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정차 민원 힘들다" 30대 공무원 투신 CCTV에 찍혀

정진호 입력 2021. 1. 12. 14:48 수정 2021. 1. 1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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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졌던 6일 오전 7시 서울 강동구 광진교에서 강동구청 소속 공무원 A씨가 한강으로 투신해 수색이 진행 중이다. A씨는 구청에서 주‧정차 민원 대응을 맡았으며 최근 주변에 “민원으로 힘들다”고 토로한 것으로 조사됐다.

북극에서 밀려 내려오는 한파로 서울 전역에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6일 서울 광진교 인근 한강에 얼음이 얼어있다. 뉴스1



"민원 힘들다" 토로…CCTV에 투신 찍혀
12일 강동구와 소방 등에 따르면 6일 오전 A씨가 출근을 하지 않자 구청 측은 A씨의 가족에게 연락했다. 이날 오전 11시쯤 A씨가 전화를 계속 받지 않자 어머니가 119로 “아들이 실종됐다”는 신고를 접수했다. 이후 서울 광진경찰서가 기지국 조회를 통해 A씨의 휴대전화 위치가 끊긴 서울 강동구 광진교 인근 CC(폐쇄회로)TV에서 투신 장면을 확인했다고 한다.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A씨는 휴대전화나 메모 등 유서로 추정할 만한 흔적은 남기지 않았으며 최근 가족들에게 “민원을 들어주는 일이 힘들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고 한다. A씨는 지난 5일 당직근무로 인한 휴가로 출근하지 않았고, 6일부터 다시 민원 대응 업무를 해야 했다.


한파에 한강 얼어 수색 지연
출근시간에 투신을 선택한 A씨의 소재는 파악되지 않고 있어 현재까지 실종 상태다. 서울시119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 관계자는 “지난주 한파로 강이 얼어 당장은 수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날씨가 풀리고 얼음이 녹는 대로 수색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3월 서울 영동대교 인근 한강에서 수색작업을 하고 있는 소방 구조대원들. 뉴스1

A씨의 직장 동료는 “불법 주정차 과태료에 항의하는 민원이 많아 힘든 부서인데 최근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민원이 더 거칠어졌다”며 “코로나19로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이 많은데 공무원은 편하게 일한다는 인식이 반영된 민원이 A씨를 힘들게 한 것 같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막말 민원 심해져"
또 A씨 동료는 “전화는 물론 방문 민원인으로부터 막말이나 욕설을 듣는 일이 잦았다”며 “코로나19로 불법 주정차 단속을 최소화했는데도 ‘왜 다른 차도 주차했는데 나만 단속을 했느냐’는 식의 민원이 가장 많다”고 했다. A씨가 근무한 부서는 민원인이 방문할 경우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대응을 맡았다고 한다.

서울 강동구청사. [사진 강동구]

강동구청 관계자는 “(A씨가) 직장 내에서 대인관계도 원만했는데 일 때문에 힘들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혼자 앓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민원인이 찾아오거나 120 다산콜센터 등을 통해 부서로 전화가 왔을 때 무조건 응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폭언을 듣더라도 구민을 고발하거나 무시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악성 민원 증가…"대책 마련해야"
행정안전부 민원제도혁신과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집계한 악성 민원은 2018년 총 3만4483건에서 2019년엔 3만8054건으로 늘었다. 김순양 영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민간이 공무원을 무시하고 하대하는 추세다. 특히 나이가 어린 하급 공무원의 경우 더 심하다”며 “시민의식 제고와 함께 지자체에서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처럼 불법 주정차 단속 등 업무를 민간업체에 위탁하는 방식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덧붙였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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