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 부장판사는 왜 양형 사유를 급조했나

김은지 기자 2021. 1. 1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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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단대로라면 이재용 부회장은 감옥행을 피할 수 없다. 그런데 파기환송심 정준영 부장판사는 피고인에게 '준감위'를 꾸리라 했고, 이를 양형 사유로 삼겠다 했다.
ⓒ시사IN 이명익2020년 12월30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고등법원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 출석하고 있다.

핵심은 양형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유죄는 이미 확정됐다. 1·2·3심 모두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를 인정했다. 박근혜·최순실에게 뇌물을 준 이유와 금액을 심급별로 달리 판단했을 뿐이다(표 참조). 뇌물 공여액으로 1심은 89억여 원, 2심은 36억여 원, 대법원은 86억여 원을 인정했다. 정유라씨가 타던 말 3마리의 소유권을 삼성이 최서원(최순실)씨에게 넘겼는지 여부가 뇌물 액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 앞에는 구속 여부만 남은 셈이다. 이 부회장이 어떻게 죗값을 치르는지는 파기환송심 선고에 달렸다.

2019년 8월에 나온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대로라면 이 부회장은 감옥행을 피할 수 없다. 뇌물 공여액이 86억여 원으로 인정되어서다. 더욱이 이 부회장이 건넨 돈은 회사 자산에서 나왔으므로 횡령에 해당된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르면, 50억원 이상 규모의 횡령 범죄에 대해서는 5년에서 무기까지의 징역형이 가능하다. 집행유예가 어렵다는 뜻이다. 2017년 2월17일 구속된 이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계속 구속 상태였다가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가 파기환송심 내내 뜨거운 키워드였던 이유도 양형 때문이다. 2019년 10월25일 처음 열린 파기환송심(서울고법 형사1부)에서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삼성 내부에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 준법감시제도가 작동되었다면, 피고인들(이재용 등 삼성 임원 5명)뿐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최서원씨도 이 사건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정 부장판사는 1993년 당시 51세였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 신경영 선언’까지 언급하며 “2019년 51세가 된 이재용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느냐”라고 물었다. 이례적이고 적극적인 재판 지휘였다. 다만, 준법감시제도는 재판 결과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정 부장판사는 선을 그었다.

준법감시란 말 그대로 기업 임직원들이 직무 수행에서 관련 법률을 지키도록 감시하는 제도다. 미국에서는 연방 양형기준 제8장에 따라 준법감시제도가 실효적으로 운영되면 처벌을 낮춰준다. 정 부장판사도 재판에서 이를 언급했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단체들은 “미국의 연방 양형기준 8장은 개인이 아닌 기업 범죄에 적용되고, 범행 당시 준법감시제도가 운영된 경우 양형에 반영하지 사후에 도입된 것은 양형에 반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준법감시제도를 이재용 부회장 양형에 적용하면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재용’ 재판에서 ‘준감위’ 재판으로

삼성은 정 부장판사의 주문에 발맞춰 2020년 1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를 꾸렸다.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 조정위원장을 지낸 김지형 전 대법관이 준감위 위원장을 맡았다. 이 조직은 삼성 7개 계열사(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SDI·삼성전기·삼성SDS·삼성생명·삼성화재)가 가입된 삼성 외부 기구로 출범했다. 그러자 정 부장판사는 준감위가 양형과 무관하다던 말을 바꿨다. 2020년 1월17일 공판에서 그는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기업 범죄 양형기준의 핵심 내용이다”라고 말했다.

당장 박영수 특검팀(특검)이 반발했다. 편향되게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검은 ‘재판부가 이 부회장의 양형 가중 사유는 외면하고 감형 사유만 받아들이며,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주는 결론을 이미 내린 채 불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2020년 2월 특검은 재판부 기피 신청을 했다. 정 부장판사에게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재판 기피 신청은 2020년 9월 최종 기각됐다.

특검의 기피 신청으로 한동안 멈췄던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은 2020년 10월 다시 시작했다. 정준영 부장판사가 계속해서 재판을 맡았다. 재개된 재판에서도 특검은 계속해서 이재용 부회장의 양형 가중 부분을 강조했다. “과거 법원이 재벌 오너들에게 관행적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하며 봐준 ‘3·5법칙’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적용돼서는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물산의 회계 직원이 10억원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사례를 들며, 86억원에 달하는 이재용 부회장의 횡령 금액을 강조했다.

하지만 파기환송심의 중심은 삼성 준감위가 되었다. 정 부장판사는 삼성 준감위의 실효성 등을 판단하기 위한 전문심리위원을 뽑았다. 재판부 직권으로 2020년 10월15일 강일원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됐다. 11월6일엔 이재용 부회장 쪽 추천으로 김경수 변호사(전 대검 중수부장), 특검 쪽 추천으로 홍순탁 회계사가 전문심리위원이 되었다. 세 심리위원은 삼성생명(11월17일), 삼성물산과 준감위(11월19일), 삼성전자(11월20일) 등의 사내 준법감시 관계자들을 면담·조사했다. 여기에 더해 재판부와 특검, 변호인이 제출한 자료들을 검토했다. 이재용 파기환송심은 자연스레 ‘삼성 준감위 재판’처럼 보이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 기간 내내 특검은 재판부에 시간을 더 달라고 요구했다. 전문심리위원들이 준감위 실효성을 판단하기에 일정이 촉박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검은 ‘2021년 2월로 예정된 법관 인사 때문에 정준영 부장판사가 자신의 임기 내에 재판을 무리하게 빨리 진행하는 게 아니냐’는 취지의 주장도 했다. 거꾸로 이재용 부회장 쪽은 특검이 재판을 지연시키려 한다고 맞섰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은 “이재용 피고인은 부친의 와병으로 삼성 경영을 맡은 게 6년 반 정도인데, 그중 4년은 수사와 재판이었다. 준감위 실효성 확인은 맨땅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출범한 이후) 10개월간 자료가 축적되어 있어, 충분히 기간 내에 마칠 수 있다”라고 받아쳤다.

“준감위 권고는 삼성에 강제성 없다”

2020년 12월14일 공개된 전문심리위원의 보고서는 세 가지 버전으로 나왔다. 결과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서론에 해당하는 경과와 연혁, 점검 사항 등만 세 명이 함께 썼다. 서론 부분은 ‘조사의 한계’를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전문심리위원 지정 결정 이후 보고서 제출까지 시간이 많지 않아, 자료·면담 조사에 한계. 면담조사는 준감위와 7개 관계사 중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3개 회사에 대해서만 실시.” 특히 홍순탁 회계사는 이러한 현장 점검이 10시간밖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가장 중요한 준감위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점검 결과는 세 명이 합의하지 못했다. 대표 집필을 하지 못하고, 각자 쓴 내용을 제출했다(위의 표 참조). 그럼에도 ‘준감위의 권고가 삼성에 강제성이 없다’라는 부분은 셋 모두 언급했다. 또한 준감위 소속 삼성 7개 회사는 종이 한 장만 내면 준감위를 탈퇴할 수 있다는 점도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대신 이런 상황을 상쇄할 준감위의 의지와 열정을 김경수 변호사는 높이 샀다. 강일원 전 재판관은 최고경영진의 준법 의지와 여론의 감시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처럼 2020년 11~12월 두 달 동안 집중적으로 펼쳐진 다섯 차례 공판(12월30일 결심 제외)에서 재판의 화두는 단연 준감위였다.

해가 바뀌기 직전인, 2020년 12월30일 선고 전 마지막 재판 절차가 진행됐다. 결심공판에서 특검은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9년 형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 사건 뇌물공여 액수의 140분의 1에 불과한 박채윤씨(김영재 원장 부인으로 안종범 전 수석에게 뇌물공여)도 실형이 선고됐다. 권력자이든 필부필부이든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처벌해야 한다. 준법감시제도를 이유로 법치주의적 통제를 포기하거나 양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울먹이며 선처를 호소했다. 반성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준감위의 효과와 이건희 이후 삼성 경영을 언급했다. “이 재판 과정에서 삼성과 저를 외부에서 지켜보는 준감위가 생겼다. 재판부에서는 단순 재판 이상을 해줬다. 삼성이란 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준법 문화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하는지, 나아가 저 이재용이 어떤 기업인이 되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줬다. 과거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을 거다. 법에 어긋나는 일은 물론이고 오해 일으킬 일을 안 하겠다. 어려워도 정도를 가겠다.”

이렇게 2016년 시작된 ‘박근혜 게이트’의 핵심 축이자 마지막 축인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 모두 마무리됐다. 최종 결말은 오는 1월18일 펼쳐진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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