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국영이 즐겨 찾은 상하이 서점의 요즘 상황

조창완 입력 2021. 1. 1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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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중국 서점의 이야기 담은 박현숙 지음 '사람과 책을 잇는 여행'

[조창완 기자]

가장 힘이 센 글은 무엇일까. 바로 읽는 이에게 공감을 주는 글이다. 피천득의 <인연>이나 구리 료헤이의 <우동 한그릇> 같이 읽고 난 후 애잔한 기억이 남는 글이다. 이런 글은 독자에게 아련한 사랑과 가족의 정을 느끼게 해준다. 수없이 만나는 기사 가운데도 그런 글이 있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느낌이 가장 큰 기사는 글 속 인물과 글을 쓰는 기자가 한 마음으로 공감하는 기사다. 그런 기사로 어떤 이가 생각나느냐 물으면 나는 <오마이뉴스>나 <한겨레> 등에 글을 쓰는 박현숙 기자라고 말할 수 있다.

새로운 밀레니엄이 막 지난 2000년부터 <오마이뉴스>에 중국에 관한 글을 쓰는 시민기자가 한둘 등장했다. 그중에 단연 돋보이는 것은 박현숙 기자의 글이었다. 박 기자가 쓰는 <베이징 리포트>, <실크로드 기행>은 <오마이뉴스>를 찾고 싶은 동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박 기자의 글에는 정치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었다. 베이징의 피맛골이라 할 수 있는 후통(胡洞)의 노인들, 소수민족의 애환을 간직하고 살던 웨이얼족들과 공감의 폭이 그만큼 깊었기 때문이다. 박 기자의 글을 통해 듣는 중국 장삼이사의 이야기는, 우리가 만나는 한국의 갑남을녀와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저 사람들이었고, 따뜻하고, 때로는 엉뚱했다.

하지만 <오마이뉴스>에서 박 기자의 글은 꾸준히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에 간간히 다른 신문이나 <한겨레21> 같은 잡지를 통해 간간히 등장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박 기자의 글에는 사람이 있었고, 그들에 빠지는 재미가 있었다.

중국통 전문기자 박현숙의 중국 서점 이야기
 
▲ 박현숙 신작 <사람과 책을 잇는 여행> 표지 중국 전역의 서점과 사람의 향기가 가득하다
ⓒ 유유출판사
 
그래서 2019년 2월부터 <한겨레21>에 연재한 '박현숙의 중국 서점 기행'은 반가운 글이었다. '리장에서 온 편지'로 시작한 글들은 국가에 상관없이 인문쟁이들의 정서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박 기자가 더듬는 공간은 대개 베이징이나 상하이, 리장, 지앙쑤성의 오랜 도시들이었다.

그리고 번화가에 있는 서점도 있지만 낡은 도시의 한 구석에서, 주류에서 빠져나온 이들이 어렵사리 차린 서점들이 중심이었다. 거기에 중국인 남편,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딸, 아들의 이야기가 섞이면서 공감의 폭은 가족으로 깊어졌고, 이번 책에도 그런 매력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기록은 얼마전 <사람과 책을 잇는 여행>으로 출간됐다.

책은 "한때 알래스카에 가려고 했다"로 시작한다. 노마드다운 시작이다. 박 기자를 이렇게 이끈 것은 힘든 가족 생활도 있지만, 일본 여행가 호시노 미치오가 쓴 <영원의 시간을 여행하다> 때문이다. 미치오는 알래스카에서 불곰에게 습격당해 마흔셋에 운명을 달리 했는데, 그가 그려낸 글과 사진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래스카는 멀었고, 출판사의 부탁으로 중국서점기행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22편의 글이 찾아가는 대부분 베이징과 상하이, 지앙쑤성의 고도, 윈난의 쿤밍과 리장이다. 그밖에 있는 곳이 광저우와 톈진의 서점 한 곳들이다. 어떤 모티브를 찾아서 그 서점에 찾아들고, 잠시라도 호흡하면서 그들의 정서를 받아든다.

그가 찾는 서점들의 대부분은 도시의 오래된 골목에 있는 전문 서점이나 북카페들이다. '교보문고'처럼 어느 지역이나 대형 매장을 가진 신화서점이나 왕푸징서점처럼 큰 서점이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서점들이다. 이들 서점의 주인들은 대부분 방황하는 영혼들이다.

일반인들처럼 직장을 다니다가, 여행을 떠나고, 그곳에 맘이 꽂혀 근근이 한 자리를 잡아서 서점이나 북카페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이들과 어울려 삶의 의미를 탐색한다. 길과 더불어 서점을 만드는 이들에게 가장 깊게 자리한 것은 사람에 대한 탐구다.

객잔과 서점을 결합한 쑤저우 만수팡의 부부도 있고, 박 기자가 우연히 베를린 테겔공항에서 만나기도 했던 쉬즈위안이 이끄는 베이징 단샹쿵젠, 왕팅이 이끄는 리장 돈키호테 등은 서점 주인의 역마살이 만든 곳들이다.

그리고 그녀가 찾아드는 서점들 가운데 상당수는 위기가 목전이거나 이미 폐업에 들어섰다. 상하이의 시 전문서점 카이비카이스지, 베이징 싼리툰의 라오수충, 상하이 지펑수위안 등도 그런 운명이었고, 오랜 시간 동안 베이징대학의 지식창고가 되어주었던 완성수위안도 폐업 직전에 몰려 있는 운명이다. 상하이를 방문하면 장궈롱(장국영)이 많은 시간을 보냈던 한위안수뎬도 비슷한 처지다.

한국 동네서점 같은 곳, 중국에도 많아

그런데 중국의 서점 문화가 낡았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필자가 방문했던 중국의 서점은 너무나 다양한 모습이었다. 베이징 왕푸징 서점이나 상하이슈청은 항상 손님으로 가득차 있었다. 베이징의 소호거리인 싼리툰, 798이나 상하이 샤오싱루, 푸저우루 등 대도시는 서점 거리가 있었다.

박 기자 역시 중국의 가장 중요한 문화코드로 떠오른 쿤밍 둥팡수뎬1926, 베이징 싼리툰 중신수뎬, 싼롄타오펀, 난징 셴펑수뎬, 잡지를 테마로한 헝산·헝지 등 신 소비 시대에 맞추어 세련된 소비층을 맞이하는 서점을 소개한다. 실제로 필자가 몇 년전에 출판인들을 데리고 한중도서전을 위해 방문했던 난징, 충칭, 지난, 난창 등 대도시의 서점들은 한국에 못지 않았다.

다만 서점이든 출판이든 공산당이 주도하는 정치 체제 안에서 갖는 부담감도 적지 않다. 결국 이런 구속은 적지 않은 희생양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희생물 가운데 한중간의 감정적 거리도 있다. 한중간의 거리는 2017년 2월 사드 배치를 기점으로 더 멀어지고 있다. 거기에 지난해 발생한 코로나 19는 중국과에 대한 심리적 친근감을 더 밀어내기에 충분했다.

중국이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에는 일찌감치 욕설 댓글부터 달린다. 가장 큰 이유는 중국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가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적과 친구를 구분하는 것이 생존의 필수 요건이던 중국인들이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는 계속해서 멀어지는 행성 같은 운명처럼 보인다.

이런 인식을 바꾸는 것은 결국 인문밖에 없다. 중국에도 사람이 있고, 한국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 어디에나 권력을 가진 세력이 있고, 그 수레바퀴 아래에서 힘들어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가장 무서운 것이 자본이나 공산당이라는 것을 깨우치는 것도 대자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숙명 같은 의무다.

박 기자의 글에는 수없이 만나는 당대 사람이 있고, 심지어는 조선족으로 등록된 아들의 이야기까지 있다. 결국 경계선에 있는 이들이 상대편에 있는 이들을 잘 끌어줘야 비극은 없다. 박 기자의 글은 그런 가치들을 이번에도 여실하게 보여준다.

참고로 서점은 보통 수뎬(書店)으로 쓰지만 수팡(書房), 수위안(書院) 등으로 쓰인다. 북카페는 수바(书吧), 수랑(书廊) 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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