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조선일보

[김준의 맛과 섬] [46] 고금도 효자, 매생이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입력 2021. 01. 13.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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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가 검푸르러지면 겨울이 무르익는다. 이 무렵 남쪽 섬마을에는 매생이로 ‘줴기’를 만드는 어머니들 손길이 분주하다. 북한 ‘조선말대사전’에는 그 뜻을 ‘조그마하고 둥굴둥굴하게 주물러서 뭉쳐 놓은 덩이’라 했다. 매생이로 만든 줴기는 주먹 모양이다. 할머니 머리의 쪽을 닮기도 했다. 바다에서 채취한 후 세척해 줴기를 만들어 판매한다. 채취량이 많을 때는 한 사람이 하루에 줴기를 1000여 개 만들어야 한다. 허리가 부러질 것처럼 아프고 손은 곱아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래도 고금도에서 만난 어머니는 ‘거름을 할까 약을 할까, 비료를 줄까 씨를 뿌릴까. 요것이 효자제라. 자식보다 낫소’라며 매생이를 예찬한다. ‘속 썩인 자식이 효자 노릇한다’는 말이 있다. 한때 매생이는 김 양식을 방해하는 훼방꾼이었다. 소비자들이 검고 윤기 나는 김을 좋아해, 매생이가 김발에 붙으면 김 농사를 망쳤다고 했다. 이제 그 김 양식은 먼바다로 보내고, 그 자리에서 매생이 양식을 한다. 그렇다고 어느 바다에서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강진, 완도, 장흥, 고흥, 해남이 접한 연안에서만 가능하다. 오롯이 바닷물과 햇볕에 의지해 자라기 때문에 조류가 거칠지 않고 소통이 잘되는 청정 바다여야 한다.

매생이 양식장 풍경. /김준 광주전남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매생이가 지금처럼 전국에 알려지기 전에는 남도에서 겨울철에만 먹었다. 전라도에서는 매생이국<사진>을 끓일 때 물을 넣지 않고 약한 불에서 참기름이나 들기름으로 볶는다. 걸쭉한 매생이죽이 되도록 해서 떠먹는 것이 아니라 후루룩 마셨다. 매생이의 독특한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마늘을 넣지 않는 것이 좋다. 매생이는 식은 것처럼 김이 나지 않아도 뜨겁다. 목구멍을 넘어 속으로 뜨거운 기운이 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맛에 먹는다. 작년에는 큰 재미를 보지 못해 매생이 양식을 하는 어민들은 올해 기대가 더 크다. 제철 음식을 밥상에 올리는 것보다 더 좋은 응원은 없다. 요즘 몸도 춥고 마음도 허하다. 뜨거운 매생이국으로 속을 달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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