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부채 정말 걱정할 문제일까 [최준영의 경제 바로 읽기]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2021. 1. 1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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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위한 재정 건전성인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

(시사저널=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사상 초유의 코로나19 사태로 세계 모든 국가가 어려움을 겪은 2020년이 지나고 2021년이 찾아왔다. 지난 12월 전해진 백신 개발 성공 소식으로 사람들은 이제 코로나19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이런 기대가 언제 이뤄질지, 과연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호한 점이 많다. 얼마나 빠르게 집단면역 수준에 도달할지, 백신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 등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나주범 기획재정부 재정혁신국장(오른쪽)과 김의택 재정효과분석팀장이 2020년 9월 정부세종청사에서 '2020~2060 장기재정전망'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유동성 확대에 따른 자산가격의 급등

이런 모호함에도 세계 자산시장은 지난해 3월 이후 계속 상승 중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급작스러운 경제적 충격에 맞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재정·금융 정책을 총동원해 대응에 나섰다. 고용유지 지원금부터 시작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재난지원금까지 다양한 형태의 직접적인 현금 지원이 광범위하게 이뤄졌다. 여기에 제로금리와 국채 이외의 회사채나 주식 등 자산을 중앙은행이 직접 매입하는 형태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했다. 유동성 확대에 따라 거의 모든 자산가격은 빠르게 상승했다. 이와 같은 추세는 1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지출 확대에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이로 인한 국가부채 증가에 대해서는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의 경우 정부 부채비율 증가를 둘러싼 적정선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제도적으로 국가부채를 억제하기 위한 재정준칙 도입이 검토되기도 했다. 

부채 증가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부채는 옳지 못한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1997년 외환위기 사태를 겪은 악몽이 여전히 존재하는 우리로서는 재정 건전성 유지는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위한 희생과 부작용도 감내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또 과도하게 낮아진 금리로 인해 자산에 거품이 형성되고 있으므로 조속히 금리를 인상해 이를 예방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과거 우리에게 부채비율 감축을 강요하던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금융기구에서는 최근 다른 의견들이 대두되고 있다. '과연 국가부채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정말 갚아야 하는가'라는 급진적인 질문들이 연이어 제기되고 있다. 이런 변화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2008년 발생했던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과 처리 과정에 대한 반성이다. 당시 미국과 유럽은 재정지출 확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라는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통해 위기를 벗어났다. 2010년 이후 부채 확대를 우려해 재정지출 축소를 단행했으나 결과적으로 이는 장기적인 경기 침체와 고용 축소로 이어졌다. 지속적인 지출 확대를 통해 경제를 정상화시켰어야 했는데, 부채 확대를 두려워한 나머지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재정적자와 국가부채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경기가 정상 수준에 완전히 진입할 때까지는 부채 확대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둘째, 금리 등을 활용한 금융정책보다 정부 재정지출이 더 효과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제로금리와 자산매입을 통한 양적완화 등 유동성 공급은 실제 실업 및 경기부양에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금융 시스템은 실업자 및 자영업 등을 포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재정지출은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을 통한 직간접적인 고용 창출과 더불어 현금 지급을 통한 기본적 생활 여건의 보장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또 금융정책은 계층 간 분배를 고려하지 않아 자산 보유자와 경제적 기반을 갖춘 노인층에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 하지만 재정지출은 부의 재분배를 가능하게 해 사회의 균형과 안정을 도모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셋째, 정부의 부채비율을 판단하는 단일한 재정준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과거 유럽연합(EU) 출범 과정에서 회원국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60%라는 수치가 제시됐다. 이후 이 숫자가 건전과 불건전을 나누는 기준처럼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나 증거는 없다. 과도한 차입에 따른 국채 매입 수요 축소 등의 우려는 최근 10여 년간의 경험에서 볼 수 있듯 국채 물량 확대에도 마이너스 이자가 나타날 정도로 정부에 대한 신뢰성이 강하며, 물량을 흡수할 수 있는 시장 수요가 풍부하기 때문에 과도한 걱정이라는 설명이다. 

넷째, 좀 더 현실적으로 현시점에서 재정지출 축소 등의 조치를 취할 경우 사회적 안정이 급격히 약화된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현금 지원으로 버티고 있는 자영업의 경우 정부의 지출 축소는 폐업과 실업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사회적 안정을 위협하는 불안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영업제한 조치에 대한 불만과 거부가 본격화되는 데서 알 수 있듯, 부채 축소를 명분으로 한 지출 감소는 사회 전반에 큰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정부 부채 시계 모습 ⓒEPA연합

"적자재정 지속 가능할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이런 지적은 현실적으로 타당하지만 '과연 적자재정을 계속 지속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역시 존재한다. 단기간에 급속히 불어난 부채 규모를 감안하면 이와 같은 불안감 역시 현실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우려에 대한 해법으로 '중앙은행에 의한 부채 탕감' 역시 논의되고 있다. 

정부가 발행한 국채 가운데 상당량은 해당 국가의 중앙은행이 매입해 보유하고 있다. 이를 보유한 중앙은행이 정부에 대해 해당 채권의 상환 의무를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대폭적인 부채 축소가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과거 금이나 은 또는 정부 채권을 담보로 화폐를 발행하던 시대가 아니라 신용에 근거해 자유롭게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런 주장은 과거 이탈리아나 일본의 과도한 국가부채를 해결하는 급진적인 방안으로 제시됐는데 최근 세계적인 정부 부채 증가에 따른 현실적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코로나19가 물러가도 그 상처와 후유증은 오래 남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꾀하기보다는 새로운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현시점에서는 급진적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더 현실적인 주장일 수 있다.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누진세 등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제도 상당수가 처음 논의될 때는 급진적인 방안으로 간주됐다. 그렇기에 이런 주장들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적인 대안이 될 가능성도 있다. 무조건적인 재정 건전성을 외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건전성인지에 대해 고민해 볼 시점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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