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은비 죽음도 못 막은 경찰.. 땜질 대책에 비극 되풀이 [피멍 든 동심, 외면한 국가]
학대 징후 파악한 의사가 경찰에 신고
양부모 "넘어졌다" "아이가 자해" 변명
출동 경찰·관계자도 별다른 조치 안해
전담 학대예방경찰관도 구멍 투성이
아동학대 사건 자체 '힘든 민원' 치부
주로 막내급에 떠넘기기식 배당 빈발
정부, 입양 희망자 상담·사후관리 등
전반적 절차 입양기관에 위탁 뒷짐
문제땐 구조개선 없이 처벌만 강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비극
양부모 측은 멍과 화상자국 등에 대해 “미끄러져 넘어졌다”, “아이가 분을 이기지 못해 자해를 했다”, “이런 성향 때문에 이전 가정에서도 파양을 당한 것 같다” 등의 면피성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웃들은 여러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들을 ‘천사’라며 변호하기 바빴고, 양부모의 주치의는 담당도 아니었지만 아동학대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경찰을 돌려보내기도 했다.
아동학대 사건을 담당하는 학대예방경찰관(APO)도 헛점투성이다. 일단 아동학대 자체를 경찰의 본연 업무로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힘든 민원’으로 치부되기 때문에 주로 막내급 직원에 떠넘기기식으로 보직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APO 628명 가운데 경사 미만 하위 직급이 74.4%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갓 경찰 업무를 시작한 순경이 APO를 맡고 있는 비율도 10.7%에 달하고 있다. 아울러 보직변경이 잦고, 학대 업무 또한 노인학대를 비롯해 가정폭력, 장애인학대 등 여러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탓에 전문성을 쌓기가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양을 원하는 부모의 상담부터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절차 전반을 입양기관에 위탁하는 정부의 행태가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아동수출국’의 오명 탓에 입양을 민간에 떠넘기지 말고 정부가 직접 챙기라는 국제사회의 지적과 비판이 이어졌지만, 이에 대한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후조치는 입양 실무 매뉴얼 정비와 처벌 강화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양기관의 보고를 바탕으로 입양을 판결하고, 절차를 진행하던 정부 및 법원은 수년간 아동 학대사망 사건이 이어짐에 따라 공무원이나 가사조사관을 파견해 입양기관과 별도로 상담 및 가정방문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입양 전반 국가가 관리 ‘헤이그협약’ 비준 지지부진
전문가들은 ‘정인이 사건’과 같은 입양아 학대사망 사건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로 민간에 입양절차를 맡긴 정부 행태를 꼽는다. 정부는 ‘입양아를 비롯한 모든 아이의 인권을 책임지겠다’며 헤이그국제입양협약 비준을 공언했지만 협약비준은 8년 가까이 감감무소식이다.
1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헤이그국제입양협약은 입양아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요건을 규정한 국제조약이다. 대표적인 원칙이 ‘미혼모 지원 및 원가정 보호, 국내 입양 등의 사전노력을 거쳐 해외 입양이 최후의 수단으로 행해져야 한다’이다. 1995년 발효돼 약 100개 국가가 가입했다.
입양특례법은 서두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입양아동의 권익과 복지 증진을 위하여’ △실태조사 및 연구 △입양 및 사후관리 절차 구축·운영 △입양아동·입양가정에 대한 지원 △사후 상담 및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등을 맡도록 규정했다. 입양아동의 권익과 복지 증진은 국가의 책무라는 얘기다.
하지만 다른 항목들을 살펴보면 ‘정보시스템은 법인이나 단체에 그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위탁하여 운영할 수 있다’(6조)처럼 업무를 입양기관에 위탁할 수 있는 근거들이 담겨 있다.
헤이그협약에 비준하기 위해서는 입양특례법을 비롯해 민법, 아동복지법 등 관련 법제 전반을 모두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법적으로 입양기관에 위탁한 부분과 과거 친족 간에 이뤄지던 민법상 입양 등 입양절차 전반을 다시 국가의 영역으로 되찾아오는 게 핵심이다.
인권단체 ‘국경너머인권’의 이경은 대표는 “헤이그협약은 입양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입양기관과 가족 등 모든 사적 주체에 의해 이뤄지던 입양절차를 국가로 되돌리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를 비준하지 않는 것은 ‘국가가 아동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준영·안승진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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