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독일에선 그러지 않았다..전단 날리기와 민주주의 / 이은정

한겨레 2021. 1. 1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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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정 |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소장 및 한국학과 교수

독일이 아직 분단되어 있었던 시절에 서독에서도 전단 살포가 문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다. 1972년 기본조약 체결 이후 전단 살포 자체를 중지하기 전까지는 서독연방군이 동독 지역으로 전단을 보냈다. 서독연방군에 의한 전단 살포는 1960년대 중반까지도 비공개로 이루어졌다. 서독연방군은 전단을 날릴 때는 동독과 가까운 접경지역에서 민간인으로 가장해서 작업했다고 한다. 이 작업을 담당하던 부대의 소속 군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서약서에 서명해야만 했을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된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단 살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완전히 비밀에 부칠 수 없었다. 가끔씩 전단을 실은 풍선이 서독 지역에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여러 차례 언론에서 보도하려고 하는 것을 연방정부 국방부가 나서서 막았지만 1965년 초에 연방정부 국방부도 막을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독에서 동독 쪽으로 날려 보낸 전단을 담은 풍선 15개가 서독 헤센주의 접경지역 알텐부르슐라라는 마을에 떨어진 것이다.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었고 풍선이 떨어진 곳은 그 동네의 지역축제가 열려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모여 있던 광장이었다. 당연히 동독에서 날아온 전단이라고 생각하고 주운 삐라를 본 주민들은 그것이 서독에서 동독으로 보내는 전단이라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고 한다. 1965년 3월13일 헤센주의 지방방송에서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뒤,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북부독일방송(NDR)의 <파노라마> 팀이 연방군이 전단을 발송한 책임자라는 것을 보도하면서 이 사건은 정치적인 문제가 되었다. <슈피겔>을 비롯한 서독 언론은 전단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의회민주주의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연방의회 의원들은 누가 동독에 대한 전단 살포의 책임자인지 밝히라고 요구했다. 국방장관은 연방군이 관련되었다면 국방장관 본인이 책임자라고 답하면서 동독이 장벽을 건설한 이후 인민군 소속 군인들이 서방세계에 관한 정보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전단을 살포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에 대해 의원들은 전단 살포로 어떤 효과를 거두었냐고 따져 물었다. 그 뒤 서독에서는 전단 살포 행위에 대한 비난이 이어졌다.

1965년 6월에 헤센 주정부의 내무장관은 연방군을 포함한 어떤 단체도 헤센 영토 내에서 전단을 날리는 것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는 전단 살포를 위해 풍선을 날리는 것이 의미 없는 짓이고 정보를 전달한다는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 행위이며, 동시에 그것이 동독 주민들을 위험에 빠뜨릴 뿐만 아니라 접경지역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결과 연방군은 1965년 6월부터는 헤센 지역에서 전단 날리기 작업을 중단했다고 한다. 그런 결정 때문에 헤센주가 정치적으로 비난을 받았다는 기록은 아직 보지 못했다. 오히려 서독 사람들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역사라고 평가하는 기록만 지금까지 볼 수 있었다.

서독의 이런 경험에 비추어 지금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전단 살포와 의사표현의 자유 및 인권이 연결된다고 주장하는 논리를 구체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분단국가에서 인권을 이야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분단으로 인한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라는 점에 대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서독에서 동독인권침해 사례를 모두 기록하자고 제안했던 빌리 브란트가 1961년 베를린에 장벽이 건설되는 것을 보면서 한 말이다. 그는 장벽의 건설로 인해 성탄을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없는 서베를린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동독과 협상에 나섰던 사람이다.

전단 살포가 어떤 효과를 가져오는지 알 수 없고, 접경지역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이 침해받는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말 모를까. 냉전이 한창이었던 1960년대 서독인들은 전단 살포가 민주국가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부끄러워했는데 민주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그런 행위를 하면서 당당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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