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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남극,1940억톤 빙하가 또 사라졌어요 [우리, 탄소중립 (6)]

안광호 기자 입력 2021. 01. 12. 20:19 수정 2021. 01. 12.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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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국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

[경향신문]

1988년 처음 이곳 왔을 때
남극 대륙을 덮은 빙벽이
2.8㎞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2019년 월동대장으로 와보니
기지서 4.3㎞까지 밀려 있어

1940억t.

매년 남극 대륙에서 사라지는 빙하의 양이다. 과연 어느 정도의 양인지 가늠조차 어렵다. 애써 비유를 해보자면 물과 얼음의 밀도가 같고 올림픽 규격 수영장 한 곳에 2500t의 물이 들어간다고 가정했을 때, 해마다 남극에서만 수영장 7760만개를 가득 채운 물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 시민의 상수원 역할인 팔당호의 저수량(2억4000만㎥)과 비교하면 808배 수준이다. 빙하가 녹아 바다로 가면서 해수면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3.0㎜씩 상승하고 있다. 100년이 지나면 바다의 높이가 30㎝ 정도 올라간다는 의미다.

홍종국 남극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장(57)은 이 같은 기후위기를 최전선에서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을 맡고 있다. 지난 11일 화상 인터뷰에서 홍 대장은 “남극 대륙은 평균 두께 2100m 이상의 얼음으로 덮여 있는데, 단순 수치상으로 이 얼음이 모두 녹아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면 지구 전체의 해수면 높이는 60m 올라가게 된다”며 “단기간 내 이런 일이 벌어지진 않겠지만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지속적으로 배출돼 남극 빙하가 줄어든다면 결코 상상으로만 그칠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난센 빙붕. 기후변화 영향으로 갈라진 빙붕의 표면에 쌓인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다. 위의 큰 사진은 남극 세종과학기지 전경. 극지연구소 제공
온난화로 심층수 온도 상승
어는점보다 3.5도가량 높아
빙붕 하부 녹여 해수면 상승

전체 면적 1400만㎢(남한의 140배)의 남극 대륙은 98%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다. 이 빙하는 통상 두께 200~900m의 빙붕(육상 경계면을 기점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얼음덩어리)에 가로막혀 바다로 유입되는 것이 차단되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내륙과 해수 온도가 올라 빙붕에 균열이 생기거나 붕괴되면서 지속적으로 바다로 유입되고 있다. 남극 내륙지역 기온은 1989년부터 2018년까지 30년간 1.8도 올라 세계 평균 상승 속도보다 3배나 가팔랐다. 홍 대장은 “남극에서는 해수 온도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심층수 온도가 해수의 어는점(-1.9도)보다 약 3.5도 높아 얼음 하부를 녹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과학계는 특히 세종과학기지와 장보고기지 사이에 위치한 서남극 스웨이트 빙하에 주목하고 있다. 한반도 전체 면적과 비슷한 스웨이트 빙하는 최근 남극에서 가장 빠르게 얼음이 녹고 있는 곳이다. 해류는 통상 북극에서 내려와 남극을 거쳐 다시 위로 간다.

이 과정에서 따뜻해진 남극 순환 심층수가 서남극 지반선(육상과 바다의 경계)까지 침투하면서 서남극 전체 빙붕 두께가 20년 전에 비해 약 7% 감소했다. 빙하도 급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2100년에는 이 지역 빙하가 줄어든 영향으로 해수면이 1m가량 상승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왔다.

해수면이 높아지면 지대가 낮은 해안도시들과 섬은 침수 위협을 받게 된다. 홍 대장은 “평균 해발고도가 약 4m이면서 약 1만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남태평양 9개 산호섬으로 이뤄진 투발루의 경우 머지않아 26만㎢ 전 면적이 물에 잠길 수 있다”며 “그뿐만 아니라 뉴욕, 런던, 도쿄 등 해안가 대도시들도 머지않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처럼 댐이나 방조제를 건설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미 지구촌 곳곳에서 기후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은 거세지고 있다. 지난해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미국 서부지역에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 났고, 북극권 시베리아 지역은 기온이 38도까지 올라 135년 만에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한국에서는 54일간의 최장 장마가 있었고, 최근엔 온난화 영향으로 제트기류가 약화하면서 북극한파가 한반도를 매섭게 휘몰아치기도 했다. 한반도의 해수면도 연평균 3.68㎜씩 오르고 있다.

18명의 월동대원이 생활하는 세종과학기지 주변에서도 이러한 기후변화는 쉽게 감지된다. 이곳은 1988년 남셰틀랜드군도 킹조지섬에 세워진 한국 최초의 남극 과학기지다. 홍 대장은 “1988년 처음 세종과학기지에 왔을 당시엔 대륙을 덮고 있는 빙벽이 기지에서 2.8㎞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2019년 월동대장으로 다시 와서 보니 내륙 빙벽이 기지에서 4.3㎞까지 안쪽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말했다.

남극의 동식물 생태계 파괴 현상도 심각해지고 있다. 홍 대장은 “온난화 영향으로 단기간 내 급속하게 번성한 이끼 등 녹색 조류들이 햇빛을 흡수하면서 눈과 빙하의 녹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해양산성화에 대한 우려가 컸다. 해양산성화는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25%가량을 바다가 흡수하면서 수소이온농도(PH)값이 8 이하로 산성화되는 것을 말한다. 그는 “바닷물의 산성화로 산호초와 식물성 플랑크톤 등 해양생물의 생식과 성장 기능이 저하되면서 이를 먹고 사는 크릴과 그 상위 포식자들까지 영향을 받고 있다”며 “바닷속 환경 변화에 따라 남극에 사는 펭귄 등 서식 동물의 운명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 9월부터 세종과학기지 33차 월동대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오는 3월 쇄빙선 아라온호를 타고 국내로 복귀한다. 통상 비행기를 타고 칠레 등을 거쳐 복귀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각국의 하늘길이 막히면서 불가피하게 배를 타고 들어오는 것이다. 홍 대장은 “북극의 기후변화도 심각해지고 있다”며 “국내에 복귀한 이후 전공 분야인 지질학과 관련한 연구과제를 맡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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