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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의맛깊은인생] 일 또는 요리를 대하는 자세

남상훈 입력 2021. 01. 12.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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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었습니다.

일하는 공간이 바뀌었고 출근할 장소가 사라진 것일 뿐, 원고를 쓴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던 그런 새벽이었습니다.

그 일을 해서 30만원을 벌었고, 그 돈이 프리랜서가 된 첫달의 제 수입이었습니다.

프리랜서가 된 지 그리고 여행작가로 일한 지가 벌써 15년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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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작가가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회사를 나왔고, 그 달부터 잡지에 원고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생활을 하며 나름 알아둔 인맥도 있었고, (지금은 그렇진 않지만) 당시에는 글을 쓸 수 있는 매체가 여기저기 아주 많았습니다. 신문, 잡지, 사외보 등 활자매체가 넘쳐났던 시기였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대신 신문과 책을 읽었습니다.

프리랜서가 된 후 첫 원고를 쓰던 때가 기억납니다. 딱히 글을 쓸 공간도 없고 해서 주방 식탁에 앉아 키보드를 쳤습니다. 타닥타닥 새벽에 원고를 마감한 후 맥심 커피 한 잔을 타 마셨던 것 같네요. 일하는 공간이 바뀌었고 출근할 장소가 사라진 것일 뿐, 원고를 쓴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던 그런 새벽이었습니다. 기자일 때도 언제나 새벽에 기사를 썼거든요. 그날 새벽 제가 썼던 원고는 ‘원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여행기자를 하며 쭉 써 왔던 ‘6,000자 분량의 일’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원고를 완성하고 이메일로 발송을 하고 나니 멀리서 동이 터 왔습니다. 손을 탁탁 털며 나쁘지 않은 시작이군, 하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일을 해서 30만원을 벌었고, 그 돈이 프리랜서가 된 첫달의 제 수입이었습니다.

프리랜서가 된 지 그리고 여행작가로 일한 지가 벌써 15년이 됐습니다. 꽤 오래됐군요. 작가로 생계를 꾸리며 깨닫게 된 건 ‘일은 일로 만들어놓고 일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에서 굳이 자아실현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행을 하는 것과 ‘여행작가라는 일’을 하는 것은 분명 다릅니다. 여행작가로 취재 여행을 떠날 때는 여행을 ‘일’로, 원고를 ‘제품’으로 인식해야 합니다. 여행이라는 ‘소재’를 글과 사진이라는 재료를 가공한 후 하나의 ‘제품’으로 완성해 약속한 시간에 클라이언트에게 ‘납품’하는 것이 여행작가의 일이니까요. 그러기에 일에는 기대보다 각오가 앞섭니다. 정해진 분량을 정해진 시간 안에 일정 수준 이상의 퀄리티로 만들어내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시간관리 앱을 켜고 일합니다. 25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문서 프로그램을 끄고 5분 동안의 휴식 화면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5분이 지나면 다시 25분 동안 페이지를 실행합니다. ‘뭐해. 빨리 쓰지 않고!’ 저를 재촉하며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요리를 만드는 일이나 글을 쓰는 일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드는 일과 누구에게 ‘파는’ 음식을 만드는 일은 재료도, 조리법도, 만드는 마음가짐도 달라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프로페셔널이니까요.

최갑수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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