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한국일보

시력 잃을 위기 딛고 이탈리아 유학 "우리 안의 열정이 곧 희망입니다"

입력 2021. 01. 12.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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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는 성악가 박영민
성악가 박영민씨는 시력을 잃을 뻔한 위기를 딛고 외국 유학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시력에 도움이 될까 해서 5년 전부터 피트니스를 하고 있다.

“주어진 대로, 혹은 주어진 만큼 살긴 싫었어요. 전 욕심을 타고났나봐요.”

성악가 박영민(39)씨는 운동하는 성악가로 유명하다. 지난해에는 지역 라디오 방송에 고정출연하면서 탄탄한 팬층까지 확보했다.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이야기다. 박씨를 보다 특별한 존재로 만든 것은 그의 ‘눈’이다. 망막에 문제가 생겨 스무 살이 되기 전에 5번의 수술을 받았다. 운동도 시력에 도움이 될까 해서 시작한 것이었다. 운동을 통해 얻은 자신감으로 외국 유학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 라디오에서 그의 음성이 흘러나올 때마다 방송국 게시판에 ‘목소리에 위로가 된다’, ‘코로나19쯤 거뜬하게 이길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는 글들이 넘쳐나는 이유다.

망막박리로 시력을 잃을 뻔

“영양실조입니다.”

중학교 1학년의 박씨는 어느 날부터 왼쪽 눈의 시야가 뿌옇게 보였다. 안과에서는 영양실조라고 했다. 처방해 준 약을 먹었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한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두통은 물론이고, 균형감각도 떨어져 일상생활을 온전히 유지하기 힘들었다.

대학병원을 찾아갔더니 영양실조가 아니라 망막박리라고 했다. 젊은 사람에게 발병할 확률이 희박한 병이었다. 당혹스러움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응급 수술에 들어가야 했다. 망막박리는 초기에 수술을 하지 않으면 완전히 시력을 잃을 위험도 있는 병이었다.

박씨는 3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안심했다. 다시 일상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망막박리는 1년 만에 재발했다. 이번에는 망막만의 힘으로 버틸 수 없어 가스를 집어넣었다. 똑바로 누우면 백내장 합병증이 올 수 있다는 이야기에 엎드려서 생활했다. 맞은편 침대에는 20살의 언니가 박씨와 같은 병으로 입원해 있었다. 그런데 그 언니가 얼마 안 있어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어린 나이의 박씨가 받은 충격은 적지 않았다. 병원의 지시를 지키며 병이 호전되길 간절히 기도했지만, 백내장 합병증이 찾아와 다시 한번 수술을 해야 했다.

“고등학교는 진학할 수 있을까?”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등학교를 무사히 진학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때 음악 선생님이 박씨에게 성악을 권했다. 음악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성악을 하면 고등학교에 갈 수 있는 길이 생기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음악 선생님의 추천 덕에 경북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를 재학하는 동안에도 망막이 떨어져 2번의 수술을 겪어야 했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쌓을 수 없었죠. 그래서 앞으로의 인생은 추억을 쌓을만한 도전을 하면서 살고자 다짐했죠.”

다행스럽게도 대학교에 입학 후부터는 망막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나, 오랜 병원 생활과 수차례의 수술 때문에 몸이 많이 망가져 있었다. 20년 동안 전신마취를 5번이나 했기에 건강할 수 없었다. 노래를 부르다가도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혔다.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헬스장을 등록해 운동을 시작했다. 체력이 좋아지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체력이 좋아지면서 그의 성악적 스펙트럼에 한계가 없어졌다. 연습과 연구를 꾸준히 한 끝에 박씨는 수석으로 졸업했다.

“유년 시절은 제 인생의 암흑기도 같은 시간이었어요. 어두운 터널도 끝이 있듯 20살에는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어요.”

공연 중인 박영민씨. 박씨는 자신의 독창회에서 고음악 악기를 여러 번 활용하는 등 고음악에 관심이 많다.
가고자 하면 길은 열린다

교수님께서는 로마 유학을 추천해주셨다. 운동을 통해 건강이 좋아지니 낯선 땅에 가는 것도 두렵지 않았다. 박씨가 유학을 가겠다고 말하자 부모님은 3개월도 못 있다가 돌아올 것이라 했지만 박씨는 그곳에서 6년을 살았다.

유학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의 벽이었다. 학교 친구들이 말을 시킬까 두려워 일부러 친구들을 피해 다녔다. 소외감도 커졌고, 이 상태로 로마 생활은 무리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일단 부딪혀보자.”

다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익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나라의 친구를 사귀는 것이었다.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지 고민을 하다가 로마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바에 갔다. 로마에는 아침식사를 바에서 먹는 문화가 있었다. 한식을 좋아하는 박씨였지만 로마에선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매일 바에 가서 로마 사람들을 관찰하며 문화를 익혔다. 박씨의 이태리어 실력이 느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운동이었다. 로마의 헬스클럽을 등록해 운동하면서 현지 보디빌더들과 친해졌다. 건강과 친구를 동시에 얻었다.

유학 6년째가 되던 해 박씨에게 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졸업을 위해서 들어야 하는 문학 수업이 그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그 수업은 평소에 유학생들에게 낮은 점수를 줘 낙제시키기로 유명했다. 책을 50권 가까이 읽어야 했는데, 그걸 다 공부해도 통과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어떻게든 합격하기 위해 반복적으로 책을 읽다 보니 눈이 아파왔다. ‘이러다가 다시 망막박리가 오면 어떡하지’하는 걱정도 들어 원형탈모까지 생겼다. 과목을 포기할까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박씨는 뜻밖의 만남을 통해 그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었다.

학교로 가는 기차에서 저쪽에 앉아 있는 시 문학 담당 교수를 발견했다. 학생들에게 냉정하기로 소문난 교수여서 선뜻 다가가기 두려웠다. 용기를 내서 먼저 교수님께 말을 걸었다.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박씨는 교수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망막박리로 인해 수차례 수술을 한 이야기도 하게 됐다. 박씨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는 교수의 마음을 움직였다.

“사실은 나의 남편도 지병으로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지고 있어요.”

박씨의 아픔에 공감한 교수의 고백이었다. 그날부터 기차를 타면 교수가 1:1 수업을 해줬다. 시 문학 시험은 구두로 치러졌다. 10점 만점에 8점을 받았다.

“조금의 용기를 내고 한 발짝씩 다가가면 반드시 길은 열리게 되어 있어요.”

결혼과 출산 이후 쉼 없이 달려온 시간들

유학에서 돌아온 뒤로 눈코 뜰 새 없이 살았다. 여섯 번의 독창회와 학교 출강, 고음악 연구단체 아츠컴퍼니 ‘판’의 대표이자 KBS대구 라디오 ‘노래의 날개 위에’ 고정 게스트, 또 두 아이의 엄마로 다양한 부캐(부캐릭터) 활동을 했다. 10년 동안 남편의 외조 덕분에 성악가로서 활동도 열심히 할 수 있었고, 경험해보지 못한 분야에도 많이 도전할 수 있었다.

경북예고, 김천예고, 계명대 등 출강을 다니며 제자 양성에도 힘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중에 중학생 시절에 엄마의 손 잡고 찾아왔던 제자를 잊을 수 없다. 타고난 소리도 없었고 모두가 안 될 거라고 말했던 학생이었는데, 5년 동안 곁에서 정말 열심히 해서 서울대 성악과에 진학했다. 남들이 다 실력이 없다고 인정을 안 해주던 아이였는데 노력 끝에 해내는 것을 보고 보람과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이 주는 힘이 정말 크다는 걸 느꼈어요. 긍정적인 생각을 전달해준 것이 그 아이의 인생에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죠.”

음악적인 부분에서도 남다른 면모를 발휘했다. 박씨는 자신의 독창회에서 고음악 악기를 여러 번 활용하기도 했다. 고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대구에는 거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박씨와 비슷한 대구, 부산의 선생님들이 모여 아츠컴퍼니 판(PAN: Past And Now)이라는 연구단체를 만들었다. 판 연구회는 2년에 한 번씩 연주회를 통해 대중들에게 고음악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클래식을 어려워하는 대중들을 위해 매번 주제를 바꿔서 최대한 일반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회를 시도했다. 피아노 이전에 건반이 달린 발현악기인 챔발로를 선보이기도 했고, 반도네온으로 아르헨티나 탱고 음악을 선보이기도 했다. 연주자와 교사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운동하는 성악가

“휴식이 필요할 것 같아요. 1년만 쉬어도 될까요?”

쉼 없이 달려온 10년을 문득 돌아보니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나를 챙길 틈도 없이 너무 달려만 온 건 아닐까,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박씨는 휴식 겸 여행차 말레이시아에 있는 친구에게 다녀올 계획을 짰다. 2019년 12월 31일부터 모든 출강 활동을 중단하고 여행을 준비했지만, 코로나19가 덮쳤다.

여행이 좌절된 후 새로운 목표를 잡았다. 운동이었다. 체대 출신인 남편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목표는 부부 바디프로필 촬영이었다. 준비했던 여행계획, 말레이시아로 떠나지 못한 아쉬움과 속상함을 남편과 함께 운동하며 훌훌 털어냈다. 부부 바디프로필 프로젝트 성공 후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았다.

“말레이시아 가기 전에 피트니스 대회에 추억 삼아 나가보는 게 어때요?”

운동을 열심히 하는 박씨에게 헬스 트레이너가 피트니스 대회 출전을 제안했다.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이란 생각에 대회 출전을 결심했다. 웬만한 거리는 무조건 걸어 다니고, 몸을 만들기 위한 식단도 직접 만들어 운동 과정과 함께 인스타그램에 공유했다. 그렇게 2020년에 피트니스 대회에 다섯 번 출전했다.

도전하는 스승의 모습에 제자들은 “너무 멋져요. 또 대회에 나가주세요”, “선생님의 삶을 찾으신 것 같아 기쁘다”며 응원의 말을 전해왔다. 박씨의 아이들은 박씨가 대회에서 1등 하는 그림을 그려왔다. 결국 9월, 피트니스 대회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나바코리아 대회에서 탑6에 호명되었다.

박씨는 현재 필라테스 자격증과 생활체육지도사 자격증을 준비 중이다. 인생 2막이 시작되는 40대에는 아이들을 위해, 건강을 위해 삶의 포커스를 조금 바꾸려 하고 있다. 방역 수칙을 잘 지키며 아이와 함께 폴댄스도 배우는 중이다.

“제 삶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아무리 막막해도 성실히 노력하고 도전하면 결국 그게 나의 재산이 되고 행복이 된다는 것을 체험한 과정’이 될 거예요. 코로나19 때문에 일상이 짓눌려있지만, 희망을 가지고 하루하루 땀 흘리고 애쓴 시간들이 언젠가는 탐스런 결실로 다가올 것이란 확신을 가졌으면 해요. 우리에겐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에너지와 가능성이 있거든요.”

2020년 피트니스 대회에 참여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채은·박은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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