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중앙일보

[시조가 있는 아침] (54) 눈 온 뒷날

입력 2021. 01. 14. 00:09 수정 2021. 01. 1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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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효 시인

눈 온 뒷날
최중태(1948∼ )
면도날만큼 창을 열고
바깥을 내다 본다.

떠나버린 사람의 인정이
북극 바람보다 찬데

사랑이 빙판이 된 땅 위로
노랗게 핀 복수초.
-순례하는 물 (2009. 새로운사람들)

절망의 끝에 희망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흰 눈이 덮여 있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의 ‘눈 속의 사냥꾼’을 도시에서 보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맞는 겨울다운 겨울이다.

얼마나 추웠으면 면도날만큼 창을 열어 밖을 내다보았을까? 북극 바람이 매섭지만 그보다 더 찬 것은 떠나버린 사람의 마음이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빙판 위로 노랗게 복수초꽃이 피고 있는 게 아닌가? 복수초는 겨울 얼음을 뚫고 꽃을 피운다. 1년 중 가장 먼저 피는 꽃이 복수초다. 그러다가 다른 식물들이 신록을 뽐내기 시작하면 휴면에 들어가는 특이한 꽃이다. 이 시조는 사랑의 부활을 빙판에 꽃을 피우는 복수초에 대비시킨 데 묘미가 있다. 희망은 항상 절망의 끝에 왔다.

최중태는 『아침 잡수셨습니까』 『허물벗기』 『제3시집』 등의 시집과 『서울 기원의 내기꾼들』 『귀에 관한 명상』 이란 소설을 출간했다.

유자효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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