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점유율 1%..일본차 추락 노재팬 탓? 이유는 따로 있었다

김영주 입력 2021. 1. 10. 08:01 수정 2021. 1. 1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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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의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 Q50. 닛산은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사진 한국닛산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지난 한 해 일본 차의 점유율이 1%로 내려앉았다. 한국에서 팔린 신차 100대 중 일본 차는 한 대뿐이라는 뜻이다. 2019년 불어닥친 일본 제품 불매운동(노재팬)에 기인한 탓이 크지만, 전문가들은 "전체적으로 일본 차의 매력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또 일본 내부에서도 "혁신성과 과감한 투자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와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 등의 수입차 판매 실적에 따르면 일본 차 5개 브랜드(렉서스·도요타·혼다·닛산·인피니티)는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2만500여 대를 팔았다. 지난해 팔린 수입 차(27~28만대) 중에는 약 7.5%를 차지했고, 국내 내수 판매 전체(189만~190만대)로 따지면 1.1%에 불과하다.


日, 수입차 점유율 35%→7%로 급감
수입 차 중 일본 브랜드 비중이 10% 이하로 내려간 건 KAIDA가 실적을 집계한 2001년 이후 처음이다. 렉서스로 한국 시장에 발을 들인 일본 차는 2008년 수입차 시장의 35.5%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후 수입 브랜드가 늘어나며 비중이 줄긴 했지만, 20016년 첫 3만대 판매를 달성한 후 이듬해 4만5253대로 정점을 찍었다. 또 2019년 노재팬에도 불구하고 3만6661대를 팔았다.

수입차 중 일본차 비중.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자동차 내수 판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역대 최대인 190만여대를 기록했다. 현대·기아차는 판매량이 2019년보다 6.2% 증가했으며, 메르세데스-벤츠는 2년 연속 7만대 규모를 유지했다. 또 BMW는 32.1% 늘었고, 디젤게이트 이후 물량을 대폭 늘린 아우디·폭스바겐은 2019년보다 2배 이상 뛰었다. 코로나19 여파에도 주요 완성차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서 성장을 구가했지만 일본 차만 뒷걸음 친 셈이다.


한국 소비자 외면한 '갈라파고스' 디자인

도요타의 고급 브랜드 렉서스 ES. 사진 한국토요타


자동차업계에선 일본 차의 부진이 한·일 무역분쟁으로 촉발된 한국 소비자의 노재팬 감정 때문만은 아니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국 소비자가 차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디자인과 편의성, 혁신성 등 거의 모든 판매 조건에서 일본 차가 경쟁력이 잃고 있다는 것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제네시스 등 국산 차 품질이 올라오면서 굳이 가격을 더 주고 렉서스를 살 이유가 없어졌다"며 "디자인도 '갈라파고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국 소비자의 눈높이와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갈라파고스'는 일본차가 자국 소비자만 공감하는 디자인을 채택한다는 의미다.

차를 사회적 지위와 연결하는 성향이 짙어진 것도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국 소비자에게 차는 단순한 소비재 이상이다. 그런 면에서 독일 고급 브랜드 등 유럽 차는 과시하기 좋은 차"라며 "반면 일본 차는 실용성이 좋은 차로 인정받았는데, 최근 유럽 차 가격이 내려가자 일본 차가 경쟁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국산 차는 그랜저(14만5463대), 수입차는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3만3642대)였다. 특히 6300만원 가격대의 E250은 지난해 1만321대가 팔려 렉서스 전체 판매 대수(6948대)를 껑충 뛰어넘었다.


"혁신 추진 위한 투자 부족했다"
한국 시장에서 일본 차의 부진은 유니클로·무인양품 등 일본 소비재 브랜드와 비교해서도 두드러진다. 유니클로를 소유한 에프알엘코리아는 노재팬 이후 매출이 급감하긴 했지만, '히트텍' 등 비교 우위 제품을 앞세워 연간 6000억원(2019년 9월~2020년 8월) 이상을 기록했다.

김인호 비즈니스인사이트 부회장은 "일본의 패스트 리테일 등은 혁신을 바탕으로 경쟁 브랜드가 따라올 수 없는 기능성을 앞세운다. 반면 일본 차는 그런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10여 년 전 일본의 젊은이들은 '더는 차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 세대다. 그런 것 때문에 완성차업체도 혁신·개발에 대한 노력을 덜 했다"며 "최근 전기·수소차 경쟁에서도 테슬라·현대차에 밀리고 있는 게 이를 방증한다"고 덧붙였다.

혁신을 위한 동력을 잃었다는 목소리는 일본 완성차업체 내부에서도 나온다. 올해 유럽 시장에서 철수하는 미쓰비시의 한 임원은 최근 한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혁신을 추진하기 위한 충분한 판매가 뒷받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요타 프리우스. 한국토요타


중고차 시장에서도 일본 차의 존재감은 줄었다. 엔카닷컴에 따르면 지난해 렉서스의 인기 모델 ES 매물은 3497대로 2019년(3032대)보다 15.3% 늘었다. 또 지난해 도요타 프리우스(1314대)와 캠리(1659대) 매물도 2019년보다 각각 5%, 6.6% 늘었다. 엔카닷컴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일본 차의 입지가 줄어들며 매물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본 친숙도' 떨어진 점도 요인

일본차 판매와 방일 한국인 규모.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 시장에서 일본 차의 성쇠를 나타내는 흥미로운 데이터도 있다. 일본을 찾는 한국 여행객이 늘어날 때 일본 차에 대한 소비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점이다. 일본 차가 시장 점유율에서 최저를 기록한 지난해 방일 한국인 규모는 50만명(추정치) 안팎으로 직전 연도의 10분의 1 수준이다. 일본 차가 한국에서 1만대 이상 팔린 2006년은 방일 한국인 여행객이 200만명을 돌파한 때다. 또 방일 여행객이 500만명을 넘긴 2016년 일본 차 판매는 3만대 이상을 기록했고, 역대 최다 판매를 기록한 2018년은 방일 여행객이 753만대로 정점을 찍었다.

일본차의 경쟁력 하락 외에 '일본 친숙도'가 크게 떨어진 게 차 판매에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다. 이연택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한·일 간 교류가 멀어지며 수요·공급 이외 환경적 요인이 제품 수요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또 향후 "친숙도를 반영하는 관광 교류가 하나의 선행조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일 간 교류가 늘면, 일본 차 등 일본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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