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결국 저출산 극복 포기였나

김민철 논설위원 2021. 1. 1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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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충격적인데 반응도 없어
삶의 질 개선하겠다 핑계로 인구 문제 방치한 것 아닌가
정부 손 놓으면 가파르게 하락
대한민국의 인구 절벽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2020년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출생자가 사망자 수를 밑돌아 인구가 자연 감소하는 '데드크로스'가 나타났다. 사진은 4일 경기 수원시 한 병원 신생아실의 모습. /뉴시스

지난해 대한민국 인구가 통계 작성(1970년) 이후 처음으로 자연 감소했다. 지난해 합계 출산율은 1분기 0.90명, 2·3분기 0.84명이었으니 0.8명대로 하락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엔 그간 합계 출산율이 1명 미만으로 떨어진 나라가 없으니 단연 꼴찌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올해 출생아 수는 신종 코로나 영향까지 받으니 어디까지 추락할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게 어떤 상황인지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1990년 통독 당시 동독의 출산율은 1.49명이었다. 그런데 91년 1.01명, 92년 0.89명으로 떨어지더니 1994년 0.83명으로 최저점을 찍었다. 지금 우리 합계출산율이 체제 붕괴라는 외부적인 충격에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 동독과 비슷한 것이다.

대만의 합계 출산율은 2009년 1.02명이었다가 2010년 0.89명으로 떨어졌다. 당시 대만에서는 ’2009년은 혼인하면 나쁜 해'라는 인식이 퍼져 혼인 건수가 급감하고 그 여파가 2010년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대만 출산율은 2011년 1.1명으로 반전했다. 전문가들은 전쟁이나 체제 붕괴 같은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출산율 1명 이하는 나올 수 없는 수치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금 정부에서 저출산 사태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움직이는 조짐조차 없다. 지난달 15일 0∼1세 30만원 지급하는 영아수당 신설을 골자로 한 4차 저출산·고령화 기본 계획(2021~2025년)을 내놓은 정도다. 11일 대통령 신년사에서도 저출산, 인구, 출산이란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현 정권이 출범한 다음 저출산 정책 패러다임을 출산 장려에서 삶의 질 개선으로 전환하겠다고 했을 때 긴가민가하면서도 새로운 접근이 성공하길 바라며 지켜보았다. 그전까지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여러 가지 처방을 해보았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으니 방향을 틀어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현 정부의 목적이 다른 데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출산율 목표를 없앤 것은 맞는다. 하지만 삶의 질 개선이라는 말이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그 자체가 목표인 것처럼 비치면서 저출산 극복은 사라지고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사례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 참석한 것은 2017년 말 새 정부 첫 회의가 마지막이었다. 심지어 서형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최근 한 시사주간지 인터뷰에서 “출생아가 생산연령인구에 진입하려면 25년 정도 걸리므로 저출산보다 고령화가 당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 한 분과위원은 정부의 무관심에다 결혼·출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자리·부동산 문제 악화를 들며 “저출산 극복 정책에서는 최악의 정부”라며 “지금 와서 보니 현 정부가 삶의 질 개선이라는 말을 저출산 극복 정책에서 빠져나가는 출구 전략으로 쓴 셈”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노력이 저출산 흐름 자체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급격한 출산율 급락 흐름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손쉽게 돈 좀 푸는 일 외에는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정부가 저출산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이들이 그래도 정부가 결혼·출산을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해야지, ‘정부도 포기하는데 우리가 왜’라는 생각을 갖게 하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 얘기다. 그래서 최근의 가파른 출산율 급락이 이런 정부의 무관심 결과는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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