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생각보다 밝네요" 미혼모 가슴 후벼판 이말, 사양합니다

박건 입력 2021. 1. 10. 05:01 수정 2021. 1. 10.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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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 2021 신(新) 가족의 탄생
<1회> 미혼부, 미혼모, 딩크족의 새해소원
미혼부 김지환씨와 딸 사랑이. 본인 제공

출산율이 떨어지고 결혼은 줄어든다는 뉴스가 쏟아지던 지난해 11월, 한 생명의 탄생이 한국 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42)가 결혼하지 않은 채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했다는 소식이었다.

"아이는 낳고 싶었지만,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사유리의 발언은 '결혼을 해야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사회 통념을 흔들었다. 동시에 혼인 관계의 부모,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적인 가족', '진짜 가족'으로 여기는 풍토에 의문을 제기했다.

방송인 사유리가 지난해 11월 출산 소식을 알리면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 인스타그램 캡처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
현행법은 '가족'을 이렇게 정의한다. 하지만 이런 가족은 줄고 있다. 지난해 혼인과 출산 모두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태어난 아이의 울음소리가 부음보다 적게 들렸다. 전체 세대에서 1인 가구의 비율은 역대 최대(39.2%)로 나타났고, 1인 세대와 2인 세대를 합친 비율(62.6%)이 3인 세대(17.4%), 4인 이상 세대(20.0%)를 압도했다.

이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사람이 줄자 한 편에선 '가족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반면 '비혼맘'을 결심한 사유리처럼, 법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꾸리고 살아가는 이들도 늘고 있다.

새해를 맞아 중앙일보 밀실팀은 출산과 결혼이라는 경계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이룬 아홉 가족의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첫 회에선 미혼부, 미혼모, 자녀를 두지 않는 부부의 새해 소망을 들었다.


딸바보 미혼부의 소망…"출생신고 어려움 사라졌으면"

미혼부 김지환씨와 딸 사랑이. 본인 제공

"사랑이는 엄마 아빠가 주말에 애 좀 보라고 서로 떠넘기는 모습을 안 봐도 되니까 좋죠. 또 아이를 향한 미안함이 늘 제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한 번이라도 더 사랑이를 돌아보게 되고요."
여덟 살 사랑이 아빠 김지환(44)씨는 천진하게 웃었습니다. 그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부입니다. 엄마는 7년 전 태어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딸을 두고 떠났습니다. 김씨는 여행사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태우는 운전기사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갔죠. 아이가 아플 때 제일 힘들었습니다. 돌봐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결근할 때도 잦았습니다.

육아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는 따로 있었죠. 바로 사랑이의 출생신고였습니다. 아이 엄마가 동의하지 않으면 아빠 혼자 출생신고하기 어려운 법 때문에 사랑이는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김씨가 한국미혼부가정지원협회 '아빠의품'을 설립한 계기입니다.

김지환씨 핸드폰으로 사랑이를 찍은 동영상을 보고 있다. 본인 제공

현행법상 결혼하지 않은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의 출생신고는 엄마가 하는 게 원칙입니다. 김씨는 2015년 "사랑이의 출생신고를 하게 해달라"며 1인 시위에 나섰습니다. 사연이 알려지면서 미혼부가 엄마의 인적사항을 모를 경우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사랑이법'이 시행됐죠.

하지만 여전히 출생신고를 못 하는 미혼부들이 많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성명·등록기준지·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만 허용한다는 법 조항 때문이죠.

그래서 김씨는 "지금보다 더 구체적으로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새해 소망을 묻자 그는 "도움이 필요한 미혼부가 없어져서 '아빠의품'이라는 단체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미혼모 정수진씨와 딸 아정이. 본인 제공

미혼부, 미혼모 가정을 더욱 힘들게 하는 건 주변의 편견, 따가운 시선입니다. 열한 살 아정이와 같이 사는 미혼모 정수진(40)씨는 매년 학기 초 아이의 담임 교사로부터 비슷한 말을 듣습니다.

"아이가 '생각보다' 아주 밝아요." 그럴 때면 정씨는 한숨이 나옵니다. 교사들조차 '미혼모의 딸에겐 당연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죠.

그는 10년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배에 붕대를 감고 편의점 아르바이트하며 번 돈으로 버티면서 아정이를 낳았습니다. 보름 후 입양 시설에 맡겼지만, 딸의 모습이 아른거려 하루 만에 다시 데려왔죠.

정수진씨와 아정이. 본인 제공

엄마와 떨어질 뻔했던 아정이는 이젠 엄마 곁을 지키는 '껌딱지'가 됐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빠가 곁에 없었기 때문에 빈자리를 느낄 틈도 없었죠. 늘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지내는 모녀에겐 '아빠'라는 존재가 상상만으로도 불편할 뿐입니다.

정씨에겐 '아빠가 없어 안됐다'란 시선이 오히려 불편합니다. 그는 "내 아이를 키우는 게 비난받을 선택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몸을 함부로 굴렸다'며 미혼모를 욕한다. 우리 사회가 미혼모와 미혼부의 양육을 당연한 선택으로 여겼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애 못 낳는 거 아냐?" 딩크족 진짜 외롭게 하는 말

무자녀 가정 최지은씨와 남편. 본인 제공

요즘엔 '아이 없는 삶'에서 행복을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특히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뜻하는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이 늘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5~49세 기혼 여성 중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답변한 비율은 23%(2015년)에서 28.9%(2018년)로 증가했습니다.

결혼 7년차 최지은(41)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대중문화 웹진 기자로 일하며 만난 남편과 3년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아이는 언제 가질 생각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움츠렸던 최씨 부부는 최근 자녀 없이 둘이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최씨는 "몇 년 전만 해도 아이 없이 사는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 둘이 즐겁게 지내다 보니 지금 가족의 형태를 바꿀 정도로 아이를 원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밀실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최지은씨. 백경민

최씨 부부를 괴롭힌 건 '아이 없는 삶'이 아니라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이라고 합니다. 최씨는 경험담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눴습니다. "아이를 못 낳으면서 안 낳는 척하지 말라"는 식으로 멋대로 추측하는 '궁예형', "너희 같은 사람들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애국형', "너희 삶을 존중하지만 어디 가서 이런 얘기 하고 다니지 말라"는 '위선형'…

지난해 최씨는 자신처럼 비출산을 결심한 여성들의 사례를 묶어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란 책을 출간했습니다. 그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력적인 시선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많다.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다면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양한 가족 품는 인식·제도 변화 절실"

가족. pixabay

전문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한층 늘어날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래서 가족에 대한 인식·제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죠. 사회의 시선, 주변의 반응은 이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정정엽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아이는 주변의 반응을 보면서 자기가 어떤 존재인지 인식한다. 주위 어른들이 다양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를 편견 없이 대해야 그들의 정서가 안정적으로 발달한다"고 했습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의 변화상에 맞춰 정책 영역부터 혼인·혈연 등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정 교수는 "정부가 최근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서 기존의 '출산장려' 대신 '성평등'이나 '삶의 질'을 내세운 건 긍정적인 변화"라며 "이제 새로운 계획을 어떻게 구체화할지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건·최연수·윤상언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이시은·이진영·조예진 인턴, 백경민

「 밀실은 '중앙일보 밀레니얼 실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밀도있는 밀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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