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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추워요, 전기도 없어요"..마지막 진술 외면한 경찰

김판 입력 2021. 01. 14. 06:00 수정 2021. 01. 14.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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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경보 때 비닐하우스서 사망
경찰 "전기 끊겼다" 진술 외면
간경화합병증 사망으로 정리 가닥
류호정 의원 "진상 규명 촉구"

지난해 12월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한파 속에서 캄보디아 국적의 누온 속헹(31)씨가 경기도 포천의 열악한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주노동자의 열악한 주거 현실을 드러낸 안타까운 죽음이었으나 이후 관계기관의 부실 수사로 정확한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속헹씨의 사인은 간경화 합병증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열악한 비닐하우스 숙소의 난방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속헹씨와 동료들이 수차례 추위를 호소했다는 진술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12일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 사망사건 대책위원회’(대책위)와 함께 사고 현장을 방문, 이같은 사실을 확인하고 경찰과 고용노동부에 정확한 수사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류호정 의원, 이자스민 전 의원 등 정의당 관계자들이 12일 캄보디아 이주노동자가 일하던 비닐하우스 앞에서 속헹씨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김판 기자


지난해 12월 20일 숨진 속헹씨의 동료들은 대책위에 속헹씨가 숨지기 전 난방장치가 작동하지 않아 추위를 호소했다고 진술했다. 국민일보가 13일 입수한 녹취록은 당시의 열악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동료들은 속헹씨에게 “너무 추워요. 전기가 끊어져 버렸어요. 나는 난방이 되는 따듯한 친구 집에 가려고요. 너무 추워서 (방에) 있을 수 없어”라고 말했다. 동료들과 속헹씨가 방이 너무 춥다는 얘기를 나눴다는 것이다.

활동가 : 속헹 방이 전기가 없었던 때는 어떤 날이예요 ?
A : 토요일과 일요일
B : 토요일과 일요일
활동가 : 그런데 세 사람은 밖에 있었잖아요.
B : 그렇죠.
활동가 : (세 사람은) 알 수 없잖아요. 그럼 ○○씨가 체크했어요? ○○씨가 전기가 차단된 것을 확인 했어요?
B : ○○씨가 토요일 오후에 전기를 체크했나요?
A : 그럼요. ○○는 “케잉아(속헹의 애칭) 너무 추워요. 전기가 없어요. 끊어져 버렸어요. 나는 나가요. 난방이 되는 따뜻한 친구 집에 가려고요. 전기가 없으니까...너무 추우니까 있을 수가 없어. ” 라고 말했어요.

실제 속헹씨의 방에는 피를 토한 흔적이 있었고, 그의 시신은 다른 동료의 방에서 발견됐다. 대책위 관계자들은 속헹씨가 평소 난방이 취약했던 자신의 방에서 피를 토한 뒤 따뜻한 곳을 찾아 간 것으로 추정했다. 2016년 3월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입국한 고인의 방에선 출국일까지 20여일 남은 귀국 비행기 티켓이 발견됐다.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숙헹씨가 숨진 채 발견된 숙소의 외관. 비닐하우 내부에 가건물이 세워져 있다.


또 당시 전기 차단기 스위치가 계속 꺼져서 전기가 끊어지는 바람에 속헹씨와 다른 동료가 잠들지 못한 채 숙소 밖의 스위치를 켜고 오기를 반복한 사실이 드러났다.

속행씨의 동료들이 녹취록에서 언급한 누전 차단기의 실제 모습. 대책위는 이런 식의 임시 가설 설비의 경우 전력 용량 자체가 적은데다가 한파 속에서 전력 사용이 크게 늘면서 누전 차단기가 작동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대책위 제공

활동가 : 네. 그럼 토요일 밤(새벽)에도 차단기 스위치가 떨어진 적이 있고, 그 차단기 스위치를 올리러 간 사람이 있어요?
A : 있어요. 떨어지면 올리고 떨어지면 올리기를 계속 했어요, 밤새도록. 말하자면 그들(속헹과 ○○)은 눕지 않았다고 (○○가) 말했어요.
(…중략…)
활동가 : 네... 그러니까 차단기의 스위치가 떨어지면 세 방의 바닥 난방장치가 모두 꺼지는 거죠?
A : 네.
활동가 : 사람이 나가서 차단기 스위치를 올리고 돌아와야 하는 거죠?
A : 네.
활동가 : 그러니까, 그 밤에 그들은 잠들지 않고 앉아서 계속해서 스위치를 올렸다는 거죠?
A :둘이 번갈아서 했어요.
활동가 : 서로 번갈아서 했어요?
A : 예

하지만 이 같은 진술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담당한 포천경찰서와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은 당시 숙소의 난방 장치의 작동 여부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경찰은 고인과 같은 숙소를 사용했던 이주노동자 1명과 지인 1명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조사하면서, 난방 문제에 대해서는 질의하지 않았다고 한다.
숙헹씨와 동료들이 생활하던 비닐하우스 숙소 내 화장실 모습.


포천경찰서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1차 소견 결과 간경화 합병증으로 인한 식도 정맥류 파열이라는 구두 소견을 받았다”며 “변사 사건 절차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현장을 방문한 형사의 판단상 ‘동사’로 볼만한 근거가 없었다”면서 “숙소로 쓰인 비닐하우스가 적법한지에 대해서는 고용노동부가 조사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은 “사건 이후 확인해보니 전기 장치는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었다”면서 이를 근거로 침실 난방은 정상 가동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고인을 고용한 농장주 역시 속헹씨 동료들의 진술과 달리 난방 장치에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같이 일하던 사람이 목숨을 잃어 마음이 아프다”면서도 “우리 가족들도 비슷한 여건에서 생활하고 있다. 난방이 잘 안 돼서 목숨을 잃은 것은 아니다”고 항변했다.

숙헹씨가 숨진 채 발견된 비닐하우스 숙소 내 방의 모습.


고인의 동료들 주장은 상반된다. 이들과 이주민 지원단체는 통상적인 주거기준에 못 미치는 부실한 비닐하우스가 고인의 건강을 해쳤고, 최악의 한파까지 겹치며 죽음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힘든 노동을 하며 얻게 된 질병과 강도 높은 노동, 진료와 치료에 대한 접근이 어려운 근무 환경, 비위생적이고 열악한 숙소 등으로 취약해진 이주노동자의 신체상태가 기록적인 한파 속에서 그 추위를 막아줄 어떠한 보호막이 없는 상태에 방치된 탓에 건강이 급격히 악화돼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이주노동자에 대한 비인격적이고 비상식적인 대우, 농업 노동 환경 등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들이 쌓여서 발생한 사회적 비극”이라며 농장주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용노동청 의정부지청에 고발한 상태다.

이들은 고인의 사망 이후 고용노동청과 경찰의 대응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다. 대책위는 “고용노동청이 현 시점에 난방장치가 정상 작동된다는 사실만으로 사고 당일에도 정상 작동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난방 장치가 제대로 작동했다 하더라도 과연 실내 온도가 사람이 머물 수준이 됐는 지 등도 따져봐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다. 속헹씨 사건 관련 통역을 돕고 있는 캄보디아 출신 통역사는 “13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데 아직도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은 따뜻하다고 느껴도 우리는 더 춥다. 더 따뜻하게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정의당 관계자들와 이주민 지원 단체 활동가들이 12일 숙헹씨가 숨진 채 발견된 비닐하우스 숙소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류호정 의원과 이자스민 전 의원 등 정의당 관계자들은 이날 고인 숙소를 방문한 데 이어 포천경찰서 및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 관련 기관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류 의원은 “속헹씨가 추위에 떨었다는 동료들의 진술이 존재하는 만큼 사망 경위를 정확하게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관련 진술에 대한 수사가 미흡했음을 인정하고, 대책위에 동료들의 녹취록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했다.

정치권에서는 속헹씨의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재발 방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속헹씨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부검 결과는 건강악화 때문이라고 하지만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제대로 된 진료 기회도, 몸을 회복할 공간도 없었기에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경기도지사로서 이주노동자들의 권익에 소홀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사과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양이원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현장 방문 일정을 계획하고 있다. 의원실 관계자는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관련 기관들과 간담회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천=김판 기자 p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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