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훤의 왈家왈不] "금기가 가난 만들어"..노자(老子)가 남긴 2500년전 팁

전태훤 선임기자 입력 2021. 1. 14. 08:19 수정 2021. 1. 14. 09: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가 사상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중국 초나라 사상가 노자는 위정자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무위(無爲)’를 꼽았다.

그는 (인위적으로) 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뤄진다는 뜻의 ‘무위이화(無爲以化)’를 강조했는데, 있는 그대로의 삶의 경지를 추구했던 노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또 다른 버전쯤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노자의 도덕경 57장은 무위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바른 정도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이한 책략으로 군사를 이끌지만(以正治國 以奇用兵), 천하는 하지 않음으로써 얻는다(以無事取天下). (중략) 천하에 금지하는 것이 많으면(天下多忌諱), 백성들은 더 가난해진다(而民彌貧). (중략) 그러므로 성인이 이르길(故聖人云), 내가 무위하니 백성들이 스스로 화합하고(我無爲而民自化),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니 백성 스스로 바르게 되고(我好靜而民自正), 내가 일을 꾸미지 않으니 백성들이 자연스레 부유해지며(我無事而民自富)…(하략)"

이어지는 58장에서는 "어수룩하고 답답하게 다스릴수록 백성은 순박해지고(其政悶悶, 其民淳淳), 꼼꼼하고 빈틈없이 다스릴수록 백성은 더 이지러진다(其政察察, 其民缺缺)"며 백성의 삶에 나라가 지나치게 살피고 개입하는 것을 경계했다. 이미 2500년 전, 그가 지나친 국가 규율의 폐해를 직시하고 작은 정부와 민간자율을 중시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 잘 드러난다.

구닥다리 기원전 사상을 꺼낸 건, 이 낡은 철학서에 담긴 구절 한마디 한마디가 지난 정부의 부동산 대책들을 꾸짖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다.

되짚어보니 하지 말라는 규제와 금지는 실제로 넉넉하지 못한 이들의 삶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

투기를 막고 집값 상승을 억제하겠다고 규제를 쏟아낼수록, 집값과 전셋값이 더 뛰고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기회가 더 멀어지는 역효과가 났다. 집값 안정화와 가계부채 부실 우려를 명분으로 시작된 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는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진입 장벽만 높였다. 웬만한 목돈을 가진 현금 부자가 아니고선 이제 집은 사고 싶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닌 게 됐다. 그러는 2~3년 사이에 2배 이상 오른 집값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넘사벽’ 현실이 됐고, 앉은 자리에서 자산이 상대적으로 절반으로 줄어드는 피해는 오롯이 무주택·서민들의 몫이 됐다.

빈틈없는 나라의 다스림이 백성의 삶을 이지러지게 한다는 것도 어쩜 이리 딱 들어맞는지.

핀셋 규제라 해서 강남을 누르니 강북이 뛰고, 강북을 잡겠다 하니 수도권이 꿈틀거리고, 수도권을 막자고 나서니 지방이 들썩였다. 집값 상승의 고리는 돌고 돌아 다시 서울 상승세로 이어졌다. 매번 나온 부동산 대책들은 하나같이 무주택·실수요·서민을 위한다고 했지만, 이들이 웃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임차인 보호 취지로 급작스레 실행에 들어간 주택임대차 3법은 오히려 전셋값 급등과 전세공급 감소로 이어지며 전세난을 가중시켰다.

기원전 중국 남쪽 양쯔강이 흐르는 비옥한 땅에서 특별히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던 춘추시대 때의 노자 사상을 21세기 정부 정책에 고스란히 접목할 수야 없을 터. 다만 그가 그렸던 무위를 현실에 맞게 다시 해석한다면, 백성의 윤택한 삶을 위해 정부 간섭을 최소화하라는 주문 쯤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올해 설 연휴를 전후로 또 한 차례 부동산 대책이 나온다고 한다. 현 정부 들어 스무 차례가 훨씬 넘는 부동산 정책이 제기능을 못하고 다음 대책을 예고할 때마다 "긁어 부스럼" "무(無)대책이 상책" "가만히나 있으면 중간이라도 한다"라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금기가 많을수록 백성이 더 가난해진다’는 말은 이미 충분히 경험했다. 이번엔 또 어떤 규제와 금기가 담길지 걱정부터 앞선다. 2500년전 고이 잠든 노자가 ‘무덤킥’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