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전 은비 죽음도 못 막은 경찰.. 땜질 대책에 비극 되풀이 [피멍 든 동심, 외면한 국가]

김준영 2021. 1. 14.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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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아동학대 눈감는 사회
학대 징후 파악한 의사가 경찰에 신고
양부모 "넘어졌다" "아이가 자해" 변명
출동 경찰·관계자도 별다른 조치 안해
전담 학대예방경찰관도 구멍 투성이
아동학대 사건 자체 '힘든 민원' 치부
주로 막내급에 떠넘기기식 배당 빈발
정부, 입양 희망자 상담·사후관리 등
전반적 절차 입양기관에 위탁 뒷짐
문제땐 구조개선 없이 처벌만 강화
정인이 학대사망 사건에 대한 충격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전 다른 입양아 학대 사건들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조기 발견, 사건 처리, 피해자 지원 등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어 심각성을 더한다. 비극이 발생하기 전 학대 의심신고가 이뤄지더라도 일선 담당자의 전문성 부족 및 책임의식 결여로 아이들의 고통과 비명은 무시되기 일쑤다. 학대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더라도 근본적인 구조 개선 없이 주로 처벌 또는 매뉴얼 절차만 강화하는 근시안적인 방식으로 보완이 이뤄져 학대 사건이 되풀이된다는 지적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되는 비극

13일 아동학대 관련 단체들에 따르면 이번 정인이 사건에서 사회적 공분이 가장 큰 부분은 세 번이나 아동학대 의심신고가 이뤄졌으나 학대 및 사망을 막지 못했다는 점이다. 빈발하는 입양아 및 아동학대 사망사건들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일들이 반복됐고 좀처럼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대구 입양아(은비) 학대사망 사건은 이번 정인이 사건과 ‘판박이’다. 대구 사건은 아이가 병원에 응급후송됐고, 온몸의 상처를 통해 학대 징후를 파악한 담당의사가 아동학대 의심신고를 했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별다른 조치 없이 돌아갔다.

양부모 측은 멍과 화상자국 등에 대해 “미끄러져 넘어졌다”, “아이가 분을 이기지 못해 자해를 했다”, “이런 성향 때문에 이전 가정에서도 파양을 당한 것 같다” 등의 면피성 변명으로 일관했다. 이웃들은 여러 아이를 입양한 양부모들을 ‘천사’라며 변호하기 바빴고, 양부모의 주치의는 담당도 아니었지만 아동학대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병원을 찾은 경찰을 돌려보내기도 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학대 부위나 부상 정도는 부검 및 법정 공방 과정에서도 학대의 핵심적인 증거로 작용한다. 미혼모단체들과 법의학자들은 매번 “대부분 몸통이나 허벅지 안쪽, 발바닥 등 일반적으로 넘어지거나 ‘사랑의 매’ 차원으로는 상처가 나기 힘든 부위이고, 옷을 입히면 쉽게 가려지는 부위들”이라는 입장을 강조해 왔다.
16개월 된 입양 딸 정인 양에 대한 아동학대 혐의로 불구속기소 된 양부 안 모 씨가 13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첫 공판이 끝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인이를 입양 보낸 홀트아동복지회 등 입양기관의 대응은 4년여 전과 비교해 볼 때 개선된 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경찰 수사나 법원 판결 등을 통해 사망의 원인이 학대로 판명되지 않는 한 사과하지 않고 변명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했다. 가정방문 등 입양 관련 절차를 제대로 진행했음을 강조하며 책임을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경찰 등 정부 측으로 떠넘기는 행태도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아동학대 사건을 담당하는 학대예방경찰관(APO)도 헛점투성이다. 일단 아동학대 자체를 경찰의 본연 업무로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힘든 민원’으로 치부되기 때문에 주로 막내급 직원에 떠넘기기식으로 보직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APO 628명 가운데 경사 미만 하위 직급이 74.4%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갓 경찰 업무를 시작한 순경이 APO를 맡고 있는 비율도 10.7%에 달하고 있다. 아울러 보직변경이 잦고, 학대 업무 또한 노인학대를 비롯해 가정폭력, 장애인학대 등 여러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탓에 전문성을 쌓기가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형식적인 입양기관의 가정조사 및 방문도 개선돼야 할 부분으로 지적된다. 이들 기관의 가정방문 시 아이의 몸을 확인하며 상처를 확인하더라도 판단을 내리지 않고 양부모의 입장에 수긍하며 돌아서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입양아 위탁업무를 맡은 한 위탁모는 “우리가 국가기관도 아니고 부모가 우기는 것에 대해 무슨 수로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라고 항변하기도 했다.
◆처벌 강화 위주의 땜질 대책 행태도 여전

입양을 원하는 부모의 상담부터 사후관리에 이르기까지 절차 전반을 입양기관에 위탁하는 정부의 행태가 근본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아동수출국’의 오명 탓에 입양을 민간에 떠넘기지 말고 정부가 직접 챙기라는 국제사회의 지적과 비판이 이어졌지만, 이에 대한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후조치는 입양 실무 매뉴얼 정비와 처벌 강화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입양기관의 보고를 바탕으로 입양을 판결하고, 절차를 진행하던 정부 및 법원은 수년간 아동 학대사망 사건이 이어짐에 따라 공무원이나 가사조사관을 파견해 입양기관과 별도로 상담 및 가정방문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노혜련 숭실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민간기관에 위탁한 상태로 입양 절차를 진행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입양가정에 대한 이중, 삼중의 조사만 늘린 탓에 ‘입양 절차가 갈수록 깐깐하고 힘들어진다’며 고충을 토로하는 입양부모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생후 16개월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한 양부모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는 13일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법원에서 공판을 마친 양부 안모씨가 탄 차량이 나오자 시민들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뉴시스
입양실무 매뉴얼의 가정방문 횟수가 늘고, 가해자에 대한 최고 징역·벌금의 수위가 상향됐으나 비극적인 사건은 줄지 않고 있다. 양천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한 경찰은 양천경찰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한 데 이어 “사건담당 관계자에 대해서도 엄정하고 철저한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선 한 경찰관은 “업무나 시스템상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업무담당자의 책임추궁만 집중한다면 학대 업무에 대한 기피도만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입양 전반 국가가 관리 ‘헤이그협약’ 비준 지지부진

전문가들은 ‘정인이 사건’과 같은 입양아 학대사망 사건이 끊이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로 민간에 입양절차를 맡긴 정부 행태를 꼽는다. 정부는 ‘입양아를 비롯한 모든 아이의 인권을 책임지겠다’며 헤이그국제입양협약 비준을 공언했지만 협약비준은 8년 가까이 감감무소식이다.

13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헤이그국제입양협약은 입양아를 보호하기 위한 절차·요건을 규정한 국제조약이다. 대표적인 원칙이 ‘미혼모 지원 및 원가정 보호, 국내 입양 등의 사전노력을 거쳐 해외 입양이 최후의 수단으로 행해져야 한다’이다. 1995년 발효돼 약 100개 국가가 가입했다.

‘아동수출국’으로 국제사회에서 비판을 받아온 한국은 2013년 5월 헤이그협약에 서명했다. 진영 당시 복지부 장관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협약에 서명하며 “아동의 안전과 인권을 책임지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국내외에 밝힌다”며 “2년 이내에 비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7년8개월이 지난 지금도 협약비준 움직임은 없다. 오히려 입양기관에 위탁업무를 강화하는 법제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대표적인 게 ‘입양특례법’이다. 입양특례법은 국내외 입양에 대한 각종 정의와 절차를 담고 있다.

입양특례법은 서두에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입양아동의 권익과 복지 증진을 위하여’ △실태조사 및 연구 △입양 및 사후관리 절차 구축·운영 △입양아동·입양가정에 대한 지원 △사후 상담 및 사회복지서비스 제공 등을 맡도록 규정했다. 입양아동의 권익과 복지 증진은 국가의 책무라는 얘기다.

하지만 다른 항목들을 살펴보면 ‘정보시스템은 법인이나 단체에 그 업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위탁하여 운영할 수 있다’(6조)처럼 업무를 입양기관에 위탁할 수 있는 근거들이 담겨 있다.

헤이그협약에 비준하기 위해서는 입양특례법을 비롯해 민법, 아동복지법 등 관련 법제 전반을 모두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법적으로 입양기관에 위탁한 부분과 과거 친족 간에 이뤄지던 민법상 입양 등 입양절차 전반을 다시 국가의 영역으로 되찾아오는 게 핵심이다.

인권단체 ‘국경너머인권’의 이경은 대표는 “헤이그협약은 입양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하는 것을 금지하고, 입양기관과 가족 등 모든 사적 주체에 의해 이뤄지던 입양절차를 국가로 되돌리는 것이 핵심”이라며 “이를 비준하지 않는 것은 ‘국가가 아동을 책임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준영·안승진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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