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미국 의사당 폭동과 홍콩 시위를 동일시하는 중국

김지성 기자 2021. 1. 9.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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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명이 숨진 미국 시위대의 의사당 난입 사태에 대해 중국 매체들도 연일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중국 매체 중에서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 등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매체들은 미국의 이른바 '이중 잣대'를 잇따라 비난하고 나섰습니다.

● 중국 관영 매체 "미국 의사당 폭동은 '업보'"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인용하며 미국 의사당 폭동은 '업보'라고 보도했습니다. 미국이 과거 홍콩 시위를 지지한 데 따른 '업보'라는 것입니다.

1월 7일자 글로벌타임스 기사. '중국 네티즌들은 미국 의사당에서의 폭동을 업보라고 조롱하며, 민주주의와 자유의 환상이 깨졌다고 말한다'는 제목이 달려 있다.

이런 기사들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대목은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언급했던 "아름다운 광경"이라는 표현입니다. 앞서 펠로시 하원의장은 지난 2019년 홍콩에서 범죄인 송환법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글로벌타임스는 "(송환법 반대 시위 때도) 홍콩 시위대가 입법회 건물을 습격했다"면서 "이제 이 '아름다운 광경'이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비꼬았습니다. 이 매체는 네티즌이 올린, 미국 시위대가 펠로시 하원의장의 사무실을 점거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게재하며 "펠로시는 사무실 책상에서도 '아름다운 광경'을 즐길 수 있다"고 했습니다.

중국 네티즌이 올린 2019년 홍콩시위(위)와 올해 미국 시위(아래) 비교 사진.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2019년 언급한 '아름다운 광경'이라는 표현이 적혀 있다 (사진 출처=글로벌타임스)

후시진 환구시보 총편집인은 칼럼을 통해 "그녀(펠로시 하원의장)가 미국 의사당 사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묘사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도 중국 네티즌들의 조롱 거리가 됐습니다. 폼페이오 장관이 홍콩 시위 때는 "홍콩 시민들을 지지한다"고 했다가 이번 미국 시위 때는 "무법과 폭동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중 잣대'를 들이댔다는 것입니다.

글로벌타임스는 이어 "미국 정치인들은 오랫동안 다른 나라의 폭도들을 '자유 투사'로 불러왔다"며 "이제 마침내 보복을 받게 됐다"고까지 했습니다.

중국 네티즌이 올린 홍콩 시위(위)와 미국 시위(아래) 사진.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발언을 비교해 놓았다 (사진 출처=글로벌타임스)

● 중국 외교부 "홍콩 시위대는 '영웅', 미국 시위대는 '폭도'?"

중국 관영 매체뿐만 아닙니다. 중국 외교부까지 나서 미국의 '이중 잣대'를 꼬집었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7일 정례 브리핑에서 "2019년 홍콩 시위대가 입법회 시설을 마구 훼손하고 경찰을 공격했지만 홍콩 경찰은 고도의 자제력을 보여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당시 미국의 관리와 의원, 언론은 홍콩에 대해 어떤 단어를 사용했는가", "지금 그들은 미국에 대해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했습니다. 홍콩 시위대에 대해선 '아름다운 광경', '민주 영웅'으로 미화하고, 미국 시위대에 대해선 '폭도', '극단분자', '악당'으로 규탄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

화춘잉 대변인은 8일에도 작심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화 대변인은 "왜 미국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홍콩은 받아들여야 하느냐", "왜 미국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자유'가 홍콩에서 허용돼야 하느냐"고 기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미국에서 폭력 시위를 규탄하는 만큼 홍콩에서도 폭력 시위를 허용돼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습니다.

화 대변인은 "'민주·자유'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한다"고도했습니다.

● '미국 시위 vs 홍콩 시위' 목적·전개 양상 따져야

하지만 미국 시위와 홍콩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할 뿐 시위가 일어난 근본 원인을 비교한 중국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중국 매체와 외교부가 문제 삼는 2019년 홍콩 시위는 2014년 이른바 '우산 혁명'에서 시작된 홍콩 민주화 시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시위대는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범죄인 중국 송환 반대 등을 요구했습니다. 한마디로 중국과 다른 홍콩의 체제를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평화적인 시위를 이어가다 일부 시위대가 폭력적인 양상을 보이면서 중국과 홍콩 당국에 탄압의 빌미를 줬습니다.

반면 이번 미국 시위는 처음부터 폭력적인 양상으로 전개됐습니다. 시위 목적도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진행된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자는 민주주의를 위한 시위였고, 후자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시위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시위 목적과 전개 양상을 따지지 않고 일부 현상만으로 동일시한다면 한쪽이 억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관련해, 화춘잉 대변인은 "홍콩 시위는 외부 세력이 선동한 것"이라며 "홍콩과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서양 지상주의 우월감과 이데올로기 편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면서 서방 세계와의 체제 차이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홍콩 시위가 외부 세력의 선동으로 발생했다는 데 동의하는 외국인은 드뭅니다. 중국 체제에 대한 외국인들의 이해가 부족하다면, 이에 대한 중국의 설득이 우선해야 할 것입니다.

중국 매체와 외교부가 미국의 '이중 잣대'를 비난한 것은 이번 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확산했을 때, 미국 당국이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했을 때에도 중국 매체와 외교부는 홍콩 시위와 비교했습니다. 그때 시위는 '인종차별 반대', '인권', '생명'이라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위한 시위였다는 점에서 홍콩 시위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홍콩 시위를 옹호하면서 당시 미국 시위를 비난한 미국 당국의 이중 잣대를 꼬집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친트럼프 지지자들의 미국 의사당 난입 사태를 홍콩 시위와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지나쳐 보입니다.    

김지성 기자jisu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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