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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모부터 100년 넘게 살았는데 이제 와 불법이라니"

이수민 기자 입력 2021. 01.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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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 서창동 인근 재개발 과정서 토지대장 적용 논란
11일 광주 서창동 주민 강귀선씨가 자신의 안타까운 사연을 설명하고 있다. 1039번 도로 인근에 살고있는 강씨의 집은 토지대장 적용 문제로 최근 서구청으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2021.1.12/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조부모 세대부터 100년 넘게 살아왔는데 갑자기 불법 건축물이라며 철거를 요구하니 황당하죠."

11일 광주 서구 서창동 치안센터 인근. 주민 강귀선씨(67)는 허망한 눈으로 자신의 집과 창고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1039번 도로가 감싸고 있는 강씨의 집과 창고는 한 부동산업자가 인근 땅을 매입하면서 졸지에 철거 위기에 처했다. 부동산업자가 토지대장을 놓고 강씨의 건물이 자신의 땅을 침범했다며 철거를 요구하면서다.

강씨는 "일제 강점기 때 측정한 토지대장대로 하면 집을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한다"며 "수십년 간 아무 문제 없었는데 이제 와 규정을 들이미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광주 서구 서창동 1039번 도로 부근에 살고있는 강귀선씨는 최근 한 부동산 업자의 인근 땅 구매 이후 '무허가 매설' 등의 문제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강씨의 건물과 부동산 업자의 땅 사이에 좁은 폭의 1039번 도로가 끼어있기 때문이다. 2021.1.12/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강씨의 억울한 사연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동산업자 A씨는 2015년 강씨의 집 뒤쪽에 있던 토지 807평을 매입했다.

강씨의 집과 A씨가 구매한 토지 사이에는 사용하지 않는 폭 90㎝ 크기의 1039번 도로가 있다.

A씨는 마을 주민들에게 매입한 토지에 대형마트나 오피스텔, 물류창고를 지어 개발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진출입로 확보를 위한 건축 허가를 받았다.

강씨 역시 개발이 지역의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 서명하며 적극 도움을 줬다. A씨에게 건축허가가 나온 이후 그해 8월쯤 강씨는 서구청에서 날아온 경고장을 받았다.

강씨의 창고와 주택 일부가 1039번 도로를 점유해 A씨의 토지 진출입로를 막고 있다며 창고 건물을 철거하라는 내용이었다. 토지대장을 확인해 보니 강씨 집과 창고 일부가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폭 90㎝ 도로를 침범한 것으로 나왔다.

강씨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부터 100년 넘게 집과 창고를 증개축하면서 창고 일부분이 도로 위에 세워진 것이었다. 강씨는 A씨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설득했지만 A씨는 완강했다.

그는 "(강씨의 창고 건물이) 부지 진출입로를 막아서 입구가 좁아 잘 팔리지 않는다"며 도로를 침범한 부분의 철거를 재차 요구했다.

강씨는 사비 2700만원을 들여 2017년 3월 창고의 일부 가설물을 철거했다. 도로를 침범하고 있던 주택도 축소한 뒤 담장을 세웠다.

그렇게 일단락된 줄 알았던 A씨와 공방은 최근 다시 시작됐다. 이번엔 정화조였다.

서구청은 도로부지 안에 주택 정화조가 매설돼 있다며 정화조를 철거해 원상복구하라고 했다.

강씨는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이냐"며 구청을 찾았지만 구청에서는 "A씨의 민원이 들어왔으니 무허가로 매설된 정화조 등을 철거해야 한다"고 했다.

A씨의 민원 한 마디에 수십년간 아무 문제 없이 가만두던 구청이 갑자기 태세를 전환한 데 강씨는 분노했다.

강씨는 "등기도 있는 건물인데 갑자기 무허가라며 매설된 정화조를 다 철거하라면 어떡하라는 것이냐"며 "그럴 거면 당시 준공검사를 왜 했고, 등기는 왜 내준 거냐, 그땐 왜 일 처리를 이렇게 한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도로 밑에 매설된 것까지 참견할 거냐, 그게 있다 한들 도로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매설된 정화조까지 물고 늘어지는 건 아예 나가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조부모 세대부터 이곳에서 살아왔고 또 이곳이 자신의 생계의 터전인 강씨는 쉽게 떠날 수 없다.

강씨는 도로를 직접 매입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몇 차례 구청에 문의했으나 구청은 "민원이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어 저희도 곤란하다"며 "도로 매입은 인접 토지의 동의를 받아야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도로 인접 토지가 결국 A씨의 토지인 셈이라 어쩔 수 없이 부동산 업자 A씨와 강씨의 공방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강씨는 "1039번 도로에 끼어있는 주택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 것 하나만 가지고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외지인의 매매 수익을 위해 100년을 산 원주민을 버리는 서구청의 일 처리에 서글픔을 느낀다"고 한탄했다.

한편 A씨는 "'합법'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세상에서 그동안 불법으로 국유지를 점유했던 이가 오히려 큰소리를 치니 어이가 없다"며 "도로가 좁든 넓든, 통행을 하든 안하든 공공성이 있는 도로를 막고 피해를 감수하란 것은 말이 안된다"고 황당해했다.

이어 "몇 년째 강씨와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 착공도 늦어지고 있다"며 "땅을 팔려고 해도 불법점유와 매설 때문에 사기거래가 될까 팔지도 못 한다"고 주장했다.

서구청 관계자는 "지난 주 조속한 문제 해결을 위해 국유지와 사유지의 경계를 측량했다"며 "빠른 시일 내로 국유지인 1039번 도로와 사유지인 강씨와 A씨의 땅의 경계를 분명히 내서 민원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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