 X칠까지..美에 쫓긴 11년, 확 늙은 어산지

이민정 입력 2021. 1. 9. 05:01 수정 2021. 1. 9.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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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월드

미국 정부와 폭로 전문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9)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2라운드에 접어들었습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영국 법원이 미 검찰의 범죄인 송환 요구를 거부하면서인데요. 런던 중앙형사법원은 어산지가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같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최근 의료진에게 자살에 대한 생각을 말하는 등 곳곳에서 위험 징후가 발견됐다는 겁니다.

2010년 7월 영국 런던에서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 줄리안 어산지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어산지와 미국 정부와의 악연은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정부 기밀문서 수십만 건을 폭로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그해 4월 미군의 이라크 민간인 사살 영상을 공개하더니, 7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보고서 7만7000여 건, 12월 국무부 외교전문 25만건을 연이어 폭로했습니다.

이 문건에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고, 해외 주둔 미군 철수론도 촉발시켰습니다. 미 검찰은 어산지를 곧바로 1급 수배대상으로 지명했고, 이후 장장 11년간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시작됐습니다.


은둔과 방랑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
어산지는 1971년 호주 북부 퀸즐랜드주 타운스빌에서 태어났습니다. 한 살 때 어머니와 재혼한 양아버지 성을 따라 어산지(Assange)라는 이름을 쓰고 있고요. 그의 조상은 19세기 호주로 건너온 이민자입니다. 모계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호주로 건너왔고, 어산지라는 이름은 중국인 아상(Ah sang)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죠.

어산지의 석방을 요청하는 지지자들. [AP=연합뉴스]


이민자의 피가 흘러서일까요. 어산지는 어린 시절부터 주류 사회 바깥을 맴도는 ‘아웃사이더'의 삶을 즐겼습니다. 유랑극단을 운영하는 부모를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 탓에 정식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았는데 유독 과학에 재능을 보였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방랑은 계속됐습니다. 전화번호와 e메일 주소를 바꾸고 갑자기 사라져 주변 사람들 애태우기 일쑤였다네요. 그는 2010년 6월 미주간지 뉴요커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지배적인 문화에 맞지 않는 민감한 아이였다”고 소개했습니다.


철없는 해커에서 '로빈후드'로
근심 걱정 없이 자란 듯 보이지만 가정환경은 늘 불안정했습니다. 어산지가 8살 되던 해 어머니는 이혼과 재혼을 반복했고, 이교도집단인 새아버지의 괴롭힘을 피해 5년간 숨어지내야 했습니다. 도피생활 중 컴퓨터는 어산지의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프로그래밍을 독학하더니 16세 때 웹사이트를 만들어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5월 어산지가 영국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망명생활 중 언론 인터뷰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자신을 숨겨야만 하는 해킹은 은둔자인 그에게 매력적인 일이었습니다. 멘닥스(Mendax)라는 해킹 아이디로, 해킹 그룹 '국제 파괴분자'까지 만들어 전문 해커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1991년 캐나다의 한 통신회사를 해킹하다 붙잡힌 그는 31건의 해킹 혐의로 재판대에 서게 됩니다.

어산지에게는 16세 때 만나 사랑을 키워온 아내와 아들이 있었는데요. 재판으로 힘들어하던 때 가족마저 곁을 떠나버려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2011년 어산지가 스위스의 한 은행가에게 건네받은 고객 2000명의 탈세 정보가 든 CD를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혼돈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는 개인과 사회, 계층 구조에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정보 전쟁을 위한 폭로 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그는 몇달 간 집에 틀어박혀 폭로사이트 개발에만 몰두합니다. 기발한 생각이 떠오르면 벽이든 문이든 어디에나 메모했고, 잠도 안 자고, 먹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2006년 12월 위키리크스가 탄생했습니다. 모든 제보를 암호화해 제보자를 철저히 감추고, 전 세계 20여 곳에 서버를 둬 한 번 올라온 내용은 절대 지울 수 없게 만들었죠.


천재, 괴짜, 관종, 혁명가…진짜 그의 얼굴은?

망명생활 4년차에 접어든 2016년 2월 어산지가 에콰도르 대사관 발코니 창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AP=연합뉴스]

매사 철두철미한 어산지의 발목을 잡은 건 성범죄 혐의입니다. 스웨덴에서 두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2010년 영국에서 체포되면서인데요. 스웨덴으로의 송환을 피해 숨어들어 간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기약 없는 망명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자신감 있고 담담했던 그였지만, 7년간의 긴 망명생활에 점점 지쳐갔습니다. 9평 남짓한 방에서 고립 생활을 견디며 만성 폐 질환을 앓았고, 불안과 우울함에 시달렸습니다. 정신적 스트레스에 기이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비좁은 방 안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대사관 벽에 대변을 칠하는 행동들로 대사관 측을 경악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2019년 4월 영국 런던 법원으로 이송 중인 어산지. 7년 만에 대사관 밖으로 나온 그는 몰라보게 나이 든 모습으로 충격을 안겼다. [AP=연합뉴스]


폭로 수위도 점차 높아졌습니다. 에콰도르 대통령의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2016년 미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터트리는 등 전방위 폭로전을 펼쳤습니다. 그런 와중에 대사관에서 만난 변호인과 사랑에 빠져 아이 둘도 낳았습니다.

한계에 다다른 에콰도르 대사관이 어산지의 보호를 철회하면서 2019년 2월 망명생활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는 대사관에서 나오자마자 보석조건 위반 혐의로 징역 50주를 선고받고 영국에서 복역 중인데요. 체포 당시 몰라보게 나이든 외모와 횡설수설하는 모습은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어산지는 망명생활 중 대사관에서 만난 변호사 스텔라 모리스(가운데)와의 사이에서 아들 가브리엘(왼쪽)과 막스(오른쪽)을 낳았다. [AP=연합뉴스]


천재 해커, 정의로운 혁명가, 사회성 부족한 괴짜, 인기에 취한 '관종'(관심 종자). 어산지는 지난 11년간 수많은 논란을 낳으며 이런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당장 송환은 피했지만, 미국이 항소하면서 다시 법정 다툼을 하게 됐습니다. 앞선 판결에서 어산지의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뒤집힐 가능성도 있습니다. 보석 신청도 기각됐는데요. 끝까지 기밀유출 죄를 묻겠다며 쫓는 미국과 언론의 자유를 주장하며 도망가는 어산지의 길고 긴 추격전의 결말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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