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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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도굴범이 무서워

조유진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 세계유산 담당관 입력 2021. 01. 13. 03:05 수정 2021. 01. 1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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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우리는 나라가 작아서 그렇다”는 한탄조의 말을 자주 들어서일까. 땅덩어리가 작은 게 모든 면에서 불리한 조건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문화재 정보화에 관한 회의에 참석하다 보니 오히려 작은 국토 크기가 유리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IT 강국인 우리나라는 공공 부문 전자화가 일찌감치 이뤄진 덕에 다른 나라에 들려줄 경험이 많이 축적되어 있다. 유물의 입체 정보를 축적하는 3D(3차원) 스캐닝이나 지리 정보 시스템(GIS) 구축 사업도 앞서간다. 그런데 해외 문화재 담당자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막상 기술적인 논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엉뚱한 걸림돌이 툭툭 튀어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국토의 크기다. 우리는 비교적 작은 면적의 땅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산골 오지나 외딴섬이라도 구석구석 도로와 전기, 통신 설비가 잘 갖춰져 있다. 덕분에 모든 연결이 시원시원하다. 하지만 땅덩어리가 큰 나라들은 내내 꼽는 문제점이 바로 인터넷 연결, 전기 연결, 도로 연결의 어려움이다. GPS(위치 파악 시스템) 신호가 잡히지 않는 열대우림 지역, 인터넷은커녕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 부지기수다. 선진국이라고 나을 것도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이탈리아도 그렇지만, 프랑스나 독일도 도심만 벗어나면 휴대폰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다. 남아공, 호주 같은 나라는 유물 스캐닝 작업을 하려 해도 한 현장에서 다음 현장으로 이동하는 데만 3~4일씩 걸린다. 그러니 돈이 부지기수로 깨지고, 일괄적인 디지털 전환 작업에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린다.

인구밀도가 높아 복작복작 사는 것도 유리한 조건이었다. 멕시코 동료는 온라인 시스템을 갖추더라도 공개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문화재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한 자료를 공개하면 자칫 인적 드문 곳에 있는 문화재를 보호하는 게 아니라 도굴범들에게 ‘나 가져 가슈’ 광고하는 형국이 된다는 것이다. 국토 전체를 커버하는 설비와 시스템 구축에는 아담한 우리나라 사이즈가 딱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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