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겨레

"겨울밤, 화장실 가기 겁나"..기후민감계층의 집은 어디인가

김민제 입력 2021. 01. 11. 05:06 수정 2021. 01. 11. 15:36

기사 도구 모음

음성 기사 옵션 조절 레이어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기후위기와 인권]기후위기와 인권 ②
① 비바람 센 날엔 교회로 피난 떠난다
경기도 외곽 판잣집 사는 박영미씨
② "추운 겨울밤 화장실 가기도 겁나요"
비닐하우스 숙소 이주노동자 케시

집보다 부동산의 의미가 큰 시대다. 하지만 혹한, 폭염, 태풍 등 이상기후가 심해지면 추위와 열기, 비바람을 피하는 집의 본래 기능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안전한 집이 없는 이들부터 집어삼킬 것이다.

<한겨레>는 움막, 비닐하우스, 쪽방, 해안가 저지대 마을주민 등 기후난민이 될 위기에 놓인 기후민감계층(취약계층)을 만났다. 기후위기는 빈곤한 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지만, 반대로 빈곤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기도 한다.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0%가 사람이 머무는 건물에서 나온다. 노후한 집을 바꿔가는 것은 취약계층에게 내미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이자 기후위기 대응의 시작이다.

지난달 16일 경기도 외곽 공장단지 인근의 가정집을 열화상 카메라로 찍어보았다. 단열재가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외풍이 심하다. 안방으로 통하는 문에서는 단열이 되지 않아 방안의 열기가 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고 있다. 문 밖 찬장의 온도는 영하 4.8도, 방문의 최대온도는 13.2도를 가리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기도 외곽 공장단지 근처에 사는 박영미(69·가명)씨 집은 이웃들에게 ‘고양이집’으로 불린다. 함석과 스티로폼, 시멘트, 벽돌, 비닐을 얼기설기 덧대 만든 작은 집은 꼭 고양이가 드나드는 움막처럼 보인다. 임시거처 같지만 박씨와 남편 이영식(77·가명)씨는 이곳에서 30년을 지냈다. 유치원 다닐 때부터 이 집에 살았던 손녀가 어느새 고등학교 졸업반이 됐다.

30년을 함께했지만 집은 추위로부터 가족들을 지켜준 적이 없다. 아침 최저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진 지난해 12월9일, 박씨는 실내에서도 점퍼와 패딩을 겹쳐 입고 있었다. “옛날 집이라 항상 추워요. 웃풍도 세고.” 옷깃을 여미며 박씨가 말했다.

일주일 뒤인 12월16일 경기북부 지역에 한파경보가 발효됐다. <한겨레>가 열화상 카메라로 이 집의 온도를 측정했을 때 방바닥 온도 21.4도, 벽면 온도 9.2도, 이불 온도 5.5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연탄보일러와 전기난로는 싸늘하게 식어 있는 집 안을 데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다채롭던 한국의 사계절은 어느새 여름과 겨울의 힘이 커지며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있다. ‘봄, 여어어름, 가을, 겨어어울’로 바뀐 셈이다. 길어지고 혹독해지는 이상기후는 박씨 같은 이들을 가장 먼저 덮친다.

한국 2천만가구 중 37만가구는 집이 아닌 곳에서 산다. 2018년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결과다. 고시원·고시텔에 15만1천, 일터 기숙사 또는 노래방·피시방 등 다중이용업소에 14만4천, 숙박업소 객실에 3만, 판잣집·비닐하우스에 6600여가구가 산다. ‘안전가옥’이 없다는 것은 늘어난 한파와 폭염, 강도 높은 태풍 등 극한의 기상현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보금자리가 없다는 의미다.

기후변화로 인한 질병을 연구해온 채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미래질병연구센터장은 “한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기후변화 현상이 자신에게 어떤 위협을 가하는지 낮게 인식하고 있다. 특히 일상이 재난인 이들일수록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사치로 느껴서 적극 대응하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지난달 9일 오후 경기도 외곽 공장단지 인근의 한 움막. 박영미(69·가명)씨 부부가 20여년 동안 단열과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은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연탄을 때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 점점 사나워지는 날씨, 기후피난을 떠난다

기후변화는 보통 지구 평균기온이 올라가는 지구온난화를 의미한다. 문제는 지구온난화가 극심한 한파도 몰고 온다는 것이다. 온난화로 극지방 온도가 오르면 한반도로 출렁이는 북극진동(찬 공기 소용돌이가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 변동성을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적도와의 열에너지 격차가 줄어 대기정체 현상이 늘어난다. 여름 폭염뿐 아니라 겨울 한파의 강도는 세지고 기간도 늘어난다.

경기도 외곽 판잣집에 사는 박영미씨 가정은 여전히 연탄 난방을 하는 국내 15만여가구 중 한 집이다. 연탄을 때면 밤에 여러번 깨야 한다. 덧대고 덧댄 판잣집이라 수시로 환기를 해줘야 한다. 환기를 하면 집 안 온도가 빠르게 떨어진다. 연탄은 화력이 약하다. 냉기로부터 헤어날 수 없는 악순환이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박씨 부부에게 겨울은 난방비 부담으로 더욱 힘든 계절이다. 한 장에 750원 하는 연탄을 하루 12~15장씩, 한달에 많으면 400장 이상 쓴다. 정부가 연간 47만원가량의 연탄쿠폰을 주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해주는 연탄이 있다. 비용 부담은 덜 수 있지만 공짜 연탄은 질이 나빠 사서 쓸 때가 많다. 연탄값은 오르고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탓에 난방비를 내는 게 갈수록 버겁다. 전기난로를 더 들여놓고 싶지만 전기요금이 걱정이다. 전기난로, 지하수를 퍼올리는 전기모터 전기요금으로 월 8만원을 낸다. 그래도 박씨는 새해가 되면 “수험생활을 시작하는 손녀가 공부 잘 할 수 있도록” 난로를 하나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양이집은 박씨 가족의 소소한 행복을 품고 있었지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둥지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눈이 많이 쌓이면 지붕이 무너질까, 비바람이 불면 지붕이 날아갈까봐 걱정된다.

가족들은 매년 수시로 집을 탈출했다. “일기예보에서 비바람이 세게 분다고 하면”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의 교회로 대피한다. “살고 보자 하고 나가는 거죠. 피난 가서 하루 저녁 자고 잔잔해지면 돌아와요. 다음날 돌아와 지붕 무사히 붙어 있나 보는 거예요.” 그나마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해야 했던 2020년에는 피난처도 문을 닫았다. 비바람이 불어도 꼼짝없이 집에서 견뎌야 했다.

지난달 9일 오후 경기도 외곽 공장단지 인근의 움막의 외관.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9년째 겨울철 에너지빈곤층 실태조사를 하고 있는 에너지시민연대는 지난해 11~12월 서울·부산·광주·대구·목포의 에너지빈곤 300가구를 대상으로 비대면 유선조사를 했다. 노인 가구가 247가구(82.3%)로 절대다수를 차지했다.

조사 대상의 절반 가까운 132가구(44%)가 한파로 인해 건강 이상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증상은 감기(29%), 신경통(22%), 관절염(18%), 두통(13%) 차례였다. 111가구(37%)는 한파를 겪은 뒤 약국 또는 병원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980년도 이전에 지어진 40년 이상 된 주택 거주자가 189가구(63%)였다. 이들이 머무는 집은 에너지 효율을 결정하는 창호 기능 만족도(5점 기준)에서 통기성(2.9점), 채광(2.7점), 기밀성(2.8점), 결로(2.9점), 유리·창틀·벽체 균열(3.0점), 창틀 뒤틀림(3.0점), 개폐력 저하(2.9점) 등 모든 분야에서 점수가 낮았다.

실태조사를 맡은 김솔지 에너지시민연대 간사는 “2018년 100년 만의 폭염이 온 뒤 여름철 바우처 지원이 신설되고, 2020년에는 겨울철 지원 대상을 한부모가족·소년소녀가정 등으로 확대했다. 이상기후가 나타난 다음에 추가 지원, 제도 개선이 이뤄지는 식이다. 기후변화에 대비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에너지 지원이, 장기적으로는 주거환경 개선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2. 강해지는 태풍, 날아가는 비닐하우스

지난해 8~9월 태풍 장미와 바비, 마이삭, 하이선이 연달아 한반도를 훑고 갔다. 마이삭이 한반도를 관통했을 때 경남에서만 비닐하우스 5.1㏊가 부서졌다. 세계기상기구 등은 기후변화로 태풍의 강도가 갈수록 강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9일 오후 경기도 북부 농촌에 위치한 네팔 이주노동자의 숙소. 조립식 건축자재를 비닐하우스로 덮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경기도 북부의 한 채소농장에서 일하는 네팔 이주노동자 케시(28·가명)에게도 집은 안식처도, 피난처도 아니다. 한국에 온 지 약 4년째인 지난해 여름, 거센 바람을 동반한 태풍이 그가 일하는 농장을 덮쳤다. 케시는 비닐하우스로 된 숙소가 날아갈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스트롱 윈드가 왔을 때 잠 못 잤어요. 무서워서. 방 앞에 나무가 있는데 떨어질까 봐.”

케시가 사는 비닐하우스에는 창고를 짓는 데 쓰는 샌드위치 패널이 붙어 있긴 했다. 하지만 2.5평짜리 방 두 칸과 샤워 공간, 부엌을 분리하는 역할만 한다. 화장실은 비닐하우스 밖 간이화장실을 쓴다. 포천 이주노동자상담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는 “추운 겨울철엔 화장실 한번 가려면 옷을 여러 겹 껴입어야 한다. 한밤중에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있어 방범 문제로 두려움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냉난방 장치나 수도시설은 농장주 재량으로 설치된 곳도 있지만 고장이 나기 십상이다. 12월9일 케시의 숙소를 찾았을 때도 지하수를 퍼 올리기 위해 설치한 전기모터가 한파에 얼어붙은 탓에 비닐하우스 숙소에는 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를 포함한 이주노동자 3명이 이런 비닐하우스에 살며 월 20만원을 농장주에게 내고 있다. 고향 네팔로 돌아가지 않는 한 농장과 이 숙소가 그가 한국에서 돈을 벌며 머물 유일한 거처다. “전 돈 많이 안 벌었어요. 조금 더 일해야 해요.” 견디기를 택한 케시가 말했다.

그로부터 11일 뒤 경기도 포천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여성 이주노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간경화에 의한 간 손상이었다. 보건전문가들은 간 건강이 나쁜 노동자에게 추위와 난방시설 고장이 잦은 열악한 주거환경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달 9일 오후 경기도 북부 농촌에 위치한 네팔 이주노동자의 숙소 내부의 부엌.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주택 가격은 높아지는데 저렴한 주택은 사라지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탈출구가 집으로는 볼 수 없는 고시원, 비닐하우스 같은 곳이 됐다. 기후위기 상황에서 취약한 이들을 위해 공공임대주택 등 저렴한 주택을 더 많이 공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 소장은 “특히 비닐하우스처럼 극심하게 낮은 수준의 거처는 없애고 이주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다만 고시원의 경우, 노후 건물을 반쯤 새로 짓는다는 개념으로 단열재를 새로 붙이고, 냉난방 설비를 갖추는 등 에너지 효율을 높인 공유 공간으로 개선할 수 있다. 서울시의 리모델링형 사회주택 사업처럼 지자체의 시도도 진행 중”이라고 했다.

김민제 최우리 기자 summer@hani.co.kr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