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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집, 가족, 자연..더 애틋할 순 없다, 30년 전 떠난 화가 장욱진

이은주 입력 2021. 01. 13. 15:28 수정 2021. 01. 1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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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랑,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13일 개막, 대표작 50여 점 소개
장욱진 가족도. 1972, 캔버스에 유채.[사진 현대화랑]

"나는 심플하다."
화가 장욱진(1917~1990)이 생전에 자주 했던 말이다. 그의 장녀 장경수 장욱진미술문화재단 이사가 아버지를 회고하며 쓴『나의 아버지 장욱진』(2019, 삼인)에 따르면 "아버지는 그림도, 정신도, 삶도 당신 말씀대로 심플했지만 유품까지도 우리가 섭섭할 정도로 심플했다"는 대목이 나올 정도다. 1990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뒤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화실을 찾았더니 너무도 깨끗해 "낙서 한 장 없었다"는 것. 그런 화실을 보며 야속하고 섭섭해 쓰레기통까지 다 뒤졌다는 딸은 책에 이렇게 덧붙였다. 아버지는 "언제나 모든 날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셨던" 분이라고.

서울 삼청동 현대화랑에서 장욱진 30주기 기념전 '집, 가족, 자연 그리고 장욱진'이 13일 개막했다.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다간 '심플한 사람' 장욱진이 가장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겨온 것들의 이야기가 50여 점의 작은 화폭에 알알이 박혀 있다. 1951년 작 '자화상'부터 작가의 유작으로 기록된 '밤과 노인'(1990) 등 모든 작품이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시려진 가슴을 애틋하고 포근하게 감싸며 이야기를 걸어온다.

전시장에서 직접 만나는 장욱진 그림은 여러 면에서 관람객을 놀라게 한다. 첫째 손바닥 만한 크기의 그림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라고, 둘째 그 작은 화면 안에 산과 해, 나무와 새, 집과 여러 명의 가족 등 있을 만한 것들은 다 있어서 놀란다. 작가는 손바닥만한 화폭에도 간결한 조형 묘사로 우주를 다 담을 수 있다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장욱진, 가족, 1973. [사진 현대화랑]

예를 들면, 1972년에 그려진 '가족도'는 어른의 손바닥 하나 크기(세로 7.5㎝, 세로 14.8㎝)다. 그 작은 화면 안에 초록 나무 두 그루, 황토색 집, 네 명의 가족 등이 다 들어가 있다. 심지어 지붕 위로 날아가는 새 네 마리까지 담았다. 화가 장욱진이 평생 반복적으로 표현해온 모티프(집, 자연, 가족)가 여기 다 있는 셈이다. 1973년 작 '가족'은 조금 더 럭셔리(?)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화면 오른쪽에 집, 왼쪽에 나무 한 그루, 그리고 정자 한 채. 그리고 산과 해, 날아가는 새들. 미술평론가 김이순( 홍익대 교수)에 따르면 이게 바로 "장욱진이 추구한 이상세계"다.

덕소 시기(1963~1975) 의 장욱진. 촬영 강운구. [사진 현대화랑]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겪은 작가에게 집과 가족의 의미는 남달랐다. 집은 황폐해진 환경에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는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리고 가족은 그가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도와준 고마운 존재다. 장욱진은 1941년 결혼해 6명의 자녀를 둔 대가족의 가장이었지만, 1960년 서울대 미술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살았다. 대신 그의 아내가 서울 혜화동에서 서점('동양서림')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렸다. 그가 덕소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혼자 생활한 덕소 시기(1963~75) 작품엔 가족을 향한 사랑과 그리움, 고마움의 감정이 더욱 애잔하게 배어 있다.

자연 역시 그에겐 가족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였다. 그의 이력엔 서울로 돌아와 가족과 지낸 명륜동 시기(75~79)도 있었지만 아내와 단둘이 수안보(80~85)에서 생활하기도 했고, 이후 신갈(86~90)로 옮겨가 살았다. "나는 천성적으로 서울이 싫다"고 말한 그는 끊임없이 고즈넉하게 자연과 마주할 장소를 찾아다녔다. 그의 그림에 산과 들판, 흙길, 나무는 물론 개와 돼지, 소 그리고 닭과 새 등이 반복해 등장하는 이유다. 자연은 집과 가족의 보금자리이자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는 장소로, 평화와 안정을 역설적으로 상징하는 기호로 읽힌다.


너무 단순한 그림?

장욱진, 나무위의 아이, 1975. [사진 현대화랑]
장욱진, 얼굴, 1957, 캔버스에 유채, 40.9x31.8cm. [사진 현대화랑]
장욱진, 닭과 아이, 1990. [사진 현대화랑]

장욱진 그림은 너무도 친근한 소재를 다루는 데다, 그것을 쉽고 간결하게 표현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주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쉽고 단순한 그림'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정영목 서울대 명예교수는 "시각적인 피상성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장욱진의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정 명예교수는 "그의 작품은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결코 단순하거나 '심플'하지 않다"면서 "(그의 그림엔) 작은 공간을 자기식으로 쪼개고 꾸미는 화가의 까다로운 기호가 그대로 적용되고 표현돼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겉으로는 아이들도 그릴 수 있다 할 만큼 평이해 보이지만, 장욱진은 문인산수화, 민화 등의 전통적인 도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조형적인 가능성을 회화로 구현해낸 작가"라고 덧붙였다. 전시는 2월 28일까지.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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