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CCTV 1100개 뚫고… 카지노 비밀금고 145억과 함께 사라진 여인

제주/오재용 기자 2021. 1. 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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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블랙박스] 영화 ‘오션스 일레븐’ 뺨치는 제주 카지노 현금도난 미스터리

지난 4일 제주 신화월드 랜딩카지노의 비밀 금고에 보관 중이던 현금 145억원이 사라졌다. 5만원짜리 빳빳한 신권(新券) 29만1200장이었다. 5만원권 지폐 1장 무게는 0.97g. 돈을 묶는 띠지까지 포함하면 총 290kg에 달하는 양이다. 일반적인 007 서류 가방으로는 48개, 20㎏들이 사과 상자라면 15개 분량이다.

이 많은 현금이 어떻게 감쪽같이 사라졌을까. 카지노 내부 게임 테이블 등 객장과 복도, 입구에는 고성능 감시 카메라(CCTV) 1100여 대가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설치돼 있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CCTV가 아니다. 카지노 특성상 불법 도박을 막기 위해 게임에 참가하는 직원이나 고객의 손끝 하나까지 감시할 수 있도록 중앙관제센터에서 특정 부분을 확대해 모니터할 수 있는 고성능 카메라였다. 이 감시망을 뚫고 누군가 현금 145억원을 들고 나간 것이다.

서귀포시 신화월드 내 란딩카지노/란딩카지노 제공

사라진 현금 145억원, 무게만 290㎏

신화월드는 중국 란딩(藍鼎)그룹이 1조7000억원을 투자해 서귀포시에 건설한 복합 리조트다. 랜딩카지노는 신화월드 안에 있는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국내에서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카지노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이곳에서 현금과 함께 사라진 것이 또 있다. 랜딩카지노 모(母)기업인 홍콩 란딩인터내셔널에서 파견한 말레이시아 국적의 여성 자금 관리인 A씨(55)였다. 란딩인터내셔널은 중국 안후이성 부동산 개발 회사 란딩그룹의 한국 내 투자를 담당하는 기업이다. A씨는 지난 연말 휴가를 떠난 이후 연락을 끊고 복귀하지 않았다. A씨가 복귀하지 않자 랜딩카지노를 운영하는 국내 법인 람정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감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지난 4일 저녁 금고에 보관 중이던 현금 145억6000만원이 사라진 사실을 확인했다.

/일러스트=박상훈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사라진 현금 145억원은 카지노 객장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설치된 별도의 비밀 사무실에 보관돼 있었다. 카지노 게임에 사용하는 칩과 현금 등을 보관하는 랜딩카지노 환전소의 공식 금고가 아니다. 거액이 빼돌려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카지노 관계자에 따르면 ‘물품 보관소’라고 불리는 이 공간은 50여㎡(약 15평) 크기로,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금고 수십 개가 벽면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이곳 비밀 물품 보관소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카지노 안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며 “출입이 가능한 사람도 A씨를 포함해 극소수뿐”이라고 전했다.

비밀 금고에 보관된 300억원의 성격

비밀 물품 보관소에 있던 수백억원대 자금의 성격도 의문이다. 카지노 업계에선 상대적으로 거금이 오갈 수 있는 외국인 카지노이기는 하지만 수백억원 규모의 현금을 보관하는 일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고객을 더 많이 유치하려 많은 현금을 쌓아놓고 보여주는 ‘쇼 이벤트’를 위해 상당한 현금을 보관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수백억원대 거액을 현금으로 보관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홍콩 란딩인터내셔널은 2018년 3월 랜딩카지노 개장 당시 국내 한 은행에서 5만원짜리 신권으로 300억원을 찾아 물품 보관소에 보관해왔다고 한다. 란딩인터내셔널이 투자금 명목으로 한국에 들여온 돈이었다. 람정엔터테인먼트코리아는 “사라진 145억6000만원은 회사 운영과 무관한 자금으로, 홍콩 란딩인터내셔널이 람정엔터테인먼트에 맡겨놓은 돈”이라며 “카지노 운영이나 재정에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홍콩 본사가 300억원을 무슨 용도로 왜 맡겼는지, 300억원이 전부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현금 관리인 55세 여성의 정체

랜딩카지노 주변에서는 이번 사건이 란딩그룹 양 회장이 중국 공안에 체포됐던 일과 연관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랜딩카지노는 2018년 개장 4개월 만에 매출 3694억원을 올렸다. 제주도 내 카지노 8개가 2017년 한 해 동안 올린 매출을 전부 합친 금액(1365억원)의 3배에 육박한 대성공이었다. 주 고객은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하지만 양 회장이 2018년 8월 캄보디아 공항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서 큰 위기를 맞았다. 당시 외신들은 “양 회장 실종이 중국 최대 자산관리공사인 화룽(華融)그룹 라이샤오민(賴小民) 전 회장 부패 스캔들과 관련이 있다”고 보도했다. 라이 전 회장은 최근 부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랜딩카지노에서 무슨 일이?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은 양 회장은 3개월 뒤 홍콩 란딩인터내셔널 이사회 의장에 복귀했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대외 활동은 급속히 줄었고 신화월드와 랜딩카지노 운영에도 거리를 두었다고 한다. 신화월드와 랜딩카지노에는 중국 ‘큰손’들이 당국의 눈치를 보며 발길을 뚝 끊었고, 카지노에 맡겨두었던 돈까지 되찾아가면서 카지노 한 달 매출이 한때 마이너스 30억원까지 추락하기도 했다.

A씨는 란딩그룹 양즈후이(仰智慧) 회장과도 밀접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랜딩카지노 관계자는 “A씨는 임원급 인사로 2018년 3월 카지노가 개장할 때부터 파견돼 근무해 왔다”고 말했다. 카지노 관계자들은 A씨를 양 회장이 직접 파견한 인물로 알고 있다. A씨는 랜딩카지노에서 근무했지만 홍콩 본사와 주로 소통했고, 국내 다른 임직원들과 접촉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이 A씨 개인 범죄가 아니라 배후에 더 복잡한 사정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라진 145억 현금, 이미 외국으로?

경찰은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있다. 그러나 A씨가 성인 몸무게의 4~5배에 달하는 현금 뭉치를 들고 어떻게 카지노 감시망을 뚫고 나갔는지 아직 풀지 못하고 있다. 비밀 금고가 들어 있던 물품 보관소 주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CCTV) 영상을 분석한 결과, A씨가 최근 한 달간 한꺼번에 돈을 빼돌린 장면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지노 관계자는 “감시 카메라 영상은 한 달간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했다. 포렌식 조사 등을 통해 한 달 이전 녹화됐다가 삭제된 영상을 복원하면 A씨 행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50대 여성이 혼자서 보안 카메라와 다른 직원을 피해 290kg의 돈뭉치를 한 번에 옮겼을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 A씨가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돈을 빼돌렸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또 공범이 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빼돌린 현금의 행방도 의문이다. 현금을 환전하거나 해외로 송금했다면 사전에 포착됐을 가능성이 크다. 금융실명제로 고액을 일시에 환전하거나 송금할 땐 국내 금융 당국이 이를 즉각 알아채기 때문이다. 경찰은 A씨가 이미 출국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가 출국하면서 현금을 갖고 나갔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290㎏의 현금 뭉치가 출입국 보안 검색을 통과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사라진 현금이 아직 제주도 내 모처에 보관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한다. 경찰은 A씨에 대해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에 ‘적색 수배’를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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