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불매운동 여전한데, 대일 무역적자 커진 진짜 이유는

임성빈 2021. 1. 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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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통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가 지난해 다시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사진은 지난해 부산 동구 유니클로 범일점 앞에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일본 정부의 사죄·배상 등을 촉구하는 1인 시위 모습. 뉴스1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가 지난해 다시 커졌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은 일본과 무역에서 208억4000만 달러(약 30조6000억원) 적자를 찍었다. 일본 수출 규제 영향으로 2019년 16년 만에 가장 적은 191억61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는데 1년 만에 다시 불었다.

무역적자 200억 달러를 다시 돌파하며 수출 규제와 불매운동이 있기 전인 2018년(240억7500만 달러) 수준에 다가서고 있다. 지난해 일본으로의 수출(전년 대비 -11.8%)은 급감했는데 수입(-3.5%)은 그만큼 줄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일본 제품 불매운동 포스터가 붙은 가게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 매장은 줄줄이 문을 닫는 중이다. 그런데 왜 한국은 1년 전보다 더 큰 적자를 봤을까.


불매운동 시들하다고? ‘노노재팬’ 여전하다

여전한 일본 불매운동.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대표적 품목인 일본 맥주는 이제 사실상 한국 시장에서의 설 자리를 잃었다.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를 보면 2019년 한국은 일본 맥주 3975만6000달러어치를 수입했다. 2020년 수입액은 492만2000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약 10분의 1 수준이다.

일본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서 1만대 이상 판매한 일본 차 브랜드는 없었다. 판매량과 점유율 모두 반 토막이 났다. 이를 버티지 못한 닛산과 인피니티는 지난해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하기도 했다.


코로나19에 한국 주력제품 수출길 막혀

코로나19에 막힌 주력품목 일본 수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가 늘어난 이유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지난해 일본으로부터 사오는 제품보다, 일본으로 파는 제품의 규모가 훨씬 작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일본 경제가 한국 제품을 살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의 대일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8%(1월 1일~12월 25일 기준) 감소했다. 주력제품 수출이 부진했던 영향이 컸다. 석유화학 제품의 일본 수출액은 전년 대비 –25.1%를 기록했고, 철강(-23.3%), 차 부품(-34.9%), 석유제품(-32.5%)도 마이너스를 찍었다. 일본 내 자동차·건설 등 수요가 일부 살아나고 있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한 탓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소부장’

대일 무역적자 상위 품목은 ‘소부장’.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더 큰 문제는 한국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산업에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점이다. 불매운동이 촉발한 이유도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 3종에 적용했던 수출 규제였다.

규제 이후 정부는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대일 무역적자가 가장 큰 품목을 살펴봐도 대부분이 소부장에 해당한다. 일본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가장 많이 보고 있는 품목인 ‘원자로·보일러·기계류와 이들의 부분품’은 지난해 57억6897만 달러 적자로, 1년 사이 적자액이 7억9166만 달러 늘었다.

무역적자가 두 번째로 큰 ‘전기기기와 그 부분품, 녹음기·음성 재생기·텔레비전의 영상과 음성의 기록기·재생기와 이들의 부분·부속품’도 적자를 키워 40억5368만 달러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이밖에 ‘플라스틱과 플라스틱 제품’의 적자도 커졌다.


“일본군 위안부 판결에 경제 보복 다시 할 수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1심 재판에서 8일 승소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소녀상. 연합뉴스

대일 무역적자의 악화는 한국이 소부장 자립의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단계에 아직 진입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전문가는 앞으로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의 일본군 위안부 손해배상 판결 등에 반발해 소부장 수출 규제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을 때, 한국이 이를 기회로 삼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수출 규제 이전부터 한국은 핵심 소부장에 대해 국내 생산이나 대체품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일본 기업의 경쟁력에 밀려 계속 의존도를 키워올 수밖에 없었다”며 “이번 일본군 위안부 판결 등으로 일본이 수출 제한 조치를 시행한다면 한국은 이를 명분으로 소부장 육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이어 “수출 규제를 한 번 겪어봤으니 앞으로는 어떤 품목이 취약한지를 사전에 파악해 국내 기업과 함께 대비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임성빈 기자 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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