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되고 취미부터 포기해버렸습니다 

칼럼니스트 윤정인 입력 2021. 1. 13. 09:25 수정 2021. 1. 1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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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생존기] 아이 위해서라면 아깝지 않아도, 아쉬운 일

나는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핀셋을 사용하여 섬세하게 미니어처 집을 꾸미는 일도 좋아했다. 레고로 피겨를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십자수, 뜨개질, 코바늘뜨기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했다. 'DIY'라고 적힌 모든 것들을 수행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내가 대학원 시절 가진 취미 활동은 매우 다양했다. 그러나 이 취미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 혼자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취미
▲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취미
▲ 단순·무한 반복
▲ 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야근이 일상이고, 집에 들어와서는 씻고 논문 보기도 바빴던 시절, 운동하고 밥 제대로 챙겨 먹을 시간도 없던 그 시절, 온갖 스트레스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취미가 필요했다.

◇ 팍팍한 일상의 숨통 트이는 존재, '취미'였다 

그렇게 선택한 취미 활동이 바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옆에서 함께 해줄 사람 하나 없어도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 나는 책 읽는 것도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대학원에 진학한 뒤, 책 보는 게 그렇게 귀찮았다.

종일 논문을 보는데, 굳이 책을 더 읽고 싶지가 않았달까… 그래서 뇌를 쓰지 않아도 될 법한 것들을 찾아 헤매었고, 단순 작업을 무한 반복할 수 있는 십자수나 뜨개질에 꽂혔었다.

손으로 만드는 모든 걸 좋아했고, 잘했다. 나의 일상에 숨통을 트여주는 것, 바로 취미였다. ⓒ베이비뉴스

십자수, 미니어처 만들기는 특히 정말 나의 암울한 대학원생 시절 존재했던 한 줄기 빛이었다. 실험은 성공보다 망치는 날이 허다하고, 사소한 실수로 혼이 나기도 하고, 시험을 망치기도 하는 등 온갖 일에 시달리고 퇴근을 한 뒤, 아무 생각 없이 손으로 무언가를 하는 작업은 심신을 안정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정말 무념무상. 아무런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쓸데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이 작업은 어느 순간 흔적을 남긴다. 십자수로 쿠션이 탄생하기도 하고, 미니어처를 만들어 전시도 하고, 뜨개질로 신생아 모자를 떠서 후원도 하고, 단순 작업을 통해 복잡한 머릿속 생각들을 흘려보내기도 '딱'이었고, 결과적으로 어떤 작품(?) 비슷한 걸 탄생시킴으로써, 내가 시간을 그저 흘려보낸 것이 아니란 사실을 확인받는 과정이기도 했다. 

취미를 통해 얻은 결과를 바라보며,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다. 나는 지금 잘못된 길을 가지 않고 있고, 지금 나의 삽질은, 언젠가 학위논문이라는 결과로, 일단 학사모는 쓸 수 있을 것이란 '희망'. 마지막으로 작품을 보며, '아! 내가 아주 멍청한 인간은 아니구나'라는 스스로에 대한 안도감도 얻었다.

그 덕에 나는 취미 부자였다. 심지어 가끔 겁나게 심란해지면 빵을 구울 정도로 손으로 하는 모든 짓을 할 수 있게 됐다. 페인트칠도 우리 신랑보다 내가 더 잘한다는 재능도 발견했다.

◇ 블록도, 미니어처도…모든 취미 아이 태어나고 '올스톱!'

그런데, 이런 취미 활동에 변화가 생겼다.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임신 중에도 이어갈 수 있었던 나의 온갖 취미 활동은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모두 중단되고 말았다. 종일 아이를 보는 중에는 도저히 나의 '무념무상'을 수행할 수 있을 만큼의 단 한두 시간조차 빼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결국 아이가 태어난 뒤, 나는 나의 원 취미 생활을 고이 접어두어야 했다.

취미 생활이 없어진 후, 많이 힘들었다. 아이를 키우며 연구 스트레스보다 아이 돌보는 스트레스가 더 컸다. 아이와 일방적인 대화를 하는 것도, 아이의 감정에 일방적으로 맞춰야 하는 것도, 퇴근 없는 삶도, 심지어 아픈 것도 내 마음대로 아플 수 없는 모든 현실이 너무 힘들었었다.

아이를 위해 만든 음식을 아이가 안 먹을 때도 너무 힘들었다. 아이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고 엄청 노력은 하는데, 소통이 안 되는 것 같은 그 모든 순간이 너무 답답했다. 아이가 자는 시간이 내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자, 너무나도 짧은 '자유'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렇게 웹툰을 보기 시작했다. 잠깐잠깐 핸드폰으로 슥슥 넘길 수 있다는 장점에 웹툰은 괜찮은 취미가 됐다. 그런데 너무 짧았다. 나의 스트레스를 줄이기에 내가 보는 콘텐츠의 양이 너무 적다는 느낌이었다. 즉, 충족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웹 소설을 보기 시작했다. 마치 과거에 팬픽에 빠져들듯이 그렇게 소설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웹 소설은 육아하면서 일하는 엄마가 누리기엔 완벽한 조건의 취미였다. 순간 짧게 읽고 손가락을 슥슥 넘기면 한편이 금방 끝났다. 

그리고 다음 편은 어차피 하루가 지나야 볼 수 있으니, 남은 하루 동안 아이와 보내며 '기무(기다리면 무료)'가 뜨기만 기다리면 됐다. 하지만, '기무(기다리면 무료)'는 나에게 '기다리긴 무리'였다. 과거 취미 활동을 위해 사용하던 돈을 여기에 쏟아붓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손으로 만져지는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 취미는 아니었지만, 혼자서, 짧은 시간에, 시간과 장소와 무관하게 즐길 수 있다는 취미라는 점에서 과거 취미를 대체하기에 더없이 훌륭했다. 그리고 현실도피를 하기에도 정말 '딱' 맞았다.

과거 나는 판타지 소설을 좋아했었다. '드래곤라자'와 '묵향'을 사랑하던 아이는 이제 PC 통신이 아닌 앱으로 웹 소설을 읽는다. 이 취미 생활이 육아와 일에 지친 마음을 달래줬다. 그렇게 나의 새로운 취미가 탄생했다.

◇ 소소한 취미조차 엄마 삶엔 '사치', 가끔 '나'를 포기하는 느낌도

심란할땐 블록만한 게 없는데 말이지. ​ⓒ윤정인​

엄마가 취미를 갖기란 참 어렵다. '부캐'가 유행이고, 아인슈타인 역시 바이올린을 그렇게 잘 연주했다고 하고, 무엇보다 사람은 취미를 가져야 정신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양육자가 되는 순간 취미란 참 갖기 어려운 '사치'가 되는 듯하다. 

건담 조립이 취미였던 신랑은 많은 건담이 아이의 손에 '아작' 나는 참사를 만나야 했고, 운동을 시작해 봤지만, 운동할 때마다 아이가 들러붙는 바람에 그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골목길 걷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우리 애는 걷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모든 이동을 자가용으로 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내가 만든 미니어처는 당연히, 아이가 박살냈고,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니 좋아하던 공포 영화 역시 못 보게 됐다. 나와 신랑이 좋아하던 게임엔 잔인한 장면이 많아 애가 잠들기 전엔 절대로 할 수 없는 게임이 됐다.

참 어렵다. 양육자의 삶이라는 게 말이다. 일방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가뜩이나 사소한 일상을 마음대로 누릴 수 없는 시절이라 그런지 더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소소한 내 취미를 하나하나 아이와 함께하려니, 그게 곧 '나'를 '포기'하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이런 작은 것조차 나를 위해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퍼진다. 아이는 늘 사랑스럽고, 대체로 내게 힘을 주는 존재인데, 내 존재가 아이만을 위해 국한되는 느낌. 이런 감정을 숨기려고, 아이를 안을 때마다 늘 이런 말을 한다.

"엄마 비타민 충전할 게. 땡그리가 엄마 '비타민'이야."

아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나를 위한 말이었다. 나는 아이를 사랑하고 있노라고, 비록 지금은 나의 것들을 포기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내 다짐이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를 지킬 것이고, 내가 포기하는 모든 것들이 너를 이렇게 안고 있는 것으로 다 충족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자 하는 내 다짐.

그래도 이 다짐은 꽤 효과가 좋다. 아이를 키우는 7년간 이 다짐은 내가 나를 양육자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된 것은 분명하다. 아이의 말썽을 지켜보기 힘들었을 때도, 아이와 기 싸움을 할 때도, 나는 이 다짐을 되새기며 아이의 마음을 먼저 챙기려 노력하고 있다. 일단 나는 노력한다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누군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살아간다고.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엄마가 되기 위해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엄마가 되기 위해 살아온 것이 아니지만, 그래서 아는 것도 없고, 처음이라 그저 서툰 것투성이지만, 그래. 그래도 그럭저럭 흘러가고 그럭저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다.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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