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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차 교사가 '척 보면 다 안다'를 경계하는 이유

정혜영 입력 2021. 01. 10.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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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믿고 기대하는 대로 달라진다

[정혜영 기자]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엄마도 애들 척 보면 다 알아?"

초등학교 6학년 아들 녀석이 묻는다.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화상 수업에서 담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란다. 선생님이 '니들 척 보면 다 안다' 고 하셨단다. 아직까지 선생님의 말씀을 진리로 알고 있는, 학령에 걸맞지 않게 순수(?)한 아들 녀석은, 이런 선생님의 말씀이 무서운가 보다. 선생님이 자기 속을 척 보고 다 아시면 어쩌나, 하고.

척 보면 다 안다?

학교에 들어온 지 햇수로 20년째, 그전에 학생들을 만난 시기까지 합하면 20년도 넘으니, 이제 척 보면 알 때도 되긴 했다. 모 TV 프로그램에서는 10년이면 달인이 되어 따라가기 힘든 기량을 발휘하던데, 그렇게 본다면, 20년은 아이들을 척 보면 딱, 하고 답이 나올 만한 세월이다.

그런데 실상 그렇지가 않다. 매년 아이들을 만나고 3월부터 학년이 끝날 때까지 일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학교 생활이 이어지기 때문에 과정은 익숙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익숙하지가 않다. 당연히 익숙할 수가 없다. 한 인간의 존재가 소우주라는데 우주처럼 광활한 존재를 내가 어찌 다 알 수 있단 말인가.

3월 첫날 4시간 정도 만나보면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일 것 같다, 는 그림이 그려진다. 대체로 눈에 뜨이는 아이들이 더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은 물론이다. 거기에 전 학년도 아이를 이미 겪은 선생님의 귀띔이 있다면 아이에 대한 첫인상은 확증편향이 된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는 아이의 넓은 우주와 만나기 어렵다.

피그말리온. 알다시피 이 말은 무언가에 대한 사람의 믿음이나 기대, 예측에 따라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을 말한다. 그리스 신화 속의 인물인 피그말리온에서 유래된 이 말은, 자신이 조각한 여성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그를 가엾이 여겨,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그의 소원대로 조각상을 진짜 인간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대로라면 어떤 아이더라도 아이를 둘러싼 세계가 그 아이를 바라보는 대로, 믿음대로 자라나게 할 것이다.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나쁜 아이는 어른이 만든 것이다. 아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아이의 나쁜 점을 바라보는 '나쁜' 어른만이 있는 것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미운 마음이 드는 아이도 더러 있다. 그땐 묻는다. 그 '아이'가 미운 건지, 그 아이의 '행동'이 미운 건지. 당연히 그 아이의 '행동'이 미운 것이다. 사람은 바꿀 수 없지만, 행동은 바뀔 수 있다. 미운 마음이 드는 행동은 어떤 원인에 대한 결과이다. 원인이 무엇인지 안다면, 결과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아이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다른 사람이 귀띔한 선입견이 끼어든 것은 아닌지. 원인을 보지 않고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행동'에 눈이 가려 '아이'를 못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을 만나 온 지 20년이 넘었지만, 척 보면 아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를 일깨운다. 네가 보는 게 전부가 아니라고. 여태 그래 왔지 않았느냐고.

학년 말이라 아이들 성적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아이들 통지표 항목 중 꽃은 통지표 맨 끝에 위치하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다. 아이와 함께 한 일 년을 돌아보며 이 아이의 성격, 습관, 교우 관계 등 학교 생활에서 보아온 면면을 떠올린다.아이가 가진 좋은 점들을 모두 끌어모아 그 란에 꼭꼭 심는다.

성격이 급한 아이는 적극적인 아이로, 수업 중에 유난히 다른 친구에게 관심이 많고 산만한 아이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로, 오래 앉아 있는 것을 잘 못 견뎌하는 아이는 움직임 욕구가 왕성한 활동적인 아이로, '둔갑'시킨다. 믿고 기대하는 대로 아이는 달라질 테니까.

둔갑한다고 썼지만, 실은 아이들의 본모습이 그런 것이다. 동전의 양면에서 어느 쪽을 볼 것인지는 바라보는 이의 선택이다. 어느 쪽을 볼 때 아이와 내가 둘 다 행복할 것인지, 답은 이미 나와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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