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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트렌드 사전] 서브병

서정민 입력 2021. 01. 14. 00:11 수정 2021. 01. 1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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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서브병’은 드라마·영화 등에서 주연보다 조연에게 더 호감을 느끼는 현상을 일컫는 신조어다. 특히 남자배우들을 향한 여성 시청자의 팬심이 강하다. 멜로드라마의 법칙대로라면 남자 조연은 남자주인공(남주)의 친구 또는 라이벌로 등장해 극적 긴장감과 웃음을 선사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서브병 유발자들은 남주에게 쏟아져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빼앗아 간다. 인기 드라마 속 계보를 떠올리면 ‘가을동화’의 한태석(원빈), ‘상속자들’의 최영도(김우빈), ‘미스터 션샤인’의 구동매(유연석), ‘스타트업’의 한지평(김선호 분)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아사히TV가 1976년 제작한 애니메이션 ‘들장미 소녀 캔디’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스테아'는 장난기 많고 속 깊은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 인터넷 캡처

서브병의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최고봉은 일본 아사히TV가 1976년 제작한 애니메이션 ‘들장미 소녀 캔디’다. 그 시절의 소녀들은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여주인공 캔디보다 그녀를 둘러싼 미소년들에 더 빠져 있었다. 특히 캔디의 첫사랑인 ‘안소니’보다 장난기 많고 속도 깊은 사촌 형 ‘스테아’(그림), 전 여친과의 인연을 끊지 못하고 홀로 방황하며 심각한 ‘테리우스’보다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 캔디를 위로해주는 ‘알버트 아저씨’가 이 만화 속 서브병 유발자로 인기를 누렸다.

남주만으로도 충분히 화면은 빛나는데 사람들은 왜 굳이 서브병을 앓을까. 첫 번째 이유는 물론 잘 생긴 외모에 연기까지 찰떡같이 해내는 배우들의 힘이다. 두 번째는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결같은 순수함으로 곁을 지켜주는 캐릭터가 현실에는 없는 다분히 만화적 인물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유는 모든 것을 다 갖춘 남주보다 늘 한 걸음 처져 있는 약자에 대한 응원의 마음이다.

서정민 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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