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친근 '무위당의 더불어 삶' 음악극으로 알립니다"

박수혁 2021. 1. 1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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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뮤지컬 작곡가 주세페 김 예술감독

<원주역, 조한알 할아버지>를 어린이 뮤지컬로 연출한 주세페 김 랑코리아 예술감독 겸 케이(K)문화독립군 대표는 어릴 때부터 집안끼리 가까이 지낸 장일순 선생에게 받았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다. 케이(K)문화독립군 제공

“장일순 선생의 일화에서처럼 우리 사회가 ‘홀로’에서 ‘더불어’ 중심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주인공과 조역, 스태프 등이 하는 일은 다르지만 함께 작품을 만들 듯,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도 홀로 한 것이 아니라 주변인과 더불어 이룬 것입니다.”

무위당 장일순(1928~94)이 그의 고향인 강원도 원주지역 초등학생들이 열연한 뮤지컬로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장 선생은 1970년대 한국에 생명운동과 협동운동의 씨앗을 뿌렸으며, 70~80년대 지학순 주교와 함께 원주지역 반독재 민주화운동에도 각별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무위당사람들이 지난 1일 유튜브 채널 <무위당 장일순>을 통해 공개한 어린이뮤지컬 <원주역, 조 한알 할아버지>는 원주역에서 딸의 혼수금을 소매치기당한 할머니의 돈을 찾아준 장 선생의 감동적인 일화를 해맑고 순수한 동심과 아름다운 노래로 풀어냈다. ‘조 한알’은 ‘좁쌀 한알’이라는 뜻으로 한없이 겸손한 삶을 추구했던 장 선생이 즐겨 사용하던 호다.

이 작품은 원주 출신으로 뮤지컬 <페치카>의 총감독으로 이름난 주세페 김(56·본명 김동규) 랑코리아 예술감독 겸 케이(K)문화독립군 대표가 연출했다. 지난 12일 전화로 그를 만났다.

‘좁쌀 한알’ 장일순 선생 일화 각색 음악극 ‘원주역, 조한알 할아버지’ 원주초교 어린이들과 동영상 제작 무위당사람들 유튜브 채널로 공유

부친 함께 활동해 집안끼리 가까워 “마당극형 ‘무위당뎐’도 기대해주길”

어린이 뮤지컬 <원주역, 조한알 할아버지>에는 장일순 선생의 모교이기도한 원주초교 ‘참빛어린이들’이 출연해 노래와 춤 공연을 펼쳤다. 무위당사람들 제공

“어른이 된 뒤에야 1970~80년대 고향에서 일어난 일들이 가히 혁명적이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민주화와 협동조합·생명운동의 이야기가 뮤지컬 작품으로 남아 그 정신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청했습니다.”

김 감독이 밝힌 이번 어린이 뮤지컬 제작 참여 동기다. 사실 김 감독에겐 부친인 김정하 전 원주 진광중·고 교장과 성당·학교·재해대책본부 등에서 함께 많은 일을 했던 장일순 선생이 낯설지 않다. 장 선생의 막내아들과는 친구 사이로 어릴 적부터 늘 뵙던 친근한 분이다. 명절 때면 집안끼리 오가며 세배를 다녔고, 집에는 장 선생이 써준 글씨가 족자에 걸려 있다. 대학에서 산업심리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을 다니던 그가 뒤늦게 이탈리아로 성악 유학을 떠날 때 장 선생은 “한국 사람이 서양 광대를 배우러 간다”는 농담 섞인 격려를 하며 용기를 주기도 했다. 산타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 등에서 9년간 성악과 오페라를 공부한 그는 현지에서 만난 아내 구미꼬 김과 부부 팝페라 듀오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197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성지인 원주에서 태어나, 이를 직접 보고 성장한 만큼, 장 선생의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드는 것은 내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뮤지컬 작업은 쉽지 않았다. 약 30분 분량의 극본을 바탕으로 노래 4곡을 작곡, 각색해야 했다. 원주초교 ‘참빛어린이들’과 함께 지난해 10월부터 일주일에 세번씩 모여 마스크를 쓴 채 한달 반 정도 연습을 강행했다. 코로나19 탓에 제작비 부족과 공연장 촬영이 취소되는 시련도 겪었다. 다행히 오제순 원주초교 교장의 배려로 학교 강당에서 모든 출연진과 스태프까지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뒤 가까스로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무위당사람들 심상덕 이사장은 “이번 음악극을 통해 자라나는 세대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무위당 선생의 선한 삶과 고귀한 정신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무위당 선생이 남긴 일화를 창작극으로 계속 만들어 원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 콘텐츠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김 감독은 “이번에 선보인 어린이 뮤지컬은 앞으로 제작할 <무위당뎐>(가칭)의 일부로, 청소년 교육용으로 만들어 본 습작입니다. 1970~80년대의 민주화와 생명운동을 담은 마당극형 뮤지컬을 기대해 주세요”라고 소개했다.

그는 요즘 애초 뮤지컬로 선보였던 <페치카>를 <레미제라블>이나 <맘마미아>,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뮤지컬영화로 제작하는 작업에 매진중이다. <페치카>는 안중근 거사의 헌신적 공신이자 연해주 독립운동의 지도자였던 최재형(1860~1920)의 일대기를 그친 창작 뮤지컬이다. 최재형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지원하는 등 무장 투쟁을 이끌었으며, 한인 후손 교육을 위해 학교 30여개를 세우는 등 장학사업에도 힘썼다. 연해주 한인들은 그의 따뜻한 성품을 칭송해 러시아어로 ‘난로’를 뜻하는 ‘최 페치카’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뮤지컬 <페치카>는 2017년 11월 서울 용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쇼케이스 공연을 시작으로 2018년 케이비에스(KBS)홀에서 갈라콘서트, 2019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임시정부 수립 100돌 기념 공연작으로 선정되는 등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2018년 7월 보훈처 산하 비영리법인 ‘케이(K)문화독립군’의 창립 대표를 맡아 <페치카>를 비롯한 한류 문화콘텐츠 제작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최재형 선생 순국 100돌인 2020년에는 코로나19 탓에 <페치카>를 무대에 올릴 수 없었다. 대신 준비한 것이 비대면 온라인 상영이다. 부족한 제작비 탓에 김 감독이 기획부터 제작·작곡·편곡·녹음·배우까지 일인다역을 하며 고군분투했다. “숨은 독립운동가 최재형 선생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텼다”는 그는 지난달 1일 <페치카>를 무대에 올릴 수 있었고, 공연 영상을 지난달 20일부터 오는 3월15일까지 유튜브를 통해 <뮤지컬 페치카>라는 제목으로 공개하고 있다.

김 감독은 “예술가로서 시대적 사명감과 선한 영향력을 늘 고민한다. 음악으로 좋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페치카>와 <원주역, 조 한알 할아버지>도 이런 과정에서 얻어진 의미 있는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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