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 이상의 코로나 보상.. 일본 음식점들은 셔터를 내렸다 [박철현의 도쿄스캔들]

박철현 입력 2021. 1. 14. 13:00 수정 2021. 1. 29.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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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현의 도쿄스캔들] 코로나 긴급사태선언 일본, 도쿄 유흥가 사장들은 지금

[박철현 기자]

 
 임시휴업을 알리는 가게들이 즐비한 도쿄 유시마 유흥가.
ⓒ 박철현
 
"아예 문 닫는 게 좋지. 150만 엔 주는데 왜 해?"

우에노 인근에 유시마(湯島)라는 곳이 있다. 자잘한 음식점들이 모여 있는, 주로 퇴근 후에 가볍게 한 잔 할 수 있는 유흥가다. 직원 한두 명을 쓰거나 가족끼리 운영하는 10평 미만의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이 가게들이 1월 8일 이후 거의 문을 닫았다. 굳게 닫힌 셔터에는 정부의 시책에 따라 2월 7일까지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유시마에 가면 항상 들르던 단골 식당 '아시가라'(あし柄)도 그렇기에 가게 마스터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만에 왔는데 문이 닫혀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 약간의 연기를 가미해가며 힘드시겠다고 운을 띄우자 그는 "힘들었는데 뭐 돈을 준다니까 오히려 좋네"라며 껄껄껄 웃었다. 전혀 힘든 기색이 안 보였다. 한 달 동안 집에서 밀린 넷플릭스나 봐야겠다며 기분 좋게 전화를 끊는다. 하긴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웃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당근과 채찍

이 가게는 하루에 평균 7만 엔 정도 매상을 올린다. 가게 직원은 한 명이고,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아내가 나와서 도와준다. 일요일은 쉰다. 25일로 잡으면 한 달 매상은 평균 175만 엔 정도다. 지출항목은 월세 25만 엔(한화 약 250만원), 식재료 40만 엔, 직원 한 명 월급 25만 엔, 그 외 공과금 및 잡비 15만 엔 정도로, 이를 제하면 60만 엔 정도가 남는다. 원래 저녁 5시부터 밤 1시까지 문을 열었는데 10시까지 영업하라는 도쿄도의 지침이 떨어지자 매상이 반절로 줄었다. 당연히 수입도 절반 이하로 떨어져 걱정하던 차에 제2차 긴급사태선언으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됐다.

일본 정부는 1월 8일 도쿄, 사이타마, 지바, 가나가와 등 4개 지자체 내에서 주류를 제공하는 사업장은 저녁 8시까지만 영업을 하라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이 명령에 충실히 따르는 업장은 1일 6만 엔의 매상보전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반면 명령을 어기는 업장은 업장 이름 공개와 함께 과태료 50만 엔 이하를 물린다.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겠다는 말이다. 업장 이름 공개는 일본 사회 특유의 '망신주기'(恥を知れ!) 문화에서 비롯된 것인데, 요즘 일본이 어디 그러한가. 오히려 제한시간 이후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들이 그 업장에 몰리는 뜻밖의 홍보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작년 4월과 5월 두 달간 실시된 전국 긴급사태선언 당시 휴업 요청에 따르지 않은 파친코 업장 이름을 공개했다가 그 가게로 사람들이 몰려 생각치도 못한 대박을 친 가게들이 여럿 존재한다. 물론 그 가게들은 나중에 엄청난 강도의 세무조사를 받아야 했다. 당시의 긴급사태선언은 어디까지나 '요청'이었고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세무조사를 해서라도 처벌을 하겠다는 우회방책을 편 셈이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이번에는 법을 개정해 요청이 아닌 '명령'을 내렸다. 어길 경우 과태료를 내야하고 당연히 세무조사가 예정돼 있다. 하지만 시책을 잘 따르면 앞서 말했듯 하루 6만 엔씩 휴업보상을 해 준다. '당근과 채찍' 전략이다.

괜찮은 당근... 영업단축 술집에 1일 60만 원씩 휴업보상
 
 자주 가던 아시가라(あし柄) 음식점도 문을 닫았다.
ⓒ 박철현
 
그렇다면 유시마의 '아시가라' 같은 소규모 영업장은 문을 닫는 게 낫다. 한 달간 집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150만 엔을 받는 게 훨씬 낫다. 마스터는 괜찮지만 일자리가 없어진 직원은 어떻게 되는 건지 걱정된다. 하지만 그는 "남들은 모르겠는데 나는 일단 한 달만 쉬라고 했어. 15만 엔 주기로 하고"라고 말한다. 전직이 빠른 음식점 업계에서 그래도 3년 동안 같이 일해온 직원인지라 차마 무급으로 버티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직원 역시 이 조건에 매우 만족했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코로나 방역대책은 굳이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었다. 누적 확진자 수가 30만에 육박하자 일본정부는 13일 원래 네 곳이었던 긴급사태선포 지역을 열 한 군데로 늘렸다. 확진자 추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7개 광역 지자체(오사카, 교토, 효고, 기후, 아이치, 도치기, 후쿠오카)가 그 대상으로 기한은 2월 7일까지이다.

확진자 수가 통제 불능 상태로 늘어나면서 취임 직후 70%에 달했던 스가 총리의 지지율은 40%로 급락했고, 지지통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가 정부의 코로나 대책에 불만이 있다고 답한 국민이 88%에 달한다. 일일 확진자는 7000명을 넘나든다. 이대로 가다간 공식 확진자 수가 일일 1만 명을 넘을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에 내어 놓은 긴급사태선언이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발휘될지 아직 미지수다.

하지만 동조압력이 작동하는 사회분위기와 한 달 150만 엔의 휴업보전금이 주는 매력 덕분에 이미 밤거리의 인파들은 상당수 줄었다. 가게가 문을 닫아버리자 술 마실 곳도 없다. 날이 추우니 밖에서 마실 수도 없고 결국 직장인들은 일을 마치자마자 바로 집으로 귀가한다.

실제로 NTT 도코모의 모바일 기지국 통계에 따르면 1월 12일 현재 도쿄 내 중심지역인 긴자, 신주쿠, 시부야 등의 인구 통행량은 12월 하순 피크 시에 비해 약 30% 정도 줄었다. 정부는 70% 감소를 목표로 하고 있기에 아직도 부족하긴 하지만 확진자수는 1월 8일 7844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일각에서는 왜 영업시간 제한 및 각종 보상 정책을 확진자 급등 추세를 보이던 12월 초에 실시하지 않았냐는 비판도 나온다.
 
 도쿄에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다음날인 1월 9일 신주쿠역 서쪽 출구 풍경. 아무리 토요일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10시에 오픈하는 의류점, 식당, 잡화점 등에 줄을 서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보시다시피 거의 사람이 없다. 정부의 시책에 충실히 따르는 일본인들이 대다수인 덕분에 일본은 유럽,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 박철현
 
자폭이 된 스가의 폭탄 발언

이런 상황에서 스가 총리의 폭탄발언이 터져 나왔다. 그는 1월 8일 TV아사히의 간판 뉴스프로그램 <보도스테이션>에 출연해 "우리는 이미 12월에 가장 문제가 극심했던 도쿄도에 (지금 효과를 보고 있는) 8시 시간 단축 영업을 실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도지사가 자기들만의 방식이 있다며 거절했다"며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날 방송에서 도미가와 아나운서와 스가 총리가 주고받은 문답은 다음과 같다.

도미가와 "음식점에 관해서 말하자면 12월에 도쿄도에 대해 전문가회의나 니시무라 대신이 8시 시간 단축 요청을 이미 했다고 들었지만 그때 도쿄는 10시까지라는 기존 방침을 여전히 고수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요?"

스가 총리 "원인 이전에 저희들도 그건 전문가회의의 결정에 따르는 입장이니까… 그런데 도쿄는 도쿄의 방식이 있다고 하더군요. 예를 들어 길거리 일루미네이션을 끄겠다 등의 여러 방식으로 하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하지만 역시 전문가회의 선생님들은 8시 시간 단축 영업이 가장 효과적이라며 그 부분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생각합니다."

도미가와 "총리와 고이케 지사가 무릎을 맞대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코로나 대응이 아무리 바쁘다 하더라도 그런 협의를 해야 하는 자리가 없었다는 건가요?"

스가 총리 "아니, 전화상으로는. 지금 (정부와 도쿄도 간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오곤 있지만 아무튼 전화 통화는 자주하고 있습니다."

도미가와 "그렇군요. 그때는 시간단축 영업에 관해서 이야기가 없었나요?"

스가 총리 "저는 전화상으로도 8시까지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하지만 그때 고이케 지사는 다른 방법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군요."

도미가와 "오호, 결과적으로 고이케 지사를 포함해 1도 3현의 단체장들이 총리한테 강하게 요청하고 부탁도 하고 해서 이번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됐다고 다들 알고 있는데……. 아무튼 지금 생각해보면 더 빨리 긴급사태선언을 했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높은데요. 그 부분은 어떻습니까?"

스가 총리 "그 부분은 여러 비판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역시 연말 도쿄에서 (확진자) 1300명이 나왔을 때, 그 숫자를 보고 (긴급사태선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상당한 스캔들이 될 수도 있는 발언이었다. 그런데 고이케 도지사를 겨냥한 스가 총리의 이 발언은 결과적으로 고이케보다 스가 자신에게 향하는 화살이 됐다. 방송 다음 날 기자가 직접 만난 일본시민들은 공통적으로 "아니 1300명이나 나오고 그 때 이미 긴급사태선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왜 매일 회식하는데? 지금 누가 잘했니 마니를 따지는 게 중요한 거야?"라는 반응을 보였다.

방역은 엉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배워야 할 점
 
 도쿄에 긴급사태선언이 발령된 다음날인 1월 9일 신주쿠역 서쪽 출구 풍경.
ⓒ 박철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본 정부의 당근과 채찍 정책은 한국도 본받아야할 지점이 많다. 지난 1년 간 코로나 방역 정책에서 일본 정부는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오히려 위의 일화를 보듯 니 탓, 내 탓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시책을 충실히 따라준 업장 및 개인에 대해서는 한 달 150만 엔에 달하는 보상정책을 발 빠르게 결정했다. 일본 정부가 부자인 것도 아니다. GDP 대비 240%에 달하는 부채를 짊어지고 있으며, 매년 국채를 발행해 적자예산을 편성한다.

이런 빚투성이 나라도 코로나19 라는 미증유의 전시 상황을 맞아 과감한 당근 정책을 펴고 있다는 점을 한국정부 관계자들도 배웠으면 한다. IT 한국이 아날로그 일본보다 못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건투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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